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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갤러리] 1년7개월 만에 오픈한 리움미술관 “시각적 호사를 누리다”

리움 프랭크 게리 무제 [사진 리움미술관]
 
1년 7개월의 공백을 딛고 8일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을 찾은 것은 지난 5일. 리움(LEEUM)이라는 영문 글자 다섯이 각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모양의 새 로고부터 색달랐다.  
 
마리오 보타·장 누벨·렘 쿨하스라는 건축 거장 세 명이 각각 만들어낸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 인물은 패션과 무대와 디스플레이를 오가는 ‘재주꾼’ 정구호다. 화이트큐브라는 미술관의 상식을 뒤집고 온통 블랙으로 꾸민 상설전시관은 관람객의 집중력을 배가시켰다.  
 
로비에 마련한 미디어 월부터 압도적이다. 11.3 x 3.2 m(462인치)라는 거대한 화면에서 선명하게 뿜어나오는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미디어 아트는 관람객의 시야를 순식간에 지배했다. 화질이 5000만 화소가 넘는단다.  
 
작품 앞에서 자동으로 설명이 나오는 ‘디지털 가이드’를 목에 걸고 현대미술 상설전시관부터 들렀다. 층마다 주제가 다르다. B1층은 ‘이상한 행성’, 1층은 ‘중력의 역방향’, 2층은 ‘검은 공백’이다. 총 76점이 전시돼 있는데 “출품작의 반 이상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라는 게 미술관측 설명이다.  
 
검정색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 상식을 뒤집는 기발함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만든 빛을 품은 물고기 조각 ‘무제-로스엔젤레스 IV’(2012~2013)도 눈길을 끌었는데, “이전 전시가 미술사적 의미에 치중했다면, 이번에는 주제를 다채롭게 구분했기에 수장고에서 색다른 작품들을 꺼내올 수 있었다”는 게 곽준영 책임연구원의 귀띔이다.  
 
B1층으로 나와 맞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면 한국 고미술의 향연이 시작된다. 역시 층마다 주제가 다른데, 4층은 고려청자를 다룬 ‘푸른 빛 문양 한 점’, 3층은 분청사기와 백자를 모아놓은 ‘ 흰빛의 여정’, 2층은 글씨와 그림에 치중한 ‘감상의 취향’, 그리고 1층은 고려불화를 중심으로 꾸민 ‘귄위와 위엄, 화려함의 세계’다.  
 
현대미술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유물들을 많이 꺼내 놓았다. ‘청자상감 국화모란문 호’나 ‘청자양인각 모란문 방형 향로’이 대표적이다. 청자 소품들을 모아 관람객 눈높이에 맞춘 아담한 유리 진열장에 집중 배치한 디스플레이에서는 정구호 감독의 감각이 물씬 느껴졌다. 층마다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 현대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한 것도 신선했는데, 백자가 있는 3층에 박서보의 흰색 ‘묘법’을 같이 걸어놓는 식이다. 다양한 모양의 연적을일렬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2층 입구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의 대표작 ‘군선도’가 관람객을 맞는다. 원래 다 이어져 있는 작품을 배접을 새로 하면서 셋으로 구분했는데, 장쾌한 맛은 이전보다 덜했다. 1층의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은 고려 말 혹은 조선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인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팔각합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화려하고 세밀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고미술의 극치다.  
 
그라운드 갤러리와 블랙박스에서는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이 펼쳐졌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7개 섹션으로 구분돼 있는데, 그림과 사진과 조각과 설치 작품 130여 점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쉬지 않고 던진다. 어린이는 관람이 제한되는 작품도 일부 있다.  
 
아트숍을 없애고 이전 카페 위치에 마련한 ‘리움 스토어’에는 6인의 공예작가들이 제작한 미니어처 가구 등을 모아놓았다. 로비에 마련된 ‘휴대용 해시계’는 정교한 미감 덕분에 굿즈로 만들어놓는다면 내게도 지름신이 강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관. 상설전은 항상 무료, 기획전은 연말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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