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들 선재야! 미안하구나”
“어미 마중가다 죽은 아들…” 개장을 하게 된 것은 농장 내 별장 앞땅 일부가 토지구획정리사업상 신설도로로 편입되게 되었기 때문. 지난 92년 확정된 안산시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르면, 별장 건물을 제외하고 별장 옆 온실·선재씨 묘·테니스장·수영장 등 부대시설 자리에 폭 8m의 신설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라는 것. 이에 따라 안산시측은 지난 10월 김 전 회장 앞으로 선재씨의 묘를 옮기라는 ‘이장 통고’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이 별장은 김 전 회장의 몇 안 되는 남은 재산으로 알려져 채권단들이 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한 상태다. 화려한 재벌의 삶은 가고, 별장까지 사라지고, 거기 묻힌 아들의 흔적마저 공중에 뿌려지게 된 것이다. 일단 묘를 그대로 유지해 두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 다시 묘를 갈아엎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 가족들은 이같은 처지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어머니 정희자씨도 이같은 내용을 이미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을 통해 별장 내 묘를 옮겨야 한다는 얘기를 벌써 들었지만, 그것만은 안 된다며 결사 반대를 해왔다는 것. “자식을 두번 죽일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애절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오던 이장 계획은 안산시측의 재촉탓에 더 이상 시간 끌기가 힘들었다. 김우중 전 회장도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회사가 무너지고, 아들의 묘까지 파헤쳐야 하게 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제 어미 마중나가다 죽은 녀석인데…”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는 것이 한 측근의 전언이다. 선재씨가 사망한 것은 지난 90년 11월21일. 당시 선재씨는 미국 보스톤의 메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산업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날 그는 자식들을 만나러 미국에 온 어머니 정씨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는 화물트럭을 피하다가 차가 굴러 옆자리에 탄 동생 선협씨는 무사하고 그는 그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미국에는 장녀 선정씨가 남편 유학길을 따라 미국 시카고에서 살고 있었고, 두 아들은 보스턴에서 유학 중이었다. 대기업 회장의 부인으로, 힐튼호텔 경영으로 바쁜 정씨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자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미국길에 오른 참이었다. 김 전 회장은 공(公)·사(私)구분이 누구보다 엄격한 사람이라, 가족들 외유길에 절대 현지 직원들이 마중을 못나오게 했다. 가족들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따랐다. 자식 손 맞잡으려다 자식을 떠나보낸 어미의 마음-.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정씨는 선재씨 묘 옆에 자그마한 비석 하나를 마련했다. 그리움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 마당보다 좁은 이세상 인간의 자리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어미가 너에게 주는 글 1960년대 김 전 회장이 구입한 이곳 안산 땅은 모두 1만2천여평. 과수원을 뒤로 하고 나지막한 30여평짜리 별장 한 채와 관리인 집 한 채로 이뤄진 이 별장은 생각처럼 ‘호화별장’은 아니다. 김 전 회장이 맏아들을 떠나보낸 뒤 가끔 들러 책을 쓰거나 추억에 잠기곤 했던 곳이다. 이곳이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인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었지만, 채권단에서도 이미 김 전 회장 소유임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 김 전 회장의 측근 P씨는 “이곳은 김 전 회장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던 곳”이라며 “2000년 7월 대우의 유동성 확보방안으로 사재를 출연 발표를 했을 때 빠진 것도 그가 이헌재 전 장관을 독대해 ‘이곳과 방배동 자택만큼은 남겨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정부가 들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곳이 김 전 회장 소유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때 강도가 들어 별장관리인이 혼쭐을 겪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도난당한 그림 10여점도 모두 딸 선정씨가 어릴 적 그린 그림들이었다. 묘 앞으로 도로 개설 별장 지역에 도로가 통과한다는 내용의 도시계획이 확정된 것은 지난 92년. 그 후 안산시측은 대우측과 지속적으로 토지구획 정리와 관련해 협의를 해왔다. 대우가 건재하던 시절, 대우측에서는 “도로건설만큼은 말아달라”고 안산시에 요청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우가 없어진 상황이고, 더구나 주변지역 토지정비 사업이 80% 이상 진척을 보이면서 시당국도 더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게 된 것. 안산시 토지계획과의 최병영씨는 “특히 최근에는 협의할 대상 자체가 모호해져 사업 진행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며 공사 강행의 이유를 설명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도로로 수용되는 토지에 대한 보상과 철거 문제. 정부의 보상금이 지급되려면 먼저 시설물들이 철거되어야 한다. 별장은 도로 계획에서 비껴 있어 철거를 면할 예정이지만, 선재씨 묘를 포함해 온실·수영장·테니스장 등은 조만간 자진 철거를 해야 한다. 철거 후 보상 문제는 채권단과 풀어야 한다. 이 지역 땅을 법원에서 가압류를 한 상태라 김 전 회장의 소유권 행사는 정지되어 있다. 법원에서 현재 감정평가를 끝낸 상태이고 내년 초 경매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경매 절차와 상관없이 일단 도시계획상 별장 일부 지역에 대한 철거는 면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현재 김 전 회장은 독일의 한 지역에서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측근은 전했다. 부인 정씨도 현재 함께 머물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수암동 일대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땅이 많다. 수암농장에서 멀지 않은 산에는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의 장조카 묘가 있고, 그 일대의 땅을 삼성가에서 갖고 있다. 또한 유창순 전 국무총리도 인근에 산을 일부 갖고 있기도 하다. 수암동 동사무소 직원은 “아마도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곳이라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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