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변화무쌍, 고장난명”…전문가 35인이 본 ‘2027 한국경제 대전망’
- 반도체 호황 속 성장·침체 온도차 뚜렷
경제성장·반도체·AI·환율·중국 ‘5대 변수’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내년 한국경제를 요약하자면 ‘변화무쌍’과 ‘고장난명’입니다.”
오철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29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2027 한국경제 대전망’ 출간 행사에서 불확실성이 커진 내년 경제 환경을 두 개의 사자성어로 압축했다. ‘변화무쌍’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바뀌는 대외 환경을, ‘고장난명’은 호황과 불황이 한 경제 안에 공존하는 현실을 담았다.
경제 전문가 35인이 참여한 이 책은 급변하는 세계 질서와 산업 구도 재편 속에서 한국경제가 맞닥뜨린 과제를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산업별 전망으로 나눠 살폈다. 경제성장·반도체·인공지능(AI)·환율·중국을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를 다섯 가지 핵심 불확실성으로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반도체 호황과 침체 산업 공존…한국경제의 두 얼굴
이날 간담회에서 오 교수는 올해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흐름부터 짚었다. 2026년 한국경제는 수출이 성장을 이끈 가운데, 올해 2분기 반도체 수출 비중은 49.9%에 달했다. 다만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가 한국경제 전반의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봤다.
오 교수는 미래 성장산업과 침체 산업의 온도차를 지적했다. K-푸드·K-뷰티와 우주산업, 피지컬 AI 등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는 반면 자영업과 철강·석유화학은 구조적 침체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근 중앙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한국경제의 현재 위치와 장기 추세를 ‘경제추격지수’로 설명했다. 경제추격지수는 국가별 소득 수준과 경제 규모를 비교해 후발국이 선진국을 얼마나 따라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교수는 반도체 호황과 최근 원화 강세에 힘입어 시장환율 기준 한국의 1인당 소득이 올해 4만3512달러로 예상돼, 전년보다 19.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과 독일의 소득 격차 또한 추격 가능한 수준까지 좁혀졌다는 평가다.
미국 대비 1인당 실질소득 비율에서도 한국은 74%로 일본의 63%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한때 미국의 70%를 웃돌았지만 장기 침체를 거치며 비중이 낮아진 반면, 한국은 미국과의 소득 격차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현재 추세가 유지되면 한국이 미국 소득 수준의 80%에 이르는 데 약 2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독일 경제의 상대적 하락세까지 고려하면 한국이 독일을 추월하는 시점은 10년 안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다수 국가는 미국 대비 소득 수준이 40%에도 미치지 못한 채 ‘중진국 함정’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역시 미국을 추격하던 흐름이 꺾였으며, 현 추세라면 미국과 같은 소득 수준에 도달하는 시점은 70년 뒤로 밀리거나 영원히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AI·반도체가 바꾼 산업 지형…호황의 그늘도 커진다
이날 행사에서는 ‘2027 한국경제 대전망’의 주요 분석도 소개됐다. 저자들은 2026년 한국경제가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성장률 반등을 보이면서도, 회복의 온도는 산업별로 크게 갈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도체와 AI 관련 업종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과 건설업, 자영업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한국경제의 관건은 수출 증가 자체보다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국내 부가가치와 고용·가계소득·소비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봤다. 반도체 산업은 AI 확산으로 기존의 경기 순환을 넘어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메모리가 단순한 비용 요소가 아닌 AI 시스템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자원으로 떠오르고, 중장기 공급계약 확대가 메모리 가격과 반도체 기업의 수익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성장동력이면서 금융시장 질서를 흔들 변수로도 제시됐다. 데이터센터·반도체·전력망 등을 위한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설비투자에 정부 재정적자가 겹치면 세계 자금시장의 차입 수요가 늘고 장기 실질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투자가 생산성과 기업 이익을 높일 수 있지만, 수익이 가시화되기까지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든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환율 부문에서는 ▲미국의 AI 중심 성장과 통화정책 ▲일본 엔화 흐름 ▲한국의 대외자금 동향을 원화 가치에 영향을 줄 변수로 꼽았다.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수요가 이어지고 원화와 엔화의 동조화가 다시 강해질 경우 원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화 약세와 유가 상승이 겹치면 수입물가 부담이 커져 소비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중국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과잉생산을 둘러싼 유럽과의 갈등 ▲AI 투자와 실제 수요 사이의 간극이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미국·유럽·중국 간 무역 갈등으로 번질 경우 중국의 불확실성이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의 수출과 공급망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책이 던지는 질문은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오래갈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대외 변수 속에서 성장산업의 성과를 어떻게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침체산업의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가 한국경제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오 교수는 “광야를 걷는 느낌이 들더라도 현상의 원인이 되는 변수에 집중하시길 바란다”며 “결과뿐 아니라 변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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