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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에너지 전환, 아직은 신기루?

독일의 에너지 전환, 아직은 신기루?

전력 대부분을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 현실과 정치의 벽에 부닥치며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 늘어
▎독일 북해의 풍력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남부의 공장지대로 송전하려면 전력망을 확충해야 한다. / 사진:AP-NEWSIS

▎독일 북해의 풍력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남부의 공장지대로 송전하려면 전력망을 확충해야 한다. / 사진:AP-NEWSIS

지난 8월 유난히 무더운 어느 날 독일 발트해 무크란 항만에서 200여 명의 관광객이 해수욕 대신 아르코나 해상풍력발전 공원에서 열린 ‘매혹의 해상풍력’ 전시회를 찾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선 그들은 하얀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풍력터빈 날개를 넋을 잃고 쳐다봤다. 76m에 이르는 그 날개는 보잉 747 제트 항공기의 날개보다 더 길었다. 전시회 안내자는 그 날개들이 머지않아 해안선에서 30여㎞ 떨어진 바다에 세워질 풍력터빈 60대 위에서 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초가 되면 아르코나 해상풍력발전소는 385㎿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40만 가구가 사용하기에 충분한 전력이다. 아르코나 프로젝트의 간부 실케 스테엔은 “여기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중에게 실감나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이 ‘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도록 말이다.”

바다를 바라보던 그들이 내륙 쪽으로 몸을 돌리자 그와 비슷하게 거대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쪽은 그날의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다. 회색 콘크리트로 뒤덮힌 거대한 강철 파이프가 5층으로 쌓여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항만 책임자는 길이 12m, 직경 1.2m인 그 파이프가 수없이 많이 쌓여 있는 광경을 국제우주정거장에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 건설에 사용될 파이프다. 내년에 완공되면 러시아에서 독일까지 약 1280㎞에 이르게 될 거대 프로젝트로 현재의 파이프라인보다 두 배나 많은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

아르코나 해상풍력 발전소와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이라는 서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이 두 프로젝트는 신재생 에너지 천국을 만들겠다는 독일의 꿈과 저렴한 러시아 천연가스라는 정치적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독일은 2050년까지 전력의 80%를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생산하겠다는 야심적인 목표를 일찌감치 2010년 발표했다. 그 다음해엔 남아 있는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공약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확고히 다졌다. 또 독일 정부는 태양력·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개인 가구와 기업에 보조금으로 60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그 결과 신재생 에너지원을 이용한 발전 역량이 크게 강화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독일이 생산하는 전력의 3분의 1이 풍력·태양력·수력·바이오가스에서 나왔다. 1990년엔 그 비율이 3.6%에 불과했다.

그러나 독일의 그런 원대한 비전은 엄연한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세계 최대의 산업국가 중 하나인 독일에서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교체하는 것은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에 따라 독일은 야심적인 신재생 에너지 프로그램에 제동을 걸고 화석연료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울러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지구 차원의 싸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당분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독일의 전력망에 있다. 태양력과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려면 기존의 대형 발전소보다 훨씬 정교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전력 분배망이 필요하다. 저서 ‘에너지 민주주의: 독일의 신재생 에너지 전환’을 펴낸 아르네 융요한은 “독일은 풍력이나 태양력 발전 같은 신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에너지 전환 목표를 달성하려면 독일은 송전 네트워크 전체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풍력 발전이 인기를 끌면서 예상치 못했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생겼다. 대형 풍력터빈, 특히 아르코나 같은 연안 풍력발전소는 고도로 응축된 전력을 생산한다. 전력이 필요한 공장이 바로 부근에 있고 근무 시간인 낮 동안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그런 발전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공장들이 발전소에서 수백㎞ 떨어져 있다면 풍력발전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독일에선 풍력발전 단지가 바람이 많이 부는 북부 지방에 많이 건설됐다. 한편 독일의 큰 공장들은 대부분 남부에 있다. 또 그 지역은 독일의 원자력발전소 대다수의 가동이 중단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부에서 생산된 전력을 남부로 끌어가는 것이 문제다. 바람이 많은 날엔 북부의 풍력발전 단지에서 전력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력을 생산해 송전선에 과부하가 걸린다. 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전력망 관리 당국은 풍력발전 단지에 터빈을 전력망에서 분리하도록 요청했다. 관광객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 우아한 풍력터빈 날개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뜻이다. 전력 공급을 유지하려면 관리 당국은 비싼 비용을 들여 예비 발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이 과정에 지출한 비용이 지난해 16억 달러에 이르렀다.

