산업 일반
“기술 유출은 안보 범죄…개정 간첩죄, 산업계 ‘든든한 방패’ 기대” [2026 산업보안컨퍼런스]
- 법무법인 화우 이세정 변호사 인터뷰
심리적 억제력 얻은 개정 간첩죄…추상적 기준과 증거 확보 ‘난관’
공백 메울 산업스파이법 제정 시급…내달 산업보안컨퍼런스서 제언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이제는 기술 유출 행위도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면 안보 범죄로 규율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법무법인 화우 이세정 변호사가 짚어낸 개정된 형법 제98조의2(이하 개정 간첩죄)의 의의다. 간첩 행위의 상대방이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되면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산업기술 유출을 국가안보 범죄로 다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지난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 “종전 법제에서도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외국 정부나 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개입해 핵심기술을 탈취하는 행위를 국가 외적 안전 침해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번 개정은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방산 등 주요 산업의 기술 유출을 기업의 재산 피해뿐 아니라 국가안보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변호사는 오는 11월 24일 국가정보원이 주최하는 ‘2026 산업보안컨퍼런스’의 첫 번째 세션(1분과) 리더를 맡고 있다. ‘기술 유출 사안에 대한 개정 간첩죄의 적용과 기술안보 강화를 위한 제안’을 주제로 주요 기업 관계자와 법률 전문가들의 논의를 이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LG디스플레이 등이 참여한다. 이 변호사를 만나 개정 간첩죄의 적용 기준과 한계, 기업의 대응 과제를 짚어봤다.
‘국가기밀’ 추상성·직접증거 확보 과제
기업 현장에서는 이번 법 개정이 기술 유출을 억제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 변호사는 “재산 범죄로 다루던 기술 유출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주는 심리적 억제력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제 수사와 처벌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쟁점은 간첩죄 성립의 핵심 요건인 ‘국가기밀’의 범위를 확정하는 일이다. 모든 기업 기술이 국가기밀에 해당하지는 않으며, 국가핵심기술 등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당연히 형법상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기존 국가기밀 관련 판례와 법리에 따르면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공지성’과 누설 시 국가안전에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 ‘실질비성’이 핵심 판단 기준이 된다.
이 변호사는 “기술의 공개 여부, 국내외 기술 격차, 연구·개발 투입 비용, 경쟁자의 독자 확보 가능성, 유출 시 국내 산업 기반이나 국방 역량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에서의 증거 확보 역시 현실적인 난관이다. 기술 유출 범죄 특성상 외국 정부의 명시적인 지령문이나 범행계약서 같은 직접증거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이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직접증거가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접촉 시점, 이직·자문계약이나 금전 지급, 대량 다운로드, 파일 복사·압축·암호화·외부 전송, 증거 은닉 정황 등 여러 간접사실을 시간순으로 연결해 범행 전체 구조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개정법이 ‘중개’ 행위를 명시한 만큼, 기술 보유자와 외국 세력 사이를 연결하는 브로커 역시 지령이나 사주 등 나머지 구성요건이 충족되면 분명한 처벌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외국 사기업에 대한 적용 범위도 쟁점이다. 외형상 단순한 외국 기업인 경우 ‘외국에 준하는 단체’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배후에 외국 정부의 실질적 지배나 자금 지원, 정책적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통상적인 이직이나 상업적 분쟁을 간첩죄로 포섭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한계를 짚으며 “단순한 외국 기업에 유출된 것까지 간첩죄로 처벌하기에는 안보 범죄라는 특성상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법적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국회 등에서는 외국 법인 등을 을 이롭게 하는 스파이 행위를 별도로 규율하는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피해자 절차 참여권 보장돼야”
이 변호사는 처벌 조항을 보완하는 것과 함께 피해 기업이 수사와 재판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술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이 해당 정보의 비밀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피고인 측이 이미 공개된 기술이라며 반박할 경우 해당 기술이 왜 보호 대상에 해당하는지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이 높은 기술의 세부 내용과 개발 과정, 경쟁 기술과의 차이 등을 피해 기업 전문가 없이 설명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이 변호사는 “피해 회사가 기술을 제일 잘 알면서도 당사자처럼 재판에 참여해 설명할 수 있는 절차적 권한이 없다 보니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수사 초기 단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 기업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히 마련된다면 사법적 실효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기업의 설명 기회를 넓히는 동시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추가로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기술 유출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가 또 다른 유출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전 대응도 중요하다. 핵심기술과 관련 자료를 분류하고 접근 권한을 관리하는 한편, 유출이 의심될 때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번 ‘2026 산업보안컨퍼런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이러한 기업의 사전 대응 방안도 다룬다. 개정 간첩죄의 적용 쟁점과 함께 핵심기술 보호와 유출 증거 확보를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관리 기준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변호사는 “기술은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용하기 때문에 핵심 인력의 이동과 정보 접근 권한의 변화를 함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모니터링이나 로그 수집이 개인정보 보호와 근로관계상 허용되는 범위에서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지도록 사전에 기준을 잘 정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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