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집중분석]테러전쟁 직격탄 맞은 항공업계 파산 위기

[집중분석]테러전쟁 직격탄 맞은 항공업계 파산 위기

“더 이상 인력 감축은 없다고 회사에선 얘기하지만 직원들은 무척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보너스 반납에, 3개월 무급휴직 실시 등 갖가지 소문이 무성합니다.” 대한항공 국내선 예약부에 근무하는 김 모씨(34)는 갈수록 악화되는 항공사의 경영여건에 대해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더 이상 나쁠 순 없다-.’ 지금 국내 항공업계의 여건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미 테러 사태 이후 승객들의 탑승률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테러사태 이전부터 국내 항공사들은 피말리는 고통을 겪어왔다. 가장 큰 원인은 고유가와 고환율. 유가는 항공사의 원가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중대한 경영변수다. 지속적인 오름세를 계속하던 항공유 가격이 올 1월부터 8월까지 갤런당 83센트를 유지하면서 항공사들은 만성적인 적자요인에 시달려 왔다. 99년 같은 기간 52센트이던 유가에 비해 60% 이상 가격이 상승된 것이다. 이 같은 고유가 기조는 2000년 이후 계속되는 상황이다.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고환율의 지속도 국내 항공사에게는 또 다른 악재다. 수익과 비용 구조상 달러화의 지출이 많은 항공업계에서는 미 달러화의 강세는 한 마디로 치명타다. 항공유가, 외국 공항 사용료 등 각종 비용이 달러화로 지급되어야 하는 탓에 어느 산업보다 환율에 민감한 업종이 바로 항공산업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되고 있는 미 달러화의 강세는 항공사의 목을 죄고 있는 실정. 게다가 최근 전세계적인 정보기술(IT)산업 경기 악화 등으로 수출 물량은 감소되고 있는 상황. 따라서 항공사들의 화물 운송 부문 매출도 갈수록 줄어들어 지난해 대비 10% 이상 급감했다. 이 같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던 항공사에 미 테러 사태와 전쟁 발발은 엎친 데 덮친 격. 불안한 승객들이 미주·유럽 노선의 탑승을 꺼리고 회사들도 출장 횟수를 줄이는 바람에 항공업계의 재정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 연말까지 9천억원, 아시아나 항공은 3천7백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지난 9월11일 테러 참사 후 한 달 간 탑승률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미주노선·유럽노선 탑승률은 15~20%, 일본 등 동남아 근거리 노선도 1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발발로 인해 영국 재보험업계가 손실을 입으면서, 항공관련 보험료의 대폭 인상 또한 불가피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일로를 걷자 다급해진 항공사들은 저마다 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최근 유가증권 83억원과 부동산 36억원을 매각 완료했고, 서울 등촌동의 교육원 빌딩과 서울·부산 지역의 사원아파트의 매각을 진행 중이다. 그외에도 각 사업부문별로 20%의 비용절감 계획을 세우고 초긴축 경영에 돌입한 상황이다.

