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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가 확인해 준 ‘느슨한 관계’의 힘 [한세희 테크&라이프]

미 스탠포드대학 마크 그라노베타 ‘느슨한 연결’ 개념 제시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 통해 느슨한 연결 가설 검증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알 수도 있는 사람(People You May Know)’과 같은 친구 추천 기능을 통해 이 같은 느슨한 연결을 확산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살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의 삶과 직업적, 사회적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맥은 흔히 성공의 필수 요소로 간주되며, 사람들은 인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당신의 카카오톡 친구는 몇명인가요?
 
이러한 인맥, 혹은 네트워크의 효과를 잘 설명하는 말로 ‘느슨한 연결(weak times)의 힘’을 들 수 있다. 친한 친구나 가족 같은 ‘강한 연결(strong ties)’ 관계가 아니라 안면 정도 있는 지인이나 친구의 친구들을 통해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느슨한 연결은 특히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이직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서로 네트워크가 겹치니 큰 도움이 안 되지만,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을 통해서는 지금의 인맥과는 다른 더 넓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슨한 연결은 1973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교수였던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타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가 미국 보스턴 지역 직장인 2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지인을 통해 현재의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친한 사람을 통해 직업을 얻은 사람은 드물었고, 84%는 어쩌다 한번씩 보는 지인의 소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응답했다. 그라노베타 교수는 이를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정보의 수영장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강한 연결과 느슨한 연결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 이론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실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고, 때로는 반대로 강한 연결이 더 이직과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등 논란이 적지 않았다.
 

하버드-MIT 연구진, 링크드인으로 ‘느슨한 연결’ 이론 검증  

하지만 인터넷 시대를 맞아 우리는 이러한 네트워크 이론을 실증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갖게 되었다. 바로 소셜 네트워크이다. 페이스북 친구나 트위터 팔로워는 대부분 직접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 같은 업계나 관심사, 친구의 친구 같은 막연한 공통점을 배경으로 한 지인에 가깝다.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알 수도 있는 사람(People You May Know)’과 같은 친구 추천 기능을 통해 이 같은 느슨한 연결을 부추겼다. 실제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전이라면 접할 기회가 없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숨은 고수들과 교류하고, 나아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사업 또는 경력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수억, 수십 억의 사용자를 가진 초거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이러한 ‘느슨한 연결’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최선의 장이다. 실제 이런 연구가 이뤄진 소셜 미디어가 있다. 바로 8억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직장인들을 위한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이다. 이 실험의 결과가 정리되어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링크드인의 친구 추천 알고리즘에 따른 결과 데이터를 하버드대학과 MIT 연구진이 분석했다.
 
링크드인은 최적의 친구 추천 알고리즘을 찾기 위해 사용자 일부를 무작위로 골라 서로 다른 추천 방식을 적용했다. 한 사용자 그룹에는 사회적 연결 고리가 약한 사람을 추천하는 비중을 높여 느슨한 연결을 많이 형성하게끔 했다. 다른 그룹에는 연결 고리가 강한 사람을 상대적으로 많이 추천해 강한 연결을 형성하게 했다. 이어 각 그룹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세 일자리에 지원하는지, 새로 맺어진 친구와 같은 직장에 입사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살폈다.
 
5년에 걸쳐 약 2000만명을 대상으로 테스트가 이뤄졌고, 이로 인해 20억건의 새 친구 관계와 60만건의 신규 고용이 일어났다. 연구자들은 테스트 결과를 익명화한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적 연결의 강도와 이직 성공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느슨한 연결 이론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 인과 관계 분석이라 하겠다.
 
하버드대와 MIT 연구진이 분석한 링크드인 사용자 간 네트워크를 형상화한 이미지 [사진 Carl De Torres, StoryTK]

적절히 느슨한 관계가 구직에 최적

결과는 느슨한 연결 이론과 대체로 부합했다. 느슨한 관계는 강한 관계에 비해 사용자가 새 직장을 찾는데 있어 2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느슨하다고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수준의 느슨함은 구직에 도움이 됐지만, 어느 정도를 벗어나면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함께 아는 친구가 10명 정도 되고, 상호 교류는 거의 없는 정도의 관계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느슨한 관계의 효과는 업종에 따라서 달랐다. 디지털 산업에서는 영향이 컸고, 전통 산업에서는 강한 관계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이는 강한 관계가 구직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나왔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본래 ‘노는 물’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분야에서 사람들과 캐주얼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이 경력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란 실용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이런 비즈니스의 지혜만큼 주목해야 할 점은 아마 링크드인의 서로 다른 알고리즘에 따라 각 사용자의 네트워크가 느슨한 또는 강한 모습으로 순조롭게 형성됐다는 점일 수 있다. 소셜 미디어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고, 이는 이들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나 정책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테스트 기간 중 느슨한 연결을 추천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좋은 구직 기회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강한 연결 관계에서 이직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사용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구직 기회를 잃었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그럼에도 플랫폼 기업의 블랙박스에 조금씩 더 많이 운명을 맡기는 듯한 느낌은 어딘가 찜찜하다.
 
메타 역시 2014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부정적 감정을 담은 게시물을 많이 노출시키면 이를 접한 사용자 역시 부정적 게시물을 올릴지 테스트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70만명에 가까운 페이스북 사용자가 실험 대상이 됐다.
 
우리의 감정이나 일자리에 대한 결정 등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들이 몇몇 기업의 자세히 알기 어려운 알고리즘이나 테스트에 의해 영향받거나 혹은 조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삶에 집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변화들이 지금도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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