해결책은 북부의 풍력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잉여 전력을 남부 지방의 공장으로 보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 그 목적으로 전력망 확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8000㎞에 이르는 새로운 송전선 건설 비용 수십억 달러는 전력 사용 고객이 부담하게 된다. 지금까지 계획된 송전선의 5분의 1도 채 건설되지 않았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8월 경제신문 한델스블라트에 “전력망 확장이 예정보다 많이 지연된다”고 인정했다. 장애물 중 하나는 고압 전선이 통과하는 곳에 사는 주민이 케이블의 지하 매설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과 비용이 추가된다. 이 프로젝트는 2025년 전에는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독일의 마지막 원자력발전소가 폐쇄되고 3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렇다면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이처럼 공사가 지연되자 정부는 풍력발전에 제동을 걸었다. 발전 단지의 신규 계약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에 지원금을 삭감했다. 독일 하원 기민당 대변인 요아힘 파이퍼 의원은 뉴스위크에 “과거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 역량의 확대에만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전력망 확장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전력 생산은 늘었지만 그 전력을 송전할 전력망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는 데 사용될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 건설에 사용될 파이프가 독일 발트해 무크란 항만에 쌓여 있다. / 사진:AP-NEWSIS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는 데 사용될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 건설에 사용될 파이프가 독일 발트해 무크란 항만에 쌓여 있다. / 사진:AP-NEWSIS

다른 한편으로 신재생 에너지 옹호론자들이 들고 일어나 정부가 친환경 산업을 질식시킨다고 들고 일어났다. 독일 풍력에너지협회의 CEO 볼프람 악스텔름은 풍력발전 산업에서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내년과 내후년에 풍력발전 산업이 큰 곤경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독일의 발트해 연안에서 바지선 카스토로 10호가 거대한 강철 파이프 수십 개를 싣고 용접기로 연결한 뒤 바다 바닥으로 내린다.

110억 달러가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업체 가스프롬과 유럽의 5개 투자기관이 비용을 댄다. 따라서 독일 납세자의 직접적인 부담은 없다. 파이프라인은 독일·러시아·핀란드·스웨덴·덴마크의 영해를 통과하도록 건설된다. 덴마크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건설 노선을 승인했다. 노르트스트림 2 프로젝트 대변인 옌스 뮐러는 “4개국 정부가 승인했기 때문에 덴마크도 이 파이프라인 통과를 곧 승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핀란드 연안의 파이프라인 건설은 지난 9월 시작됐다. 내년 말이면 천연가스가 그 라인을 통해 공급될 수 있다. 그에 따라 러시아는 유럽의 천연가스 시장 점유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에서 사용되는 천연가스의 3분의 1을 공급한다. 2030년 네덜란드가 천연가스 생산을 중단하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을 두고 “러시아가 독일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라며 “나토에 아주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이 프로젝트에 관련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노르트스트림2가 건설되면 자국의 영토를 통과하는 기존 파이프라인이 쓸모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독일 지도자들도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산업계에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주 세다. 실제로 노르트스트림2의 투자 기관 중엔 자사의 공장을 가동하고 싶어 하는 독일 기업들이 포함된다. 독일 국제안보연구소의 에너지 전문가 키르스텐 베스트팔은 “독일이 순진한 게 아니라 실용적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올바른 판단이다.”

송전 문제로 갈탄 산업도 새롭게 빛을 보게 됐다. 갈탄은 탄소발자국이 가장 큰 연료로 독일 전력의 약 4분의 1이 여기서 나온다. 광업업체들이 기회를 노리고 갈탄을 대량으로 캐내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약 250㎞ 떨어진 포델비츠에선 대다수 주택 마당에 독일 광업회사 미브라그의 로고가 그려진 흰색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미브라그는 이곳 주민 130명 거의 전부에게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 아래 땅속에 매장된 갈탄을 캐내기 위해 이 마을은 곧 완전히 철거될 예정이다.

이처럼 석탄이 다시 연료로 부상하면서 2015~2016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했다(지난해는 약간 줄었다). 그로써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의 40%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이전의 약속을 폐기했다. 메르켈 총리 산하 석탄정책위원회의 여러 위원은 함바흐 숲에서 에너지회사 RWE의 갈탄 채굴을 정부가 허용할 경우 사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파리 기후변화 대책 협상에서 독일은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삭감하는 야심적인 계획에 EU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금 독일은 생각을 고쳐먹은 것 같다. 최근 미겔 아리아스 카네테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EU 회원국들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40%가 아니라 45%까지 줄이도록 목표를 재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메르켈 총리는 “이전에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다니엘라 체슬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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