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괴리②] 용산전자상가 르포- “청년‧스타트업만 지원에 박탈감”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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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괴리②] 용산전자상가 르포- “청년‧스타트업만 지원에 박탈감”

상가 활성화 정책, 상인 제쳐두고 청년 창업에만 쏠려
상가 이용…청년은 각종 무료, 상인은 월세에 허덕여
용산전자상가 상인들 “기존 도시재생은 주인 잃은 사업”
“30여년 삶의 터전 일군 원주민인 상인에 홀대” 토로

6월 29일 찾은 용산전자상가 일대 전경. [김하늬 기자]

6월 29일 찾은 용산전자상가 일대 전경. [김하늬 기자]

 
도시 정비의 관점이 개발→보전→개발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시장이 오세훈→고(故) 박원순→오세훈으로 돌아오면서다. 개발 부작용을 줄이고자 보전을 택했는데 한계에 부닥치면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자 개발로 다시 방향을 바꿨다. 대신 추진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등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오세훈 시장의 개발 정책 이번엔 잘될까. [편집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용산전자상가는 ‘믿고 거른다’(나쁜 평판 때문에 무한 불신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도 한때 전문가였어요. (도시재생을 하면) 젊은 친구들이 우릴 다시 찾아줄까요?”
 
32년째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조립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인(56)씨는 발길이 뜸해진 고객들에게 섭섭함을 내비쳤다. 15년 전, 이른바 ‘용팔이’(강매·바가지 등의 행위를 하는 악덕 상인)의 ‘손님, 맞을래요?’ 사건 이후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은 용산전자상가. 지난 6월 29일 찾은 용산전자상가의 분위기도 어두웠다.  
 
1987년 문을 연 용산전자상가는 당시 전자산업의 중심이었던 청계천 세운상가 업체들이 용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보통신(IT)·전자의 성지로 통했다. 1990년~2000년대 초 호황을 누렸던 용산전자상가는 유통구조가 온라인 시장 중심으로 급변하자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져버렸다.  
 
이대로 방치하기엔 용산전자상가는 전자제품 쇼핑몰로서 잠재력이 풍부한 곳이다. 서울시는 2017년 선인상가·나진상가·원효상가·전자랜드 등을 아우르는 상가 일대 21만여㎡를 ‘2단계 서울형 도시재생활성화지역’(중심시가지형)으로 선정, 2022년까지 5년간 예산 2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용산전자상가를 전자산업 기반의 복합문화 공간으로 꾸민다는 복안이다. 현재 이곳에선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인 ‘디지털 메이커 시티 용산 와이밸리(Y-Valley)’가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원효상가 2·3층엔 연면적 6000㎡ 규모의 ‘용산전자 상상가’가 위치해 와이밸리 사업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 3D프린터 등 47종의 첨단장비를 갖춘 ‘디지털 대장간’을 마련해 시민 누구든 아이디어를 디자인 시제품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이곳엔 고려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 5개 대학이 상주하는 현장 캠퍼스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용산창업지원센터 등 11곳의 전략 기관이 입주해 청년의 취업·창업·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청년·벤처 스타트업을 유치, 기존 상인·업체들과 연계·상호작용으로 상승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기대만큼 상생이 쉽지 않았다. 전자기술에 대한 청년과 상인들 간의 ‘동상이몽’으로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보였다. 게다가 지원기준도 각기 달라 청년 창업에 쏠린 서울시의 지원 사업을 본 상인들은 박탈감을 토로했다.  
 
원효상가 6동 2층에는 디지털 대장간(왼쪽)과 기존 상인들의 가게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김하늬 기자]

원효상가 6동 2층에는 디지털 대장간(왼쪽)과 기존 상인들의 가게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김하늬 기자]

 

상인·청년의 상생협력 기대했지만 현장에선 불협화음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2세대 도시재생 정책을 발표하면서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지 활성화형’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중심지 활성화형은 도심 내 쇠퇴한 시가지를 대상으로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고, 민간개발을 통해 신산업을 도입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의 이해관계자들 간 협의를 거쳐 민간개발을 유도할 수 있는 개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시할 계획이다.
 
상인들은 오세훈표 도시재생 사업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상인들을 위한 중장기 사업이 아니라면 기존 사업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기존 도시재생 사업이 ‘주인을 잃은’ 사업이었다고 꼬집었다. 용산 활성화라기보다는 청년 창업공간 마련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상인들은 “낡은 건물 외관과 달리 상상가와 디지털 대장간은 화려한 내부로 꾸며졌다. 와이밸리 사업의 핵심 거점인 만큼 청년 창업가를 위한 편의시설과 첨단 장비가 다양하다”며 “하지만 상인들의 가게 대부분은 오래되고 낡은 옛 모습이어서 대조를 이룬다”며 서울시의 차등지원에 불만을 내비쳤다.  
 
