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제2의 온플법?…배달 수수료 상한제, 한미 통상 갈등 불씨 되나
- [착한 가격 통제의 함정]②
李 대통령 핵심 공약…여야 합의에 입법 ‘속도’
배민 품는 우버에…배달앱 눈 돌리는 美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수수료 상한제’ 입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한미 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 배달앱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배달 플랫폼이 미국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법안 3건이 발의된 상태다. 배달비와 중개수수료, 결제수수료, 광고비 등의 합계가 주문 매출액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도입은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온플법에 배달앱 수수료 관련 내용을 담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 등으로 별도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음식 배달 플랫폼 서비스 이용료 등에 관한 법률안’(음플법)이 대표적이다.
수수료 규제에 ‘통상 마찰’ 우려 ↑
정치권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법안은 여야 간 합의 불발로 지난 9월 16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했다. 최근 수수료 상한제 도입 취지에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입법 논의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의 추진 의지도 강력하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9월 21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배달앱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면서 “국회와 계속 입법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11월 중순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관련 법안 심사가 시작될 거라고 본다. 문제는 배달앱 규제가 미국 기업을 겨냥한 조치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선주 국회 정무위 전문위원은 지난 3월 정무위 법률안 검토보고서에서 “한국의 플랫폼 규제 입법에 대해 미국 측이 꾸준하게 ‘비관세 장벽’이라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며 “수수료 상한제 같은 강도 높은 규제를 정책 수단으로 채택하면서 거래 규모 등에 따라 규제 대상을 차등화할 경우 쿠팡 등 미국 기업에도 규제가 적용돼 통상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부도 “플랫폼 규제는 미국 의회, 정부, 업계의 관심이 큰 사안으로 관련 법안이 통상 분쟁의 소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재 한국의 배달앱 시장은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의민족(배민)과 쿠팡 계열사인 쿠팡이츠가 주도하는 양강 체제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배민과 쿠팡이츠의 신용·체크카드 결제 추정액은 각각 9470억원, 7726억원으로 집계됐다. 배달앱 4사(배민·쿠팡이츠·요기요·땡겨요) 가운데 두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은 96%를 웃돈다.
“규제 강화 시 DH 인수 무산 가능성도”
공정위는 지난 9월 22일 미국의 차량 공유 플랫폼 ‘우버’(우버 테크놀로지스)의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사전심사에 착수했다. DH는 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최대 주주다. 우버가 기업결합 승인을 받으면 국내 1위 배달 플랫폼인 배민의 경영권을 갖게 된다.
쿠팡이츠의 모회사인 쿠팡Inc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인 만큼 배달앱 규제가 한미 통상 문제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한국의 배달앱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우버의 DH 인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배달앱은 비교적 미국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영역이었으나 우버가 배민을 인수해 국내 배달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면서 “미국이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주시하는 상황에서 미국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높은 배달앱 규제를 강화하면 미국의 통상 압력도 거세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쟁법학회 회장인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가 통상 마찰을 유발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심 교수는 “법안의 주요 적용 대상인 배민과 쿠팡이츠가 미국과 관련이 높은 상황에서 수수료 상한제를 밀어붙이면 미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로 받아들여 통상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현재 DH 인수를 추진 중인 우버도 수수료 상한제 법안 도입으로 배민의 시장 가치가 낮다고 판단하면 거래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구글·애플·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기 때문에 배달앱 규제가 한미 통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우버가 배민을 통해 한국 배달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미국의 관심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배달앱의 수수료 상한을 법으로 제한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한다면 배달 플랫폼 입장에서는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정부가 규제를 통해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건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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