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봅시다 - ‘연말정산 증세’ 논란 - 정부의 꼼수가 부른 촌극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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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봅시다 - ‘연말정산 증세’ 논란 - 정부의 꼼수가 부른 촌극

따져봅시다 - ‘연말정산 증세’ 논란 - 정부의 꼼수가 부른 촌극

▎최경환 경제부총리(오른쪽)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 국무총리 내정자),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1월 21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연말정산 관련 긴급 당정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오른쪽)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 국무총리 내정자),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1월 21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연말정산 관련 긴급 당정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뿔났다. 새로 바뀐 연말정산을 해봤더니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서다. 그간 정부의 설명은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은 늘고, 중산층 이하는 부담이 줄어든다는 거였는데 실제로 계산해보니 일부 저소득층을 제외한 대다수는 지난해보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처지다. 2013년 8월 정부는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연 소득 3450만원 이상인 434만명의 세부담이 증가한다고 했다가 월급쟁이 증세란 비난에 밀려 일주일 만에 수정안을 발표했다. 연 소득 3450만~5500만원 중산층은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고, 5500만~7000만원인 경우에만 소폭(2~3만원) 증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거짓이었다. 의도했든 실수였든 결론이 틀렸다. 자녀 등 부양가족에 따른 공제 혜택 등은 전보다 줄었고,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된 탓에 교육비와 의료비, 연금저축 부담은 늘었다. 연말정산을 먼저 해본 직장인 사이에서 ‘13월의 세금폭탄’이란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반발은 점점 거세졌다. 결국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지만 사후약방문이었다.
 전례 드문 세금 환급으로 졸속 입법 자인

논란이 확산되자 새누리당과 정부는 긴급 당정협의를 갖고 연말정산 보완 대책을 내놨다. 당장 현 제도를 손 보긴 어려우니 일단 정해진 대로 하되 국회가 법을 고쳐 5월쯤 세금을 돌려주는 방안이다. 일단 가장 논란이 됐던 자녀세액공제 수준을 확대하기로 했다. 자녀가 많을수록 공제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출생·입양 공제제도도 다시 도입하기로 했다. 신혼부부의 불만을 반영한 조치다. 세액공제 전환 이후 연금저축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연금저축공제율 역시 현행 12%에서 15%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다. 이렇게 개선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4월 중 통과시켜 5월 또는 늦어도 6월 내에 세금 환급을 해주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법을 소급 적용해 세금을 되돌려주겠다는 얘기다. 애초에 졸속 입법이었음을 자인한 꼴이다.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조세 정책의 핵심은 신뢰인데 이게 무너졌으니 그럴만하다. 사실 우리나라 연말정산 제도는 세계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2009년 미국 재무장관에 내정된 티머시 가이트너는 취임하기까지 상당 기간 곤욕을 치렀다. 4만3000달러(약 4800만원) 가량의 세금을 탈루한 의혹 때문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실수(Mistake)’라는 단어를 무려 41번이나 쓰면서 바짝 몸을 낮췄다. 세무사 비용을 아끼려 본인이 직접 개인용 연말정산 프로그램을 쓰다 실수를 범한 것이란 설명이었다. 그의 해명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미국에는 가이트너와 비슷한 실수를 했다가 훗날 고생하는 이들이 꽤 많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연말정산은 국민 개개인이 세무사를 써야 할 정도로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최근엔 더욱 간편해졌다. 불과 몇년 전까진 직접 서류를 떼다가 회사에 제출해야 했지만 이제는 국세청 홈페이지에 나온 대로 출력만 하면 된다. 의료비나 교육비 등 별도로 제출할 서류만 평소에 꼼꼼히 챙겨두면 1년 세금 정리를 1~2시간 안에 끝낼 수도 있다.

골격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숫자놀음이다. 편리하다고 세금 더 내는 걸 참을 사람은 없다. 바뀐 연말정산의 핵심은 세액공제로의 전환이다. 소득공제는 소득 중 일정 부분을 소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액공제는 소득에 따라 정해진 세율을 곱해 나온 세금을 빼준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기존 소득공제 방식이던 연금저축은 올해 12%의 세액공제(한도는 연 400만원으로 동일)로 바뀌었다. 한도를 다 채웠다는 가정 하에 과표구간이 1200만원 이하(세율 6%)인 사람은 기존에 24만원(400만원×0.06)을 돌려받았지만,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48만원(400만원×0.12)을 환급 받게 됐다. 하지만 과표 구간이 4600만원 이하(세율 15%)인 사람은 기존에 60만원(400만원×0.15)을 받다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48만원(400만원×0.12)만 돌려받게 된다. 세금을 12만원 더 내는 셈이다.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그동안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 연말에 환급도 많이 받았던 고소득자는 환급액이 크게 줄었다. 과표 구간이 1억5000만원 초과(세율 38%)인 사람은 의료비로 700만원을 썼을 때, 기존에 266만원을 돌려받았지만 세액공제로 변경되면서 105만원만 돌려받게 됐다. 그러므로 저소득층의 부담이 줄고, 고소득층의 부담이 늘었다는 정부의 설명도 영 틀린 얘기는 아니다.
 국민 인식과 전혀 다른 ‘중산층’ 기준

