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사적 연금에 세금 깎아준다더니 건보료 매기나 [이병희의 연금술사]
- 건보공단, 미부과 분리과세 소득 인정 검토…대상·시기는 미정
‘소득 있는 곳에 보험료’ 형평성 vs 노후 투자 유인 위축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금융소득이나 연금소득처럼 ‘분리과세’되던 소득에도 건강보험료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그동안 세액공제와 저율 분리과세 혜택을 앞세워 사적연금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권장해 왔다. 그런데 이 자금에 건보료가 붙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사실상 저율 과세 혜택을 깎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단은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주요 업무 추진현황’ 자료에서 ‘미부과(분리과세) 소득에 대한 보험료 부과 추진’을 공식 보고했다. 과세 대상 소득인데도 보험료를 매기지 않는 소득이 있는 것은 소득 중심 부과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다만 구체적인 부과 대상과 적용 시기, 소득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분리과세란 특정 소득을 다른 소득(근로·사업·연금·기타소득 등)과 합산하지 않고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에 원천징수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이렇게 한 번 세금을 내면 더 이상 납세 의무를 지지 않는다. 1년간 발생한 모든 소득을 합산해 금액이 클수록 높은 세율(6~45%, 8단계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종합과세와는 차이가 난다.
ISA·연금계좌, 개인의 노후 준비 위해 저율 혜택 보장
ISA는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배당 소득에서 손실을 뺀 순이익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일반형은 순이익 200만원까지 비과세이고 200만원을 넘는 금액에는 9.9%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예컨대 순이익이 1200만원이면 200만원을 뺀 1000만원에 9.9%(99만원)가 부과된다. 일반 금융상품의 이자·배당소득세가 15.4%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율만 5.5%포인트 낮은 셈이다. 비과세 한도 200만원의 혜택은 별도다.
사적연금은 납입할 때 세액공제를 받고,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받을 때 연금소득세를 내는 구조다. 연간 수령액이 1500만원 이하면 나이에 따라 3.3~5.5%만 과세한다. ▲만 55세 이상 70세 미만 5.5% ▲만 70세 이상 80세 미만 4.4% ▲만 80세 이상 3.3%다. 이 한도에는 세액공제를 받은 원금과 운용수익이 포함되며, 공적연금과 이연퇴직소득,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원금은 제외된다. 만 65세 은퇴자 A씨가 연금으로 1500만원을 받으면 5.5%인 82만5000원의 세금을 내면 된다.
연간 수령액이 1500만원을 넘으면 16.5% 분리과세와 종합과세 중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다. A씨의 사적연금이 1600만원이고 분리과세를 택하면 16.5%인 264만원을 내야 한다. 연금이 100만원 늘었을 뿐인데 세금은 약 181만원 불어나는 셈이다. 다만 이는 분리과세를 택했을 때의 이야기다.
종합과세를 택하면 계산법이 달라진다. 연금소득은 연금소득공제(1600만원 기준 650만원)를 뺀 950만원이 다른 소득과 합산돼 소득공제 등을 거쳐 과세표준이 정해지고, 여기에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하면 ▲과세표준 1400만원 이하 6.6%(62만7000원) ▲5000만원 이하 16.5%(156만7500원) ▲8800만원 이하 26.4%(250만8000원) ▲8800만원 초과 38.5% 이상(365만7500원 이상)의 세금이 붙는다. 연금소득금액 950만원에 해당 구간 세율을 단순 적용한 값으로, 기본공제 등 다른 공제와 세액공제는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연금 외 소득이 적다면 분리과세(264만원)보다 종합과세의 세금이 훨씬 적을 수 있다.
문제는 건강보험료다. 현재 보험료가 붙는 분리과세 소득은 연 2000만원 이하 주택임대소득과 연 1000만원을 넘는 금융소득 등 일부에 그친다. 반면 일용근로소득, 하이일드펀드 배당, ISA의 비과세 한도 초과 수익, 연 1500만원 이하 사적연금(연금저축·개인형퇴직연금(IRP)) 등은 보험료 산정에서 빠져 있다. 공단은 이런 소득을 단계적으로 부과체계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퇴자에게 가장 민감한 대목은 피부양자 자격이다. 자녀나 배우자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리면 보험료를 내지 않는데, 현재 소득요건은 연간 합산 소득 2000만원 이하다. 기혼자는 부부 모두 이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재산요건도 별도로 갖춰야 한다. 지금은연간 1500만원 이하 사적연금을 건강보험료 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이 포함된다.
“연금이 소득으로 잡히면 피부양자 자격 박탈 늘 것”
하지만 이 소득들이 보험료 산정에 합산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ISA 수익이나 이자·배당, 사적연금이 연 2000만원 기준에 더해지면 피부양자 요건을 넘는 가구가 생길 수 있다.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부담한다. 지역가입자 소득보험료율은 7.19%다. 소득 2000만원이 건보료에 반영된다고 단순 계산하면 소득분만 연 약 144만원, 월 12만원가량이다. 여기에 재산에 따른 보험료가 더해질 수 있어 부담은 이보다 커질 수 있다.
건강보험료율은 2026년 7.19%로 오른 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2027년 요율도 같은 수준으로 동결했다. 요율이 같아도 부과 대상이 넓어지면 가입자가 체감하는 부담은 달라질 수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절세 효과가 줄어들 경우 투자 유인도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ISA와 연금 계좌를 통해 증시로 자금을 끌어들이고 국민의 장기 자산 형성을 유도해 온 만큼, 부과 방식에 따라 정책 효과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건보료 부과는 ISA를 이용해 세금을 아꼈던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라고 했다. 그는 “세금을 5.5%p 아끼려다가 건보료 7.09%를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은퇴자의 부담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며 “위험은 내가 지고, 수익이 나면 세금과 건보료로 다 떼어간다고 실망한 투자자들이 부동산으로 자금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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