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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도 평화 ‘팍스아메리카’, 아프간 사태로 신뢰 금가나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아프간, 6개 국가와 국경 마주하는 지정학적 위상
난민사태, 팍스아메리카 위기로 몰고갈 수 있어

 
 
탈레반 병사가 8월 18일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탈레반 병사가 8월 18일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작고 가난한 나라가 세계 정치사의 흐름을 온통 뒤바꿀 태세다. 미국이 아프간 철수 과정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극히 혼란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국 국익’ 중심과 아프간 정부와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 등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전 세계에서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는 이렇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일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즘과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 등 비인륜적인 권위주의 세력에 승리를 거둔 미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민주주의와 합리적 제도를 바탕으로 전 세계 질서와 평화를 이끈 지 7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남베트남 패망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이기주의적 국제 정책 등 숱한 시련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미국이 신망을 잃기는 처음이다.  
 

아프간 난민, 지역문제와 국제문제 유발 할 수 있어 

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피한 현지인들이 8월 25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연합뉴스]

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피한 현지인들이 8월 25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아프간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도 지정학적 위상은 대단하다.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부탄 등으로 이뤄진 인도아대륙)와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중동(이란과 서쪽의 아랍권)을 잇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륙국가인 아프간은 파키스탄(2670㎞)·타지키스탄(1357㎞)·이란(921㎞)·투르크메니스탄(804㎞)·우즈베키스탄(144㎞)·중국(91㎞) 등 6개국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 국경을 넘어 난민이 넘쳐 나갈 경우 지역 문제와 국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을 지나면 터키 국경을 만나고 터키는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이어진다. 과거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했던 시리아 난민이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육로로 발칸 국가, 해로로 이탈리아로 들어가면서 유럽 전역에 난민 사태를 유발했다.
 
EU 국가들은 터키에 거액을 지급하고 난민 수용을 부탁했다. 터키의 발언권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EU는 국경을 넘어 들어온 난민의 관리와 수용을 각 회원국에 분담시켰다고 두고두고 갈등과 불화의 소지를 남겼다. 비교적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동유럽과 부유한 서유럽 사이에는 이 문제를 두고 아직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난민 문제는 평등·인권·인도주의를 비롯한 유럽의 가치관을 둘러싸고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난민 문제와 관련해 다문화주의·박애주의를 비롯한 공허한 이론이나 동정론을 포함한 감상적인 접근을 할 경우 유럽과 간극을 더욱 넓힐 수 있다. 유럽이 아무리 진보주의자의 아성이라고 해도 국가주의자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자, 또는 극우세력은 이미 난민 문제를 정치적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지리적으로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육로를 이용한 아프간 난민 문제에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이 유럽에 ‘도덕적’ 훈계라도 할 경우 그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미국은 중동은 물론 동맹 지역인 유럽에서도 신망을 잃고 영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 문제와 난민 사태는 팍스 아메리카의 종말을 앞당기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도 팍스 아메리카는 수명을 다하고 있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1803~1815년) 이후 2차대전 종전까지 130년 이상 글로벌 패권국으로 자리 잡았던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를 잇는 것이 팍스 아메리카다.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 대영제국은 당시 본국과 자치령, 식민지를 포함해 세계 인구의 23%에 이르는 4억1200만 명을 거느렸다. 1차대전 직후인 1920년에는 세계 육지의 24%에 이르는 3599만㎢의 영토를 지배해 전성기를 맞았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다. 1876~1948년 영국 군주가 인도 제국의 황제 지위를 누리면서 ‘대영제국’으로 불린 영국은 단순히 영토·인구에서만 대제국의 면모를 보였던 게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과학기술에서도 세계를 주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언어와 문화를 전 세계에 확산했으며, 헌법·의회민주주의·선거제도·법률시스템·교육제도도 세계 곳곳에 심었다. 개인의 원리, 인권 의식도 함께했다. 나폴레옹 제국이 자유·평등 등 프랑스 혁명의 유산을 전 유럽에 확산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유럽의 합리주의를 퍼뜨린 것이다.  
 
