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개 온라인 공간을 N번방 취급? 이것이 최선입니까?
카카오톡, 선물하기 후기 첨부 사진 관리 시행…N번방 방지법 적용 사례
애플, 어린이 보호 기능 넣은 iOS 15.2 업데이트…논란 속 아동음란물 사진 감지 기능 미적용
연말을 맞아 고마운 분이 선물한 케이크 기프티콘을 확인하러 카카오톡 선물하기 탭에 들어갔더니 공지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가장 최근 올라온 공지사항이 뭔가 위화감이 드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선물 후기를 작성할 때 올리는 파일에 대해 불법 촬영물의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한다는 안내였다. 사람들이 후기에 올리는 사진이 불법 몰카인지 식별해 조치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난 주 시행된 ‘N번방 방지법’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선물하기 상품 후기에 음란 영상을 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성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의 행동은 상상을 뛰어넘곤 한다.
하지만 친구와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기 위해 방문하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불법 촬영물 업로드를 모니터링한다는 공지를 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내가 친구 생일 선물로 기프티콘 하나 보낼 때에도 스크린 너머에서 나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간주하는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해야 한다는 말인가?
성착취물을 막는다는 취지의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일명 N번방 방지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많은 부분 이런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성착취 영상을 찍고 공유하는 행위를 막고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불법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권력이나 기업은 사람들의 영역에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을까?
광장의 자유, 광장의 억누름
대형 인터넷 게시판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은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공개 공간이기 때문에 불법 촬영물 식별이 사적 검열이 아니라고 정부는 해명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어울리는 광장의 곳곳에는 경찰이 조용히 순찰을 돌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CCTV도 돌아간다. 자유롭게 웃고 떠들라고 있는 술집이지만, 옆 테이블 여성 손님들에게 정도 이상으로 치근덕대면 경찰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광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이 1m 간격으로 눈에 띄게 서 있지는 않다. 사방 벽에 ‘감시 중’이란 문구가 크게 적힌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술집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침실 안, 스마트폰 잠금화면 너머, 인터넷 검색 기록 등 자신만의 영역에서 안심하고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다. 이 안에 있는 것들이 타의에 의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는 안심감은 인간 존엄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에 못지않게 일상의 사회적 공간에서 감시의 압박을 느끼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활동하는 것 역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데 중요하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영상을 올릴 때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입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것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치 소설 ‘1984’ 속 공산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어느 집과 가게에나 설치된 감시 기기 텔레스크린 밑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이 바람직하지 못한 짓을 하지 못 하게 일일이 친절하게 가르치고 교화하려 드는 국가의 지나친 선의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국민을 향한 국가의 지나친 선의는 국민에 대한 권력의 오만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물론 ‘검토 중’ 문구는 지금 올리려는 이미지가 검토되고 있다는 정보를 주는 것, 즉 국가나 거대 플랫폼 기업이 몰래 우리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투명한 행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광장에 CCTV들이 둘러쳐 있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아는 것은 우리를 조심스럽게, 혹은 위축되게 할 수는 있지만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범죄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 전체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일으키는 정책은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다음에는 무엇에 대한 DB를 만들까?
그래서 이렇게 중요한 가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일은 어디서나 어렵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애플은 아이폰 운용체계 iOS 15.2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여기에는 어린이 사용자가 아이메시지로 누드 사진 등 음란물을 받은 경우 사진을 흐리게 처리하고 보호자에게 경고가 전송되도록 하는 기능이 포함되었다.
이는 지난 8월 발표된 어린이 보호 신기능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아이폰에 있는 사진을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에 올릴 때 사진의 해시 정보를 분석, 아동음란물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사진과 비교하는 기능이다. 아동음란물 DB에 있는 사진과 정보가 일치하는 사진이 여러 장 감지되면 조치가 취해진다.
하지만 사진 정보에 대한 분석이 사용자 단말기에서 이뤄진다는 점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고, 외부에서 단말기에 침투할 수 있는 백도어를 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애플은 아동 보호 기능 업데이트를 연기했고, 이번에 어린이 사용자에 대한 아이메시지 음란물 차단 기능만 우선 적용되었다. 아동음란물 사진 감지 기능은 적용되지 않았다. 클라우드에서 인터넷 사업자가 사용자의 데이터를 들여본다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용자 단말기에서 이미지 분석을 하게 했지만, 그 역시 논란을 일으킨 셈이다.
이런 선택들에 정답은 없고, 어떤 선택을 하건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애플도, 우리나라 정부도 억울할 수 있다. 문제 있는 콘텐츠의 특성을 파악해 두었다가 온라인 공간에서 감지하는 기술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용자로서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있다. 불법 촬영물에 대한 DB를 만들었다면, 다음에 또 다른 무엇에 대한 DB 역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N번방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초고속으로 뚝딱 법을 개정한 여야 의원들을 보면 우려는 더 커진다(지금 논의되는 부작용은 이미 그때도 다 지적된 사안들이다).
혹은 다른 나라 정부가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DB에 근거해 자국 내 사용자들을 ‘감독’해 달라고 우리 인터넷 기업에 요청한다면 어떨까? 그 나라가 독재 국가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는 일 아니니 신경 안 써도 되는가?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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