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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기자의 글로컬 컴퍼니 | 슈나이더 일렉트릭 코리아] 단순한 에너지 절감? 불필요한 손실 절감!

[박상주 기자의 글로컬 컴퍼니 | 슈나이더 일렉트릭 코리아] 단순한 에너지 절감? 불필요한 손실 절감!

글로벌 기업의 해외 현지 지사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현지에 내놓는 한편, 현지에서 다시 해외로 진출하는 발판이 된다. 글로벌(Global)과 지역(Local)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글로컬(Global+ Local)형 회사’다. 한국에도 이런 기업이 많다. 국경이 없는 비즈니스 시대에 적합한 형태다. 글로컬 컴퍼니를 이끄는 CEO로부터 한국 시장에서의 역할과 위치, 세계 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듣는다.
사진:오상민 기자
설계 수명이 다한 가압중수로 67만9000 kW급 원자력발전기(원전) 월성 1호기가 2022년까지 재가동키로 했다. 고리 원전 1호기는 2017년 이후 가동을 중단하고 폐로에 들어가는 걸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쉽게 이뤄지진 않았다. 새로 원자로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원자로를 더 써야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쪽과 이미 설계수명이 끝난 원자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쪽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원자로를 두고 벌이는 사회적 갈등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용 중인 원전은 모두 23기, 2만 716MW로 전체 발전량의 79.2%를 감당한다. 하지만 원전은 운전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매년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맞추고 전력 공급가격을 낮추려면 계속 원자로를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그럴 때마다 원전 재활용, 폐기 등을 놓고 벌이는 극렬한 사회적 갈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합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원전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업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 코리아 김경록(47) 대표는 “에너지 관리만 잘하면 원전 증설을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찌는 더위에도 에어컨을 끄거나 공장 가동률을 줄여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쓰는 에너지와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발전소 증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원전을 둘러싸고 몇 달째 힘을 겨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안할 정도로 간단한 답변이다.
 에너지 관리만 잘해도 원전 증설 줄일 수 있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전력의 특징 때문이다. 통상 전기 1을 쓰기 위해선 발전소가 3배의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머지 2는 송전선로, 배전선로에서 소모되거나 전압을 낮추거나 직류를 교류로 변화시키는 과정 등에서 사용되지도 못한 채 소모된다. 달리 말해 전기 1만 절감하면 3의 발전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에너지를 많이 절감하면 할수록 발전소 증설을 막을 수 있다.

수백 MW급 원자력 발전소를 더 만들지 않으려면 대규모 절감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스위치 하나 잘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주로 산업용과 공공·상업용 등 에너지 사용이 많은 곳에서 절감 시스템을 설치해 전략적·기술적으로 소비를 줄여야 한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제시하는 ‘효율적 에너지 절감’ 방안이 그렇다. 단순히 전기를 아껴 쓰는 ‘세이빙’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 에너지를 쓰면서도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는 기술적 방안이다. 에너지를 보다 생산적이고 신뢰할 수 있게,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에너지가 사용되는 거의 모든 지점에서의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을 관리하는 에너지 효율화 및 자동화 솔루션을 적용한다. 김 대표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기술력을 통하면 총량적으로 사용 에너지의 30%를 줄일 수 있는데, 이를 에너지 생산으로 환산하면 현 에너지 생산의 90%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에너지 효율화 개념은 이미 여러 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절감 효과에 비해 사회적 관심은 덜 받는 편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전통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생산처럼 공급 측면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관 좋은 산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를 돌리고 대규모 발전소를 세운다. 각 지자체 입장에선 지역 고용이 늘고 경제 발전상을 눈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토목 사업을 동반하는 공급 방식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산업용·상업용 에너지 절감에 집중해야
슈나이더 일렉트릭 글로벌 본사의 에너지 모니터링 시스템. / 사진:슈나이더 일렉트릭 제공
물론 정부도 에너지 절감 정책을 편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전기 절약 캠페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여름철 실내온도를 좀 더 높이고 옷을 시원하게 입자는 식이다. 십시일반으로 전기를 조금씩 절약하자는 얘기다. 착해 보이는 말이고 뜻도 좋지만 답이 될 순 없다. 일반인들이 쓰는 가정용 전기 비중은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철강·석유화학·반도체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한국 산업의 전기 소비 비율은 52%이고 공공·상업용은 32%에 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미국의 29%, 일본의 57%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미국인의 3분의1, 일본인의 절반 정도의 전기를 쓴다는 말이다. 이미 적게 쓰고 있으니 더 절감해봐야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국가적 전력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에어컨을 끄는 수준으론 어림없다.

