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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은 예술이 아니다”

“고문은 예술이 아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새 전시회에서 동물 학대의 증거가 뚜렷한 비디오 작품 3점 논란 끝에 내려
황용핑의 ‘세계의 극장’(1993). / 사진:HUANG YONG PING/SOLOMON R. GUGGENHEIM MUSEUM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회 ‘1989년 이후의 미술과 중국: 세계의 극장(Art and China After 1989: Theater of the World)’(2018년 1월 7일까지)은 개막 전부터 대중의 분노를 샀다.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진 동물 학대의 몇 가지 뚜렷한 증거가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큐레이터 알렉산더 먼로가 기획한 이 전시회는 톈안먼 시위가 발생한 1989년부터 2008년까지 변화의 시기에 나온 중국 현대미술을 조명한다. 사회변혁 활동을 지원하는 웹사이트 chage.org에는 구겐하임 미술관 측에 이 전시회에서 (동물 학대의 증거가 뚜렷한) 작품 3점을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서가 올랐다. 4일 만에 약 50만 명이 서명했다.

뉴올리언스 출신의 의료 소프트웨어 컨설턴트 스테파니 루이스가 작성한 이 청원서는 ‘구겐하임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그들에게 동물 학대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의 예술에서도 설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자.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진 이런 동물 학대가 용인되거나 지지를 받아선 안 된다.’

청원서는 또 구겐하임 미술관 측에 이렇게 촉구한다. ‘마음에서 옳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라. 이 지구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편에 서라. 그리고 이번 전시회에서 동물 학대의 증거가 뚜렷한 작품을 제작한 미술가들을 배제하라(이 부분은 나중에 ‘미술가들’이 아니라 ‘작품’을 철수시키라고 수정됐다). … 귀 미술관이 경계를 허물고 사회규범에 도전하는 과감하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하지만 죄 없는 동물에 대한 학대를 조장하지 않는 예술을 옹호한다고 세상에 말하라.’
펑위와 쑨위웬의 ‘서로 건드릴 수 없는 개들’(2003). / 사진:YOUTUBE.COM
루이스는 핏불(투견의 일종) 구호기구인 ‘뉴욕 불리 크루’의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통해 이 전시회에 관해 알게 됐다. “이 전시회의 개막 소식을 들었을 때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루이스는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전문적인 동물권리운동가는 아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문화기관 중 하나인 구겐하임 미술관으로선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난 경계 없는 예술을 지지하지만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죄 없는 동물을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괴롭히는 건 참을 수 없다. 동물 학대는 어떤 예술 기관에서도 용인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구겐하임의 위상과 그 미술관이 상징하는 도덕적 기준을 고려할 때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문제와 관련한 청원서를 찾아봤지만 없어서 스스로 청원서를 작성해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청원서에서 동물 학대의 증거가 뚜렷한 세 작품을 꼽았다. 펑위와 쑨위웬의 ‘서로 건드릴 수 없는 개들(Dogs That Cannot Touch Each Other)’이 그중 하나다. 2003년 베이징에서 제작된 이 7분짜리 라이브 ‘공연’ 비디오에는 서로 마주보도록 설치된 4쌍의 무동력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핏불들의 모습이 담겼다. 개 두 마리가 각각 마주 보며 달리지만 서로 맞닿을 수 없다. 청원서에서는 이 상황을 ‘투견 훈련을 받은 개들에겐 매우 짜증나고 절망적인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근육이 불거져 나오며 입에선 침이 줄줄 흐른다.’

그 다음 작품은 쉬빙의 ‘전이의 사례연구(A Case Study of Transference)’(1994)라는 비디오로 멧돼지와 암퇘지의 짝짓기 장면을 담았다. 돼지들의 몸에는 로마자와 엉터리 한자가 어지럽게 찍혀 있다. 모순이라는 개념에 매료된 쉬빙은 이 작품을 “미개한 동물들과 최고의 문명을 상징하는 한자의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작품은 황용핑의 ‘세계의 극장(Theater of the World)’이다. 그는 철사 그물로 지붕을 덮은 돔 안에 다양한 곤충과 파충류를 넣고 발열 램프를 켜놓는다. 그 속에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지쳐서 죽는 동물이 늘면서 개체수가 줄어들면 근처 애완동물 가게에서 새로운 것들을 사다가 다시 채운다.

