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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애플페이, 이 또한 현대카드의 ‘큰 그림’인가 [이코노 EYE]

가맹점들이 알아서 NFC 단말기 설치 나서
정태영 부회장의 장기집권에 과감한 결정 가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
올해 여름부터 애플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가 국내에 도입될 것이란 설이 돌았습니다. 이후 현대카드가 애플과 독점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지난 5일에는 금융감독원 약관심사를 통과하면서 애플페이 출시가 가시화됐습니다. 애플 및 아이폰 사용자들은 “이번엔 진짜다”라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애플페이가 진짜 한국땅을 밟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국내 결제정보를 국외로 이전 승인하는 애플페이 결제 방식인 EMV(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카드가 제정한 결제시장 표준)가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에 저촉되는지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죠. 국내 결제자들의 신용정보 유출 우려가 없는지 점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EMV 결제정보는 일회용 가상 카드번호를 생성하는 토큰화 기술로 처리되므로 보안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애플페이는 물론 삼성페이도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죠.
 
이보다 많이 지적되는 건 애플페이 오프라인 결제에서 사용되는 근거리무선통신(NFC) 단말기가 국내에 매우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신용카드 가맹점 약 300만개 중 NFC 단말기를 보유한 곳은 10% 남짓이라고 합니다.
 
현대카드는 NFC 단말기의 보급 확대를 위해 설치 비용을 책임지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이 단말기 한 대 가격이 못해도 15만원 수준인데 전국 가맹점에 보급한다면 약 4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용을 현대카드가 모두 지불하려 해도 난관이 있습니다. 리베이트(부당 보상금) 제공을 금지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까지 대다수 언론 기사와 전문가의 전망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낮은 NFC 단말기 보급률은 현대카드에게 해결할 ‘과제’가 아닌 오히려 ‘전략’일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옵니다. 현대카드가 아이폰 주 사용층인 2030세대를 노린 ‘니치(틈새) 마케팅’이라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브랜드 한국갤럽 조사. [사진 한국갤럽]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만 18~29세 아이폰 사용률은 52%로 과반이었습니다. 30대도 43%로 높은 수치를 보였죠. 현대카드와 애플의 계약 기간은 1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뜻 비교적 짧은 기간이라 생각되지만, 현대카드 입장에선 아이폰 주 이용층만 공략해도 나름 성공적인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겁니다.
 
이미 2030세대가 자주 방문하는 주요 카페나 편의점, 일부 프랜차이즈에는 NFC 단말기가 설치돼있거나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2030세대가 굳이 NFC 단말기가 없는 지방의 노포(老鋪) 식당 같은 곳에서 애플페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실제 현대카드와 ‘이상동몽(異床同夢)’을 하는 기업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롯데하이마트는 NFC 단말기를 일부 매장에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토스플레이스는 서울 시내 약 300개 가맹점에 NFC 결제 지원 단말기를 시범 보급했으며, NHN KCP는 홈페이지 매장용 키오스크 설명에서 ‘애플페이 사용 가능’ 문구를 넣었다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4일 애플페이 도입과 관련해 관계자가 유출한 메가커피 내부 문건.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메가커피의 경우 한층 파격적(?)입니다. 이달 중 서울·경기 지역 약 1000개 매장에 약 20만원 상당의 NFC 단말기를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메가커피 본사가 애플페이 도입을 앞두고 전액 지원으로 6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치르기로 한 것이죠. 메가커피 측은 “애플페이는 국내 시장 점유율 34%에 달하는 아이폰 유저들이 8년 간 기다려온 시스템”이라며 “결제 시스템 초기 도입으로 트렌드 선점을 통한 영(Young) 마케팅 및 온라인상 이슈 생성을 기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가맹점들이 알아서 NFC 단말기 설치에 나서주니 현대카드는 ‘손 안 대고 코 푼다’며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업계에선 현대카드가 이처럼 다소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장기집권이 한몫했다는 설명입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카드는 2~3년마다 사장이 교체되는 전문경영인 체제 카드사들과 태생부터 다르다”며 “다른 카드사들은 2030세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려 해도 당장 수익이 나지 않을뿐더러 임기 문제로 장기 프로젝트가 어렵기 때문에 좌절되기 쉽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 현대카드와 넥슨의 업무협약을 계기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이정헌 넥슨 대표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
현대카드는 지난 2018년 삼성카드가 18년째 이어오던 코스트코 파트너십 계약을 선점해 10년 독점 계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현대카드가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지만, 최근엔 충성 고객을 확보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무신사·넥슨·미래에셋증권 등과 손잡고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를 출시해 니치 마켓을 꾸준히 노리고 있죠.
 
현대카드의 신용판매 실적 기준 점유율은 2019년 2분기 15.6%에서 올해 3분기 17.5%까지 뛰어올랐습니다. 2018년에 3위 자리를 내준 뒤 4년 만입니다. 과연 현대카드와 정 부회장의 애플페이 도입은 카드업계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윤형준 기자 yoonb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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