전력 수요를 본격적으로 조절하려면 대규모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용 전기 절약이 필수다. 이런 통합 에너지 관리 솔루션에 분야에서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독보적인 존재다. 전기에너지를 생산해 산업용으로 공급하는 중전 분야에서는 ABB·지멘스·LS산전이 경쟁사다. 에너지 관리 부분에서는 지멘스와 GE, ABB와 일부 경쟁한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합하는 토털 에너지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문 기업은 슈나이더 일렉트릭뿐이다. 정전 없이 적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도록 에너지의 안전성·신뢰성·효율성을 높이는 통합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개발해 판매한다. 에너지 인프라, 산업 공정, 빌딩 자동화, 데이터센터, 스마트시티 등이 주요 영업 대상이다.

에너지 관리 사업 등 차세대 사업을 주력으로 하지만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업력은 179년이나 된다. 1836년 철강·중장비·조선 등 전형적인 제조 업체로 출발한 프랑스 기업이다. 철강회사로 유명해 에펠탑에 창업자 유진 슈나이더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세기 들어 전력, 자동화 및 제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21세기 이후엔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사업 분야를 변경했다. 이때부터 에너지 관리를 미래산업으로 정하고 관련 연구소와 기업을 인수·합병(M&A)해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업종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면서도 기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15년 전보다 매출은 3배가량 늘었다.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수익성도 개선됐다. 영업이익률이 13~17%에 달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어서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세계 100여개국에 15만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며 연간 매출 규모는 240억 유로(약 34조원, 2013년 기준)에 달한다. 매출 비중은 대륙별로 고른 편이다. 2006년부터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글로벌 CEO을 맡고 있는 장 파스칼 트리쿠아 대표도 홍콩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만큼 아시아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엔 1975년 들어왔다. 외국계 기업으로선 비교적 일찍 한국에 자리 잡은 편이다. 이후 40년간 산업 기반 시설 확충에 힘을 보태면서 한국 경제와 동반성장했다. 김경록 대표는 2013년 4월부터 슈나이더 일렉트릭 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인으로선 처음이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시장 중 하나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주로 석유 및 가스, 조선, 해양, 유틸리티 분야 200여 한국 기업과 협력한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한국의 EPC(설계·조달·시공)업체들이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참여해 에너지의 효율적 관리를 담당한다. 이를 통하면 에너지 비용을 50%가량 줄일 수 있다. 현재 한국 지사는 5개 법인을 가지고 있다. 매출은 지난해 기준 3500억원이다. 시장 전망은 밝다. 2050년까지 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에너지 소비는 같은 기간 약 2배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각국 에너지 정책이 공급에서 관리로 전환 중이다. 한국 역시 에너지 정책을 바꿀 변곡점에 있다. 전국 산업 인프라에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적용해야 할 시기가 가까워졌단 의미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이 분야의 독보적인 솔루션을 지속 개발해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기산업은 약한 편이다. 김 대표는 한국의 전기산업에 대한 투자를 좀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선진 기업 수준까지 올라있습니다. 전자나 모바일, 조선 등은 이미 세계 최고지요. 하지만 전기만 놓고 보면 ‘선진 기업에 들어가는 문턱’ 정도랄까요. 세계 시장에서도 진입장벽이 낮은 쪽에 주로 진출하는 정도죠. 근래 들어선 고사양이나 고기능을 요구하는 분야에도 적극 진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해외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이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한국 전기산업 수준은 ‘선진국 문턱’
슈나이더 일렉트릭 코리아도 고민거리는 있다. 인력수급 문제다. 전기산업이 점점 더 발전하다 보니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직원 복지에 늘 신경을 쓴다. 예컨대 한국 지사에는 시각장애우 마사지사 2명이 늘 대기하고 있다. 직원들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근무시간에 마사지를 받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직급체계도 단순화해 수평적인 문화도 정착돼 있다. 사장-본부장-팀장-매니저로만 구성돼 있다. 유연근무제도는 물론 육아휴직도 100%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제조업에 속하면서도 여성 직원 비중이 크다. 전체 임직원의 25%가 여성이다. 글로벌 기업인 만큼 한국 지사 550여명 직원들의 국적은 9개국에 달한다. 인사전문 컨설팅 업체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직장’ 특별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제조업에서는 드문 일이다. 김 대표는 “직원 복지는 잔잔하게 신경만 쓰면 가능한 모든 면을 챙겨줄 수 있다”며 “더 중요한 건 회사가 그 사람이 일하고 싶어하는 정당성이나 가치를 줄 수 있느냐다”라고 말했다. 에너지를 절약해 지구 환경을 개선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직업적 정당성을 준다는 말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지속가능 기업 순위 9위에 올랐다. 세계 에너지 시장이 공급에서 관리로 눈길을 돌리면서 점차 지구 환경을 위해 필요한 기업이 되고 있단 의미다. 지속가능 기업 순위는 ‘위대한 기업’이 아니라 ‘착한 기업’에 높은 점수를 준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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