문제는 중산층이다. 저소득층(1200만원 이하)의 세부담은 120만원 줄고, 고소득층(8800만원 초과)의 세부담은 300만원 이상 늘었지만 중산층(1200만원~8800만원)도 세금을 더 내게 됐다 <표 참고> . 세액공제로 전환된 항목 중 4가지만 가지고 계산한 표다. 나머지 항목을 추가하면 부담은 훨씬 더 커진다. 애당초 정부는 중산층의 부담은 거의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고소득층의 기준을 5500만원 이상(과표구간 중 4600만원 이하와 거의 비슷)으로 간주하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의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성인 남녀 817명 대상)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월 소득 515만원 정도였다. 세후 515만원을 받으려면 연봉이 8500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 과표구간 ‘8800만원 이하’와 거의 일치한다. 어디까지를 중산층을 볼 것이냐에 대해 정부와 국민 간 인식의 괴리가 크다는 얘기다. 이번 연말정산에 대해 과장·부장급 월급쟁이의 반발이 특히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이번 논란은 정부와 국회의 참극이다. 정부는 국민의 눈높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국회는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의 대응은 한심했다. 2013년 12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9차 조세소위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교육비나 의료비를 세액공제로 하면 고소득층 부담도 늘지만 중산층 부담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고 지적하자 소위원장인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은 “(정부가) 중산층 부담 안 늘어나도록 다 조정했다”고 말했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세제실장(현 관세청장)이 “중산층이라고 하는 부분이 지금 8600만원 정도까지는 안 늘어난다”고 도왔다.

홍 의원이 재차 “출생·입양 공제를 없애기로 한 것 등을 고민 해봐야 한다”고 지적하자 나 의원은 “정부가 어디선가 다 보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안에 손대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반론을 제기하긴 했으나 야당 의원들 역시 중산층이 얼마나 부담을 안게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최고세율 적용범위를 확대(3억원→1억5000만원)하는 문제에만 집중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증세를 피해가려는 정부의 애매한 태도다. 정부는 지난해 경마·경륜장과 강원랜드 등의 개별소비세를 두 배가량 올린 데 이어 담뱃세도 2000원 인상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안도 곧 국회를 통과한다. 자동차세 연납(2번에 나눠내는 자동차세를 1월에 한꺼번에 내는 것) 할인 역시 곧 폐지할 예정이다. 세수는 부족한데 증세는 못 하겠으니 자꾸 쥐어짜는 거다. 꼼수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1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내면 국민에겐 증세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증세는 아니며, 앞으로도 증세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오바마의 ‘상위 1% 증세’가 부러운 이유
증세는 철저히 정치의 영역이다. 권력이든 의석이든 뭔가 포기 해야 시도라도 할 수 있다. 조심스러운 건 알겠는데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돈 나갈 곳은 늘었지만 세수는 그대로니 재정수지 적자만 는다. 어쩔 수 없이 복지를 위한 증세를 공론화하거나 무리한 복지 정책을 재조정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의미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1월 2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그마에 갇혀 있다 보니 세부담이 늘었는데도 증세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이번 연말정산과 같은 편법 증세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며 “세금 문제를 솔직하게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창 서울시립대 세무행정대학원교수는 “정부는 필요한 재원의 규모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동시에 국민 또한 정부에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말정산 후폭풍에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이제는 증세 얘기를 꺼내고 싶어도 국민이 이해를 안 해줄 분위기다.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최 부총리가 사과하던 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상위 1%가 축적된 부에 걸맞은 세금을 내도록 해 불평등을 초래하는 세금 구멍을 막고 이 돈을 보육과 교육에 쓰자”고 말했다. 상위 1%인 ‘수퍼 리치’와 금융회사로부터 10년간 3200억 달러(약 350조원)의 세금을 더 걷고, 중산층에게 1750억 달러(약190조원)의 감세 효과를 주는 세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를 위해 고소득층(연 소득 50만 달러 이상)의 자본소득과 배당이익 최고세율을 현행 23.8%에서 28%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물론 아직은 계획이다. 현재 미국 상·하원은 모두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증세에 반대 입장인 공화당의 벽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으리란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소수만 특별히 잘 사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이냐,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소득과 기회를 창출하는 경제에 전념할 것이냐를 결정할 때”라며 “정치가 발목을 잡지 않으면 이 정책(상위 1% 증세)은 작동한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선전포고다. 이런 솔직함과 당당함이 한국 정치엔 안 보인다. 새삼 미국이 부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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