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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은행들을 쪼개라

대형 은행들을 쪼개라

대형은행 파산에 대한 연방정부의 드러나지 않는 보증의 가치는 연간 8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민이 은행들에 주는 보조금인 셈이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들이 계속 수많은 미국인의 경제안정을 위협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버니 샌더스는 은행을 분할하고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하라고 말한다. 과거 투자은행 업무와 상업은행 업무 사이에 칸막이를 쳤던 법이다. 또 다른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더 많은 세금을 물리고 더 철저히 감독하라고 한다. 공화당 진영에선 대부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분명 걱정할 일이다. 2000년 경제를 거의 파탄낸 뒤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기 전 미국 전체 금융자산 중 월스트리트 5대 대형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25%였다. 지금은 그 비율이 45%를 웃돈다. 대형 은행들은 다시 곤경에 처할 경우 구제받을 것이기 때문에 몸집을 더 키우게 된다.

대형은행 파산에 대한 연방정부의 이 같은 드러나지 않는 보증의 가치는 연간 8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민이 은행들에 주는 보조금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을 막기 위한 어떤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은행들이 다시 수렁에 빠질 게 거의 확실하다. 구제금융을 받은 뒤 그들의 행태를 보라.

2012년 월스트리트의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가 기업 채권에 연계된 신용부도스왑(CDS, 부도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에 63억 달러의 베팅을 했다가 날렸다. 그 뒤 그 손실 규모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거짓말했다. 훗날 그 사업을 따내려고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미국 사법부는 근대 역사상 최대의 시장조작 음모 혐의에 관해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에 따르면 그 대형 은행들이 ‘파렴치한 담합을 통해’ 하루 5조30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시장을 조작한 사건이다.

월스트리트가 또 다른 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큰 희생이 따를 것이다. 2008년 국민이 빌려준 수십억 달러를 은행들이 상환했지만 아직도 많은 미국인이 그때 튄 불똥으로 고통 받는다. 직장, 저축 그리고 집을 잃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대형 은행을 분할하고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시켜 이 같은 피해를 예방하는 대신 더 신중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녀는 은행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고자 한다. 은행 규모가 아니라 단기 자금조달(예컨대 자금이동이 빠른 자본시장)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로 부과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위험성을 평가하는 한 방법이다. 따라서 주로 은행 예금에 의존하는 대형 은행에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당국은 매우 위험한 특정 은행을 분할할 수 있도록 하는 도드-프랭크법을 통과시켰다. 클린턴은 금융당국의 그와 같은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 또한 제시한다. 그리고 이른바 ‘그림자’ 은행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자 한다. 머니마켓펀드(MMF), 헤지 펀드, 보험 기금 등 은행과 같은 기능을 하는 자금의 집합을 일컫는다.

모두 일리 있는 생각이다. 그리고 월스트리트 거대 은행들이 막대한 정치 권력을 쥐고 있지 않은 세상에선 그런 조치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몰랐다면 말이지만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가, 주요 트레이더, 최고경영자,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관리자들은 상당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들은 공화·민주 양당의 주요 선거자금 공급원이다.

아울러 두둑한 수입으로 통하는 회전문이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을 연결해준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누가 앉아 있든 상관없이 재무장관과 그의 수하들은 기민하게 월스트리트를 오간다. 의회의 핵심 멤버들, 특히 금융법 집행이나 금융당국 감독을 맡는 의원들이 은퇴할 때는 월스트리트에 보수 두둑한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2008년 금융시장 붕괴를 초래한 사기 행위로 기소당한 월스트리트 거물이 1명도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또는 2012년 합의된 가격조작 음모 혐의, 또는 그 이후의 다른 불법과 비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은행에 부과된 벌금이 그들의 잠재 소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도, 도드-프랭크법이 물타기로 유명무실해진 것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대형 은행들은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생전 유언(living wills)’을 준비해야 한다.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경우 사업을 어떻게 정리하겠다고 미리 밝혀야 한다. 그러나 기준에 부합하는 ‘유언’을 발표한 대형 은행은 하나도 없다. 연방 당국으로부터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럴 만도 하다. 현실적으로 작성하면 은행들이 드러나지 않는 자신들의 ‘대마불사’ 보조금을 사실상 잃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제안은 더 많은 물타기와 눈속임만 부를 뿐이다.

월스트리트의 독주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희석이 불가능한 대담하고 공개적이고 대대적인 개혁뿐이다. 초대형 은행들을 쪼개고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시키는 방법이다.

- ROBERT REICH / 번역 차진우



[ 필자 로버트 라이시는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이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다. 그의 영화 ‘모두를 위한 불평등’이 현재 넷플릭스·아이튠스·DVD 등으로 나와 있다. 이 기사는 RobertReich.org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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