아시아나 항공, ‘정크 본드’수준 이번 사태로 가장 타격이 심한 곳은 아시아나 항공이다. 아시아나는 특히 모기업인 금호그룹의 경영악화로 올 초부터 계속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었다. 금호그룹은 10대 그룹 중 현대그룹 다음으로 위태로운 곳이란 얘기가 많았다. 심지어 한때 국내 모 그룹에 아시아나 항공을 매각한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었다. 금호그룹은 2000년 9월까지 부채가 5조5천억원에 달한 반면, 매출은 5조원에 불과했다. 매출의 10%를 당기순이익으로 단순 계산해도 순이익으로 해마다 이자를 갚기에 급급하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호그룹은 서울 회현동 아시아나빌딩과 신문로 그룹사옥의 매각을 비롯해 대대적인 자산매각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타이어부문은 여전히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규모 환차손을 입은 아시아나항공이나 수익구조가 좋지 않은 금호건설 등이 그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아시아나 항공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인 ‘BB’등급. 단기자금인 기업어음(CP)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나 항공은 연말까지 2천억원, 내년 1분기까지 2천5백억원 정도의 CP만기가 돌아올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이같은 불투명한 사업전망 탓에 최근 일부 종금·투신사들이 잇따라 CP를 회수해 곤란을 겪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항공권 판매 채권을 담보로 만기 3~5년의 자산담보부 채권(ABS)를 발행할 계획이며, 은행권은 ABS에 신용보강을 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한항공도 올 연말까지 도래하는 3천억원 규모의 회사채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최근 차환에 성공해 일단 한시름 놓은 상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간 항공사들에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라”고 주문만 하던 정부도 드디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항공사들에게 긴급 자금을 수혈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 미 테러사태 이후 항공사들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주문한 정부는 더 이상 국고지원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 항공업계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을 미루다가는 국적 항공사의 파산을 맞을 지도 모른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건교부는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약 2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항공업계에 무상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이와 함께 연간 1백30억원에 이르는 항공유 특별소비세와 1천억원대의 농특세를 면제해 주는 한편, 내년 2월까지 6천9백억원대에 이르는 각종 금융 세제 혜택을 줄 방침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자금 지원은 항공진흥법 등 근거조항이 미약해 법률 개정작업을 거쳐 빨라도 연말은 되어야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의 이 같은 지원방침을 항공사들은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정부에 끊임없이 ‘앓는 소리’를 해왔던 항공사들은 미 테러를 계기로 정부가 항공사에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며 내심 안심하는 눈치다. 정부는 그러나 그간 죄어왔던 구조조정 요구의 고삐를 놓치 않을 방침이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자금 지원이 단발성 약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항공산업에 대한 좀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항공 운임의 현실화라는 것. 그간 지속적으로 정부에 이와 관련한 의견을 개진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미진하다는 입장. 대한항공 관계자는 “국내선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적자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항공사들의 획기적인 수익개선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낮은 운임, 고질적인 病因으로 남아 운항거리가 짧고, 승객이 많지 않아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수천만원씩 적자를 보는 노선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정부에 제출한 항공사의 자구계획에서 이같은 노선 축소 계획도 포함되어 대한항공, 아시아나 각각 3개씩 모두 6개 노선이 축소될 계획이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는 얘기다. 반면 항공사가 노선을 탄력적으로 감편하거나 운행을 중단하는 일을 임의로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비정상적으로 낮은 운임을 정부에서 강요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많다. 항공사가 경영현황이나 수요 동향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임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운임 자유화이지만 실제 운용면에서는 정부의 강한 입김이 작용한다”며 “노선 증설, 폐지와 관련해서도 지역주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결정을 못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선 운용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연간 2천억원 규모. 항공산업이 아무리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미국 일본 등에 비해 4분의 1 혹은 5분에 1에 불과한 운임으로선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불어 닥치고 있는 항공산업 위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란 분석도 있다. 대신경제연구소의 송재학 연구위원은 “현상황은 비록 최악이지만 우리 항공업계는 내년 아시안 게임, 월드컵 등 특수가 예정되어 있어 올해 위기를 잘 견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치뤄질 아시안게임과 월드컵 덕분에 국내 항공사들의 유일한 흑자노선이라 할 수 있는 한·일, 한·중 노선에서 많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어 국내 항공사들의 앞날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내년 월드컵 특수가 끝나는 시점이 바로 7, 8월 성수기로 연결되어 수익 구조가 특히 나아질 전망이라는 것. 또한 이번 전쟁을 계기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던 유가도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도 나오고 있는 상황. 전세계 항공산업의 침체와 전반적인 세계 경기 악화로 유류 소비가 감소해 유가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어 항공사들의 수익악화가 생각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내년의 환율이 올해보다 더 높아지지만 않는다면 원가 악화도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수익 구조 개선은 여전히 항공사의 몫이다. 정부의 지원과 역시 테러전쟁의 충격을 완화하는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초점이 맞춰줘야 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2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3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4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5“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6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7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

8“‘元’ 하나 잘못 보고”…中 여성, ‘1박 5만원’ 제주도 숙소에 1100만원 냈다

9'40세' 솔비, 결정사서 들은 말 충격 "2세 생각은…"

실시간 뉴스

1“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2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3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4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5“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