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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 통상 압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윤정 에코앤로]

정부·기업, 친환경 기술 개발 협력하고
해외 선진 기술 도입에도 적극 나서야

 
 
필드워크 컴패니의 한 직원이 9월 6일 네덜란드 앞 바다에 있는 그린드(Griend) 섬 인근에 조성된 해초밭에 손을 넣고 있다. 해초밭은 생산적인 생태계이지만 기후 변화 등의 영향으로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AFP=연합뉴스]
2007년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한 토론자가 “신흥 경제국이 위험한 기후변화를 초래할 정도의 속도로 점점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이라면서 특정 국가를 탓하자, 인도 토론자가 “우리를 기후변화의 벼랑까지 몰고 간 건 당신들(유럽연합·미국)”이라고 비난하면서 “지금부터는 이산화탄소를 ‘1인당’ 배출량으로 계산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자신의 저서 〈팩트풀니스〉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인도 토론자의 말에 100% 공감한다고 견해를 밝힌다. 전 세계 연간 화석연료 사용량 중 가장 부유한 10억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이 넘고, 가장 가난한 10억 인구는 겨우 1%이므로 EU나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나 미국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을 다른 지역에서도 누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 해당 지역의 경제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로슬링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저개발 국가는 값싼 화석연료를 이용해서 경제개발을 하고, EU, 미국과 같이 경제를 이미 고도로 발전시킨 나라들이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더 부담하는 것이 타당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실은 로슬링의 주장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EU와 미국에서 최근 내놓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책이 동시에 자국 산업 보호책이란 점에서 그러하다.  
 
EU 집행위원회는 2021년 7월 14일,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배출량에 대하여 탄소배출권 인증서를 구입하도록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법률안을 제출하였고, 현재 EU 의회와 EU 이사회에서 검토 중이다. 2022년 3월에는 EU 이사회에서, 2022년 6월에는 EU 의회에서 위 법률안의 수정안을 발표하였으며, 2022년 연말까지 입법 과정을 마무리하고, 2023 년 1월 1일부터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높아지는 강대국 무역 장벽 탄소국경조정제

EU 집행위원회 초안과 EU 이사회 수정안에 따르면, 대상 품목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기 등 5가지 품목이고, 과세 범위는 생산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배출량 (직접배출)에 한정된다. EU 의회 수정안은 EU 집행위원회 초안보다 과세 대상 및 과세 범위가 확대되어 유기화학품, 플라스틱, 수소, 암모니아가 추가되었고, 직접배출에 더하여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전기 생산에 수반되는 탄소배출(간접배출)도 과세 범위에 포함되었다.  
 
미국에서도 탄소국경조정세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었다. 미국 하원은 2021년 7월 19일 “공정하고 실현 가능하며, 혁신적이고, 회복력 있는 전환 및 경쟁법(공정경쟁법)을 발의했고, 미국 상원은 2022년 6월 7일 ‘청정경쟁법’을 발의하였다. 입법 작업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2024년부터 본격적인 과세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이 9월 9일 플라스틱·유리 등의 퇴적물이 쌓여 있는 세론 그란데 저수지(엘살바도르 포토니코 소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AFP=연합뉴스]
공정경쟁법의 과세 대상 품목은 화석연료 (천연가스·석유·석탄과 이러한 화석연료에서 파생된 제품)와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의 산업과 관련 제품이다. 청정경쟁법은 이에 더하여 펄프·제지·신문인쇄용지·판지·아스팔트·석유화학·에틸알코올·유기화학·비료·유리·석회·석고 등의 산업과 관련 제품을 추가하였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또는 탄소국경조정세는 탄소누출(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여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환경적 명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EU 및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어 EU와 미국에는 일석이조가 되는 제도이다.  
 
반면에 다른 나라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EU와 미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비용이 증가하는 리스크를 부담하여야 한다. 당장에는 과세 대상이 화석연료나 탄소 다배출 산업에 한정될지라도 장기적으로 과세 대상 업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수출 의존 높은 한국 기업들 기술 개발 나서야

이에 더해서, 미국은 2022년 8월 16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 대응에 총 3,693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재원 마련을 위해 화석연료 부문에 대한 세금 및 수수료를 인상하며, 대기업에 최소 15% 법인세를 부과하는 등의 과세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전기차를 구매할 때 신차의 경우 최대 7500 달러, 중고차는 최대 4000 달러의 보조금 혜택을 받지만, 이는 미국에서 조립, 생산된 전기차에 한정되며, 또한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제외된다.  
 
한국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서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은 1인당 탄소배출량이 상당히 높아서 2007년 다보스 포럼 인도 토론자처럼 “이산화탄소를 ‘1인당’ 배출량으로 계산하자”라는 주장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다른 한편, 한국은 2018년에야 탄소배출량 최고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탄소배출량 정점을 찍은 후 전반적으로 감소세에 있는 EU나 미국과는 다르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수출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으므로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세 제도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한국 기업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친환경 기술 전략을 적극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수립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과감한 R&D 투자를 통해서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3월 25일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 촉진법이 시행되고, 2022년 9월 2일 기후변화대응 기술 세부내용 고시안이 행정예고 된 일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나아가, 이미 EU 또는 미국에서 개발된 핵심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는 일에도 많은 투자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기술 관련 특허가 138만건 이상이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적극적이고 발 빠른 친환경 기술 개발과 기술 도입만이 기후변화 시대 통상 압력에서 우리 기업을 살아 남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 필자는 환경법 전문가로,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이다. 환경부 고문 변호사이자 중앙환경분쟁조정회 위원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22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 포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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