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연금통장도 ‘족보’ 따져야…1500만원 세금 방어의 기술 [이병희의 연금술사]
- 1500만원 넘는 순간 과세 스위치 ON
16.5% 분리과세, 종합과세 갈림길
퇴직금·미공제 원금은 빼고 계산해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성공적인 연금 인출 전략을 세우기 위해 “내 계좌에 들어있는 자산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자금 성격과 액수에 따라 세금 체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계좌의 자산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세액공제 받은 납입 원금과 운용 수익’이다. 매년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납입한 금액과 계좌 내에서 예금·펀드·ETF 등에 투자해 발생한 순수 투자 수익이다. 둘째는 ‘세액공제 받지 않은 순수 납입 원금’이다. 연간 세액공제 한도(연금저축·IRP 합산 900만원)를 초과해 납입했거나 소득이 없어 공제 신청을 하지 않은 자기 자금이다. 셋째는 ‘퇴직금 원금’이다. 퇴직 시 IRP 계좌로 이체된 퇴직소득은 연금으로 수령할 때 퇴직소득세의 30%(10년 초과 수령 시 40%)를 감면받는 고유한 과세 체계를 적용받는다.
이 세 가지 출처 중 가장 정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은 ‘세액공제 받은 원금 + 운용 수익’이다. 은퇴 후 연금을 인출할 때 적용되는 연금소득세(3.3~5.5%)의 과세 대상이자 ‘연간 1500만원’ 수령 한도를 판단하는 유일한 재원이기 때문이다.
연간 연금 수령액 1500만원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기점으로 과세 체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간 연금 수령액이 1500만원 이하이면 연령별 연금소득세율만 적용된다. 만 55~69세 5.5%, 만 70~79세 4.4%, 만 80세 이상 3.3%(지방소득세 포함)의 저율로 원천징수된다. 은퇴자가 국민연금을 받고 있거나 부동산 임대 소득, 재취업 근로소득이 있더라도 연금계좌에서 나오는 1500만원 이하의 소득은 다른 소득과 합산되지 않고 분리과세로 종결된다.
그러나 연간 수령액이 1500만원을 단 1원이라도 넘는 순간 세율 구조가 완전히 바뀐다. 기존의 3.3~5.5% 저율 원천징수 혜택이 상실된다. 초과분에 대해서만 세금이 붙는 것이 아니라, 과세 대상 연금 수령액 전액에 대해 ‘16.5% 단일세율 분리과세’와 ‘종합소득세 합산 과세(6.6~49.5% 누진세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은퇴자의 전체 소득 구조에 따라 어떤 과세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매년 내야 하는 세금이 수백만원 단위로 출렁이게 된다.
세액공제 받은 연금 관리 필수, 1500만원 넘기면 세율↑
예를 들어 은퇴자 A 씨가 1년 동안 연금계좌에서 총 3000만원을 인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중 1800만원은 퇴직금 원금, 200만원은 과거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미공제 원금, 나머지 1000만원은 세액공제 받은 원금과 투자 수익에서 나온 돈이다.
세법상 이 은퇴자의 연금 수령액은 3000만원이 아니라 1000만원으로 집계된다. 퇴직금 원금 1800만원은 연금 수령 연차에 따라 원래 냈어야 할 퇴직소득세의 70%(10년 이하) 또는 60%(10년 초과)만 떼고 과세가 종결되며, 미공제 원금 200만원은 이미 과세를 마친 돈이므로 세금이 붙지 않는다.
인출 순서 역시 세법상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연금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 ① 세액공제 받지 않은 원금 ② 퇴직금 원금 ③ 세액공제 받은 원금 및 운용 수익 순서로 빠져나간다. 세금이 없는 돈이 먼저 나오고, 감면 혜택이 적용되는 퇴직금이 뒤를 이어, 세액공제 받은 재원은 가장 마지막에 인출되는 구조다.
1500만원을 초과해 연금을 수령하게 된 은퇴자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선택지 중 무엇이 유리할까.
만약 은퇴 후 국민연금 수령액이 소액이고 별도의 임대·사업·근로소득이 없는 ‘무소득 또는 저소득 은퇴자’라면 종합소득세 합산 과세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소득세법에 따라 연금소득에는 총수령액에 따라 연금소득공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세 대상 연금 수령액이 연간 2000만원인 은퇴자가 다른 소득이 전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법정 연금소득공제(690만원)와 본인 기본공제(150만원)를 차감한 1160만원에 대해서만 세금이 매겨진다. 여기에 종합소득세 최저 세율인 6.6%(지방소득세 포함)를 적용하고 표준세액공제(7만원) 등을 반영하면 실제 최종 결정세액은 약 69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2000만원 전체에 대해 16.5% 분리과세를 적용했을 때 부담해야 하는 세금(33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260만원가량을 아낄 수 있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16.5% 분리과세 vs 종합소득세
반면 은퇴 후에도 상당한 소득이 유지되는 ‘고소득 은퇴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동산 임대소득이나 근로·사업소득, 금융소득이 많아 이미 다른 소득만으로 과세표준이 5000만원을 넘어 26.4% 이상의 누진세율 구간에 서 있는 은퇴자라면, 연금 소득 2000만원이 더해지는 순간 최고 26.4%~41.8%의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 이럴 때는 16.5% 단일세율 분리과세 카드를 사용해 세금의 상한선을 묶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과세 대상 연금의 인출 규모를 줄이는 전략으로는 수령 기간 연장이 있다. 만약 세액공제 원금과 운용수익이 총 2억 원 쌓인 계좌에서 10년 동안 나누어 받는 것으로 설정하면 매년 2000만원씩 인출돼 1500만원 초과 과세 구역에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수령 기간을 15년 또는 20년으로 연장하면 연간 수령액이 1500만원 이하로 떨어져 저율 과세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부부 명의 계좌에 분산해 자금을 넣고 인출하는 방법도 있다. 현행법상 연간 1500만원 기준선은 세대 합산이 아니라 ‘개인별 과세 기준’이다. 남편 단독 명의 계좌에서 매년 3000만원을 인출하면 전액 초과 과세 대상이 되지만, 남편과 아내 명의로 계좌를 나눠 각각 1500만원씩 인출하면 둘 다 저율 분리과세(5.5%) 구간에 안착한다. 단순히 명의를 나눈 것만으로 매년 수백만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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