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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경제가 죽 쑨다고?

러시아 경제가 죽 쑨다고?

경제 제재는 오히려 러시아 경제의 일부 측면에 도움을 줬다. 제철 업체들은 루블화 약세의 덕을 봤다(왼쪽). 유가하락이 푸틴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시키리라는 희망은 모두 백일몽으로 끝났다. 지난 4월 중순 푸틴이 러시아 TV에 출연해 경제가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고 큰소리쳤다.
6개월 전 석유(러시아 경제의 젖줄)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합병한 뒤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도 타격을 주고 있었다. 러시아 통화 루블화 가치가 하락하고 자본도피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러시아 부자들이 갈수록 많은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길 만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이 약화될 수 있을까? 경제적 압박이 그에게 고삐를 채우고 나아가 그의 몰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을까?

요즘 그 답이 분명해지고 있다. 서방이 기대하던 답은 아니다. 푸틴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을 뿐 아니라 대다수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주식시장은 올해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뜨겁게 달아오른다. 지난 1년 사이 달러 대비 거의 반 토막 났던 루블화도 반등하고 있다. 금리는 제재 이후 천장을 치고 돌아섰다. 정부 세수는 예상보다 많이 걷힌다. 외환 보유액은 위기 이후 저점 대비 100억 달러 가까이 불어났다.

유가하락의 고통은 계속된다. 브렌트 원유가가 10달러 하락할 때마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2%씩 줄어든다고 시티코프 경제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세계 최대·최저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전히 기록적인 양의 원유를 퍼 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추가적인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경제에 주름이 지게 된다. 그러나 시티코프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지난 18개월 동안 쪼그라들기만 하던 러시아 GDP가 이제부턴 원유가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연간 최대 3.5%의 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회복의 원동력은 뭘까? 북서부 볼로그다주 남부에 인구 30만 명이 거주하는 체레포베츠 시의 예를 살펴보자. 음울한 회색 공업도시인 이 지역의 최대 고용기업은 옛 소련 시대에 탄생한 제철 업체다. 경제제재와 유가 폭락의 여파 속에서 체레포베츠는 세계의 공업도시 중 성장 가능성이 작은 쪽에 속할 성싶다.

하지만 요즘 잘 나가고 있다. 2014년 마지막 분기, 현지 제철 업체 세베르스탈은 기록적인 생산량에 6년 래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 4월 9일에는 르노-닛산 자동차 공장과 압연강(rolled steel)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르노-닛산 공장은 러시아 현지에서 옛 소련 공화국들, 중동, 아프리카로의 수출을 확대하려 계획 중이다. 고용인원이 총 5만2000명에 달하는 세베르스탈은 올해 최소 2000명을 추가 충원할 계획이다.

상당수 러시아 기업보다 세베르스탈의 경영 능력이 더 우수하지만 그렇다고 예외적인 사례는 아니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분기 러시아 증시 대표 지수 MICEX의 러시아 기업 78%가량이 다른 나라 기업보다 매출액 증가가 더 크게 나타났다. 러시아 기업은 전반적으로 현재 MSCI 신흥시장 지수의 다른 기업보다 수익성이 더 높다.

이처럼 러시아 경제를 살리는 동력은 뭘까? 통화가치의 급락은 분명 경제적인 고통을 초래한다. 수입품 가격이 비싸지고 러시아 정부나 기업이 안고 있는 외채가 루블화로 따질 때 그만큼 더 불어난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것이 또한 결과적으로 교과서적인 경제 혜택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수입 대체(import substitution)’ 효과가 발생한다. 소비자가 수입품을 구입하는 대신 국내에서 생산된 더 값싼 제품으로 돌아선다는 의미다.

제품의 20% 가까이를 수출하는 세베르스탈 같은 기업의 경우 통화 가치하락의 혜택이 확연히 드러난다. 러시아에서 철강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철광석·망간·니켈·인건비·노동력·전기)은 모두 루블화로 표시한다. 이는 다른 나라의 경쟁사들에 비해 그들의 원가가 크게 낮아진다는 의미다. 동시에 그들이 수출하는 철강 가격은 모두 미국 달러나 유로로 표시한다. 두 통화 모두 루블화 대비 가치가 상승했다. 기업들이 해외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루블화로 바꾸면 1년 전보다 훨씬 큰돈이 된다.

러시아의 방대한 에너지 분야에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를 대량 수출하고 대금은 달러로 받는다. 크렘린의 푸틴 정부와 밀착된 대형 석유 생산업체 로스네프가 지난해 18%의 수입 증가를 기록한 까닭이다. 반면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해외 경쟁업체들의 수입 증가율은 1%에도 못 미쳤다. 러시아의 세수가 급감하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다. 덕분에 지난해 위기의 고통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 러시아의 석유 생산량은 여전히 기록적인 고점에 근접해 있다. 사우디의 계속된 전력 생산과 함께 유가가 여전히 약세를 유지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 같은 현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1998년에도 어느정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러시아로 확산돼 모스크바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빠지고 루블화를 평가절하했을 때였다. 즉시 경제에 쇼크가 발생한 뒤 ‘수입대체’ 효과에 편승한 경기회복이 이어졌다. 당시 세계적인 경제 전문가 대다수가 예상하던 수준보다 훨씬 상승세가 가팔랐다. “이는 1998년 이후와 반드시 규모가 같지는 않더라도 성격상 비슷한 경기회복이 이번에도 이어지리라는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시티코프의 이반 차카로프 이코노미스트가 말했다.

물론 그 뒤로 러시아 정부의 성격과 그들을 보는 서방의 인식이 바뀌었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로 전환하려 애쓰던 불안정한 신생 민주체제였다. 선진국 진영이 그들의 체제 안정을 위해 애를 많이 썼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안된 오늘날, 푸틴이 크렘린을 장악하고 복고주의적 성격이 강한 아젠다를 앞세워 미국에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옛 소련을 재구성하려는 노림수다.

지난해 유가가 폭락했을 때 서방 진영에선 상당한 기대를 품었다. 제재가 못한 일을 유가하락의 충격이 이뤄주리라는 기대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고, 어쩌면 푸틴이 집안 단속에 매달리게 되는 상황을 그들은 바랐다.

그것이 희망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불확실한 문제가 됐다. 러시아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짐에 따라 푸틴의 대외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듯하다. 러시아 내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미국 정부와 우방들이여, 백일몽에서 깨어나라. 블라디미르 푸틴은 건재하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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