사실 아프간도 영국과 관련이 크다. 아프간은 영국의 번성과 쇠락의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823~1973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던 바라크자이 왕조는 영국에 저항과 굴복을 바복했다. 이 왕조기 지배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식민지 인도(현재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 포함)에서의 이익을 지키고 이란에서 입김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중앙아시아의 작은 이슬람 국가를 점령하며 영토를 확장해온 러시아는 이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 데 이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접점인 아프간에 눈독을 들였다. 영국은 아프간을 완충 국가로 삼아 인도에서의 이익을 지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아프간이 중국과 국경을 맞댄 것도 당시 영국이 러시아와의 완충지대로 삼기 위해서였다. 아프간은 동북부에 길고 좁게 촉수처럼 뻗은 길이 350㎞, 너비 13~65㎞의 ‘와한(와칸으로도 씀) 회랑’을 통해 중국으로 연결된다. 이 회랑은 영국과 러시아가 제국주의 경쟁인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19세기 말 아프간 영토가 됐다. 러시아가 1893년 아프간 북쪽 동타지키스탄을 병합하면서 영국령 인도와 국경을 맞닿게 되자 영국이 이 지역을 아프간에 통합해 완충지대로 삼으려고 했다.
 
이런 지정학적 이유로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면서 국경을 맞댄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이슬람주의를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지역의 무슬림 주민을 동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와한 회랑은 산중 벽지로 인구가 희박한 데다 교통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국경 맞댄 위구르에 이슬람주의 확산 어려워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8월 19일(현지시간) 아프간 주민이 철조망이 쳐진 공항 담장 위의 미군에게 아기를 건네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8월 19일(현지시간) 아프간 주민이 철조망이 쳐진 공항 담장 위의 미군에게 아기를 건네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와환 회랑의 북쪽은 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키스탄과 접경하며, 남쪽은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이 솟아 있다. 동쪽 끝에 있는 험준한 와흐지르 고개를 통해 중국과 연결된다. 붉고 뾰족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와흐지르의 국경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됐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변변한 접근조차 없다.
 
한때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 회랑을 통해 아프간에서 양귀비를 재배해 생산한 헤로인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계했지만, 워낙 벽지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차라리 다른 나라를 통과하는 데 더욱 수월하다는 이야기다. 탈레반이 이렇게 고립되고 막혀 있는 국경을 뚫고 신장 위구르에 침투해 지역 무슬림을 부추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럴 이유나 여유도 없어 보인다. 중국은 아프간 북부의 자원개발에 투자한 드문 나라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영국은 아예 아프간을 지배 아래에 두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1839~1842년)을 치렀지만 험한 산악 지형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단 밀려났다. 하지만 1878~1880년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아프간을 보호국으로 뒀다. 식민지는 아니고 바라크자이 왕조의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형태였지만 외교권은 영국이 보유했다. 다른 나라, 특히 러시아와 동맹을 맺거나 그 군대를 주둔시켜 영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침략이었다. 영국은 이렇게 30여년 간 허수아비 군주를 내세워 아프간을 보호령으로 두면서 인도를 러시아의 입김에서 지킬 수 있었다.
 
제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영국이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아프간의 바르카자이 왕조는 영국에 대항해 제3차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다. 국제 정세를 정확히 보고 영국의 힘이 빠질 때를 노린 셈이다. 영국은 산중 험지인 아프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며,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상대방인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1917년 혁명으로 무너졌다. 당시 러시아는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적군과 이에 대항하는 백군 간에 치열한 내전이 벌어진 상태였다. 영국이 애초 인도를 러시아의 도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시작한 아프간 보호국화는 더는 필요성도 없어진 상태였다.  
 