현재 상상가와 디지털 대장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이곳을 찾는 청년들의 발길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청년과 상인 간의 협력을 통한 상생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한산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청년들은 창업을 위해 이곳을 이용할 생각은 있지만, 이곳 상인들과 협력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3D프린터·가상현실(VR)·드론·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꽃으로 불리는 기술이 과거와는 다른 기술이지 않느냐”고 되려 반문했다. 이곳 상인들은 한물간 세대니 이들의 도움도 바라지 않고 이들과 협력할 생각도 없다는 뜻이다.      
 
드론 관련 창업을 위해 ‘드론·자율주행 테스트베드’ 공간을 찾은 이명호(32)씨는 “4차산업혁명은 드론·로봇 등과 같이 미래 기술”이라며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은 과거 기술에 매몰된 경우가 많고, 창업 환경에 대해 선배로서의 조언도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업 관련 조언은 KIAT나 창업지원센터에서 얻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상인들은 청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38년째 전자부품을 다루고 있는 상인 김모(72)씨는 “온라인 시장에 밀려 점차 쇠퇴한 용산이지만, 좋은 환경에서 일하던 그때를 지금의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우리에겐 ‘당신처럼은 안될 거야’ 같은 눈빛을 보낸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상인 이모(74)씨도 “나는 호황도 불황도 모두 겪어봤다”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창업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줘도 반응이 시큰둥할 때가 더 많았다”고 전했다.
 
상인들은 “용산전자상가의 실질적 주민인 ‘상인을 위한’ 도시재생이 곧 ‘소비자를 위한’ 도시재생”이라며 “기존 상인들을 배제한 도시재생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도시재생의 비전을 담은 와이밸리에 대한 기존 상인과 청년 창업자 간 괴리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서울시의 이러한 폭 넓은 지원은 이곳 원주민이나 마찬가지인 기존 상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라디오 조립 부품을 판매하는 정모(65)씨는 “기존 상인들은 월세에 허덕이고 있는데 최근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임대료는 물론 개발부터 유통까지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며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원효상가 6동 2층에 조성된 시제품 제작소 '디지털 대장간' 전경. [김하늬 기자]

원효상가 6동 2층에 조성된 시제품 제작소 '디지털 대장간' 전경. [김하늬 기자]

 

“도시재생이 상가 활성화 못하고 임대료 상승만 부추겨”

서울시는 지난 3월 용산전자상가 내 공실인 나진상가 일부 동에 증강현실(AR)·가상현실(VR)·드론·로봇과 같은 4차 산업 관련 기업을 유치했다. 미래 산업의 주요 기술을 집적화해 신 산업 생태계로 조성하는 도시재생사업을 빠르게 진척시키기 위해서다.  
 
입주한 업체들은 공간을 무료로 임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산업진흥원(SBA)·한국전자진흥회(KEA) 등 전문기관의 기업 보육 프로그램과 출장 상담 서비스, 기술 전문가의 컨설팅, 제조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 받는다.
 
용산전자상가 내의 각종 기반시설도 기업 성장에 언제든 활용할 수 있어 입주 업체들은 상가 안에서 연구 개발부터 부품 조달, 제조, 유통, 사후 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어 이 일대에서 판매하며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제품의 대량생산 여부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폭 넓은 지원은 이곳 원주민이나 마찬가지인 기존 상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라디오 조립 부품을 판매하는 정모(65)씨는 “기존 상인들은 월세에 허덕이고 있는데 최근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임대료는 물론 개발부터 유통까지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며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게임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4)씨는 “30여 년간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반복해오고 있는데 올해는 그것도 못하게 됐다”며 “그동안 진행된 도시재생사업이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해왔지만, 눈앞에 닥친 것은 상가 침체와 임대료 상승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은 “이곳 전자상가는 상인이 주민이나 마찬가지”라며 “도시재생사업에서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다른 도시재생 지역처럼 나와 내 가족이 ‘잘 살 수 있는’ 마을이 아닌, 고객이 상인들의 물건을 ‘잘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 달란 것이다.  
 
그러면서 도시재생사업을 민간 개발이 주도한다면 상인들에게 우선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찾아가는’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동안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상인과 업체들에게 용산전자상가는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며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면 업종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 박영인씨는 “세운 상가처럼 보행환경이 개선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전자 부품·제품들을 사가는 날이 다시 올지 모르겠다”며 “다만 매출이 걱정되는 만큼 민간개발이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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