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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IT 사회학] 정의 앞세운 사적 응징, 당신도 '인터넷 자경단'?

'시티즌' 앱이 보여준 사회정의 부작용 나타나

[사진 pixabay]
 
삶은 기구하기에 누구나 어느 순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가 인생을 덮치는 날, 그 울분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법치가 처리해 줄 것이라 믿고 기다리고 싶지만, 깊어 가는 한과 답답함은 몸도 마음도 병들게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는 이 발산하고 싶은 원통함을 받아 주는 평등한 얼개가 있다. 인터넷이다.
 
어느 나라 인터넷에서나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풍경이 하나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추정되는 대상은 그 신상이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만천하에 폭로되고 집단 질타를 받은 뒤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그 과정에는 커뮤니티도, 유사 언론도 피아 없이 동참하고 그 기록은 오랫동안 검색된다. 그렇게 인터넷에서는 정의가 구현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관심은 유한해서 통하는 이야깃거리에는 종류가 있다. 이야기의 배경과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쉽거나 가십거리가 될 수 있어야 인터넷 커뮤니티는 쉬이 움직인다. 특히 그 비극을 일으켰거나 책임이 있을 법한 장본인을 지적해 낼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이다. 행정의 미적지근한 움직임은 기름을 붓는다. 영 개운하지 않으니 급기야 나라도 대신 응징해 줘야겠다는 정의감이 솟구친다. 그리고 키보드 앞에 앉는다. 이제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기분이 좋은 일이라서다. 벌 받을 만한 사람을 짚어내 벌을 줄 때의 쾌감이 있다. 왜 이런 행복감을 느끼는지는 별로 궁금한 일도 아니다. 권선징악의 통쾌한 복수극은 전래동화의 기본이자 현대 엔터테인먼트의 뼈대. 우리 태고의 기억으로 프로그램된 뇌의 스펙 중 하나다.
 
fMRI(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장치)로 뇌를 관찰하니 원한을 풀 때, 복수할 때, 악인으로 규정한 타자를 질타할 때 뇌 안에서는 쾌락 물질이 분출하고 있었다. 선조체(striatum),  측좌핵(nucleus accumbens) 등 도파민 보상 회로는 섹스나 마약에 자극되어 흥분되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타인의 부도덕을 규탄하며 정의를 구현한 듯한 느낌에 취하기 쉬운 동물이었다.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는 보통 피지컬이 좋은 폭군의 독재에 시달린다. 침팬지 보노보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종도 있지만, 그들 역시 멸종 위기 보호지역을 벗어나서 집단 속에서 옥신각신을 시작하면 인간보다 훨씬 난폭해진다. 집단 내 폭군이 스트레스만 주면 다행이지만 공동체의 미래를 제시할 역량도 없으면서 힘으로 장악하고 있다면 전체의 생존조차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인류는 총과 칼처럼 개별적 신체 능력을 무력화하는 도구를 발명했다. 언어는 군중을 연대하게 했다. 무능하고 난폭한 이는 제거되었다. 집단의 암묵적 약속과 기대를 어긴 이를 처절히 응징했기에 사회가 만들어졌고, 도덕이 형성되었던 셈이다.
 
법도 정부도 국가도 없던 그 오랜 수렵채집 세월, 최소한의 공동생활을 지켜내게 했던 것은 바로 공동체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자를 징계하거나 내쫓는 일이었다. 이에 참여해 적자생존한 이들만이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생물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문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의 행보, 사적 응징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원한을 푸는 일은 다시 원한을 만들고, 또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남을 수도 있다. 복수가 실패할 때 리스크도 크다. 문명 안에 잃을 것이 많은 이는 사적 보복을 감행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현실에서 다른 쾌락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계층이라면 굳이 이런 원초적 쾌락을 탐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남의 일이라면야다.
 
그런데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는 이 응징을 오락으로 만든다. 키보드만 있으면, 유튜브 방송장비만 있다면, 익명의 강 건너에서 좌표를 공유해 정의의 포격을 할 수 있다.
 
정말로 정화가 되기도 한다. 모두 “저런 상황에서는 행여 저렇게 행동하면 망하는구나”라는 것을 인터넷 덕에 폭력도 법도 없이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게다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인과응보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심지어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게임이론에서 배웠듯 처음에는 협력하되 상대가 배반하면 바로 복수하는 팃포탯(tit for tat, 맞대응 전략)은 가장 성공적인 장기 전략이다.
 
그런데 앙갚음의 쾌락은 다른 모든 쾌감과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있다. 정의를 구현한 듯한 느낌, 즉 쾌락 보상을 매우 손쉽게 얻는 체험은 인터넷 시대답게 증폭된다.
 
미국에서 ‘시티즌’이라는 앱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일종의 범죄 및 근린 감시 앱인데, 사이렌 소리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방구석에서 궁금함이 들 때 이 앱은 경찰 및 소방 등 각종 라디오 채널에서 정보를 수집해 알람을 보내고 사용자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 앱은 일종의 자경단이자 정의구현 앱이 되려 했다. 지난 5월 이 앱은 LA 산불의 방화 용의자라며 3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노숙자였던 것. 어느 나라나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많다.
 

‘정의의 중독’ 에 파고드는 이들

사용자가 원하면 아예 자경단이 출동하는 온디맨드 정의구현 앱으로의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시내에 시티즌 마크를 단 검은 차량이 목격되었다. 앱의 원래 이름이 자경단(Vigilante)이었으니 벌어질 법한 일이었다.
 
정의를 구현하는 느낌은 누군가의 비즈니스 찬스였다. 어쩌면 이는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초적 쾌락에 중독된 듯 탐닉하는 이들과 당장의 사적 정의를 원하는 이들로 이뤄지는 양면시장이 존재한다는 불편한 진실. 아무리 어리석은 일인 줄 알아도 억울한 일 앞에서 나만의 정의를 수복할 수 있다면 구독 버튼을 누를 것만도 같다.
 
정의를 군중이 정의하게 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참극 또한 역사는 알려줬다. 어떠한 인간도 임의의 선악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는 제나름의 사연을 안고 살고 있다. 설령 악이라도 그 악이 속죄하고 참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쯤 이성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에게 이미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설령 내 모든 것을 잃더라도 원한을 푸는 일에 집착하는 유약한 생물이라서다. 취약점은 결국 어뷰징된다. 유사 언론과 유튜버에서 자경단앱에 이르기까지 장사꾼들은 그 약한 감정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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