영국은 그 이후로도 패권 국가의 지위를 유지했다. 정작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가 무너진 것은 2차대전 뒤인 1956년이었다. 영국은 식민지 독립과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정부 부채, 그리고 국력 쇠약과 미국의 부상 등으로 글로벌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사실상 잃었다. 하지만 국제 정책에선 여전히 패권국가인 양 행동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1956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1918~70년, 재임 56~70년)이 아랍민족주의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운영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가 해당 국가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자 영국은 펄쩍 뛰었다. 과거 수에즈 운하는 영국 식민지인 인도와의 거리를 좁히고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건설 자체가 제국주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었다. 수에즈운하는 완공 당시인 1869년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프랑스가 아시아 식민지와의 거리를 줄이고 경제적·국제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건설로 영국과 식민지 인도, 프랑스와 식민지 인도차이나와의 거리는 1만㎞가 단축됐다.
 
하지만 인도가 1947년 8월 15일 독립(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이 분리해서 독립했다) 하고서도 영국 지도층의 생각을 과거의 지정학적 공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에즈운하는 제국주의와 무관하게 20세기 들어 1956 ~59년과 67~75년 두 차례나 폐쇄됐다. 전쟁 때문이었다. 56년 6월 26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18~70년, 재임 56~70년) 대통령이 영국 소유이던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56년 7월 26일 수에즈운하 지구를 침공하면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동란)을 일으켰다. 항공모함·전함·순양함·잠수함에 공수부대를 동원한 영국·프랑스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운하 주변을 점령했다.
 

영국 ‘수에즈 위기’와 닮은 미국 ‘아프간 철퇴’  

하지만 외교에선 수세에 몰렸다. 당시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년, 재임 53~61년)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3국을 압박했다. 유엔은 특별 긴급총회를 열고 11월 2일 즉각 정전을 요구하는 총회 결의 997호를 채택했다. 사면초가 신세가 된 영국과 프랑스는 11월 6일, 이스라엘은 같은 달 8일 각각 정전에 동의했다.  
 
시나이반도에 휴전선을 긋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제1차 유엔긴급군(UNEF)을 평화유지군(PKO)으로 파병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기원이다. 당시 캐나다 외무부 장관으로 이를 제안한 레스터 피어슨(1897~1972년)은 이듬해인 5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아 수에즈운하에서 철수하면서 강대국 지위의 상실을 절감했다. 이로써 지정학적 요충지를 선점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우며 약소국의 주권을 무시하던 제국주의 시대는 사라졌다. 대국과 소국 개념도 시효를 마쳤다. 힘으로 남의 나라와 국민을 깔보고 괴롭히는 식민주의도 종말을 고했다. 유엔이 창설되면서 국제사회엔 주권존중·호혜·평등·상호존중·공존공영의 시대가 열렸다. 제국주의의 시대가 끝나고 세상이 바뀌었다. 냉전이 가속하면서 세계 각국은 미국과 소련의 우산 아래에서 국제관계를 추구하게 됐다. 수에즈 위기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국제관계의 교훈을 안겨준다. 글로벌 패권은 군사력·경제력 넘어 도덕성과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퇴는 영국의 수에즈 위기와 많이 닮았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무리 강해도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고 전 세계가 따를 국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국익만 내세운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별 차이가 없는 바이든이 어떻게 이런 시대를 조정할지 우려된다. 전 세계가 팍스 아메리카의 운명을 살펴보고 있다. 아프간이 아무리 작은 나라이고 전략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도 미국이 이렇게 무참히 폐기하듯 포기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최소한의 도덕성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원 법사위원회를 거쳐 외교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바이든은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만일 팍스 아메리카가 종언을 고한다면 대놓고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면서 표를 구했던 트럼프 때문이 아니라, 위선적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준비도 배려도 하지 않고 아프간을 버린 바이든 때문이라고 역사가 기록할지 모른다. 지금이 그 고비다. 하지만 바이든이 어떤 변명으로도 잃어버린 미국의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는 이미 큰 금이 갔고, 팍스 아메리카 시대는 위기에 처했다. 2021년 아프간 사태가 몰고 온 결과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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