지난 9월 20일 뉴욕타임스가 이 전시회를 소개하는 기사를 싣자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기사에 대한 첫 번째 댓글은 이렇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니 몇몇 전시 작품에서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신경에 거슬렸다. 특히 개들을 러닝머신에 묶어 달리게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런 끔찍한 동물 학대를 용인하다니 정말 실망스럽다. 이 미술가들은 중국이 자신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동물을 아무렇게나 다루고 있다. 사람과 동물은 지구상에서 공존하는 존재다.


또 다른 독자는 이렇게 썼다.



언제부터 노골적인 동물 학대가 예술이 됐나? 구겐하임은 동물 학대를 용인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 뉴욕타임스도 공범이다. 두 기관 모두에 실망했다.
쉬빙의 ‘전이의 사례연구’(1994). / 사진:PINTEREST.COM
대다수 댓글이 특히 ‘서로 건드릴 수 없는 개들’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미술관 측은 논란이 일자 청원서에서 언급한 작품 중 하나(‘서로 건드릴 수 없는 개들’)에만 초점을 맞춰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일부 보도와 달리 원래 ‘공연’에서 개들 간의 싸움은 없었으며 구겐하임 전시 작품은 라이브 이벤트가 아니라 녹화 비디오다. ‘서로 건드릴 수 없는 개들’은 시간과 장소의 예술적·정치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의도적으로 권력과 통제의 체제를 비판하려는 도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당혹스럽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전시회 기획팀은 관람객이 이 작품을 제작한 작가들의 의도가 뭔지, 또 그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세계의 사회적 조건에 관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이 성명은 일부 동물권리운동가와 동조자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한 네티즌은 ‘지적인 인간들은 권력과 통제를 이해하기 위해 꼭 동물의 고통을 봐야 할 필요가 없다’며 ‘이 작품을 전시회에서 내려라’라고 썼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건 예술이 아니라 동물 학대 비디오다. 구겐하임 같은 존경 받는 미술관에서 이런 비디오의 상영을 용인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가수 리처드 막스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구겐하임의 기부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술관 지원을 재고하면 좋겠다. 동물 학대는 예술이 아니다. 너무도 무지한 짓이다.’ 또 영국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이게 예술이라면 펑위와 쑨위웬도 (러닝 머신에) 묶어놓자. 구겐하임은 정신 차려라.’

루이스는 구겐하임의 성명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녀는 미술관 측이 자신들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지 않은 데 실망했다. 루이스는 #tortureisnotart(고문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만든 뉴욕의 미술가 겸 운동가 소피 개먼드와 의기투합했다. 이 전시회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서로를 알게 된 이들은 매일 연락하며 이 일을 세상에 알리고 다음 행동을 계획한다. 일례로 그들은 이 작품들이 동물 학대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할 생각이다.

미국 동물학대방지협회(ASPCA)의 매트 버섀드커 회장은 “‘서로 건드릴 수 없는 개들’은 ‘동물 학대의 묘사’라며 미술관 측이 이 작품을 전시회에 포함시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ASPCA는 예술 작품 제작 과정에서 동물에게 고통이나 부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면 동물을 이용해선 안 된다. 이 비디오는 핏불이 인간의 관심을 바라는 사랑스럽고 충직한 동물이 아니라 악랄한 투견의 도구일 뿐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핏불의 입양을 가로막으며 그들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 [지난 9월 25일 구겐하임 미술관 측은 또 다른 성명을 통해 논란이 된 세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작품을 전시할 경우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지속적인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미술관 측의 의지는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스태브 지브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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