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나 떨고 있니”…李 ‘라면값’ 지적에 숨죽인 식품업계
- [‘물가 전쟁’ 시작됐다]②
초콜릿·과자·커피·라면·맥주 등 줄인상
“가격 상승 구체적 근거 제시해야”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라면값을 언급하며 물가 안정 대책을 주문하면서 식품 기업을 비롯한 유통업계의 긴장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식품업계는 당분간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면서도 국내외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면서 물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국정 공백기를 틈타 식품 기업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며 서민 가계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정부가 식품업계 ‘군기 잡기’에 나섰다.

물가 1%대에도…가공식품 ‘고공행진’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2020년=100)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1.9% 상승하며 5개월 만에 1%대로 내려왔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 물가는 4.1% 올라 두 달째 4%대를 이어갔다.▲초콜릿(22.1%) ▲비스킷(9.6%) ▲주스(8.8%) ▲커피(8.4%) ▲냉동식품(6.9%) ▲라면(6.2%) ▲아이스크림(5.3%) 등의 상승 폭이 유독 컸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정국 혼란기 6개월간 식품·외식기업 60여 곳이 환율 급등과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앞다퉈 올렸다.
농심은 올해 3월 대표 상품인 ‘신라면’과 ‘새우깡’을 비롯해 총 56개 라면·스낵 등 17종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했다. 오뚜기는 지난 4월 ‘진라면’(10%)을 포함한 라면 16개 출고 가격을 평균 7.5%, 편의점 판매 3분 카레와 짜장 제품은 약 13.6% 올렸다.
동서식품은 지난 5월 ‘맥심 모카골드’, ‘카누 아메리카노’ 등 인스턴트 원두커피값을 평균 9% 인상했다. ‘맥심 티오피’, ‘맥스웰하우스 RTD’(Ready To Drink) 등 커피 음료의 가격은 평균 4.4% 상승했다.
롯데웰푸드도 8개월 사이 두 차례에 걸쳐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의 값을 높였다. 롯데웰푸드의 ‘초코빼빼로’는 작년 6월 1800원에서 지난 2월 2000원으로 17.6% 상승했다. 같은 기간 크런키는 1200원에서 1700원으로 41.7% 뛰었다.
주류회사도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켈리’ 등 맥주 출고가를 지난달 평균 2.7% 인상했다. 오비맥주는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 가격을 지난 4월 평균 2.9% 높였다.

식품업계, 가격 인상 ‘눈치싸움’
식품업계는 주요 원재료의 가격 상승과 환율 부담 등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의 ‘라면값’ 발언 이후 지난 13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주재한 ‘밥상물가 안정을 위한 경청 간담회’에서 김명철 식품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식품 기업의 가격 인상은 비상계엄 이후 환율 폭등 등 경제 여건이 악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식품업계가 지난해 원자재 가격 폭등, 인건비·에너지 비용 상승 등으로 경영난을 겪어왔으나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해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왔다”고 덧붙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민생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당장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이미 대부분의 식품 기업이 정권 교체 전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직 정부에서 구체적인 물가 안정 방안이 나오지 않아 대응 계획을 정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정부의 기조에 최대한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란 공격 등 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며 추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에 관해서는 “원자잿값이나 물류비 등이 실시간으로 반영되지는 않는다”면서 “비축 물량이 있어 지금 가격에는 영향이 없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민석 “유통 거래 투명성 높여야”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의 구조상 최근 가공식품의 가격 상승세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가격이 한 번 오르면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업이 원가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 뒤 시장 상황이 변하더라도 다시 가격을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며 “원재룟값은 하락해도 인건비나 임대료 등을 이유로 인상된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과점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수입 품목을 늘리는 등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는 일도 물가 안정 방안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물가가 오르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식품업계의 전반적인 가격 인상이 합리적인지를 분석해 연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가공식품 등의 필수재는 가격이 올라도 소비할 수밖에 없어 가격 인상에 민감한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다는 식품업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 13일 간담회에서 “식품, 외식 가격 정보를 소비자가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보 공개 범위를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유통 과정이 불분명하거나 불투명한 품목에 대해서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농축산물 수급 안정과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농식품 수급·유통 구조 개혁 TF’를 신설했다. 주요 품목별 수급 대책을 논의하고 식품 가격 인상 품목과 인상률 최소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가공식품 유통과 관련해 시장을 왜곡하거나 불합리한 관행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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