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의 제주도 땅 구입 열풍이 새해 들어서도 도대체 식을 줄 모른다. 실사례를 보자. 이모씨(48·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등 8명은 지난해 11월 말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고내리 땅 3천여㎡(자연녹지)를 공동명의로 사들였다.골프 동호인인 이들이 연고도 없는 제주도 땅을 구입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만의 공동주택을 지어 휴가철에는 별장 용도로 쓰고 나머지 기간에는 남에게 빌려줘 수익도 얻을 요량에서다. 해안도로에서 2백m 남짓 떨어져 주변 경관이 뛰어난 이 땅의 매입가는 ㎡당 9만7천원. 불과 한두달 전보다 더 비싼 값에, ㎡당 1만∼2만원씩 더 얹어서 샀다. 그러나 해가 바뀐 다음에 사정이 달라졌다. 1월 들어선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가격이 또 뛰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 하나. 경기도 수원에 사는 조모씨(57)도 최근 서귀포시 하원동 준농림지 2만6천4백㎡를 ㎡당 1만9천여원에 매입했다. 조씨가 결코 작지 않은 땅을, 그것도 시세보다 2∼3배나 더 쳐주고 갑자기(?) 사들인 이유는 뭔가. 한마디로 말해 미래에 대한 투자전망 때문이다. 우선 별장을 짓고 농원으로 가꾸면서 여유가 생기면 휴양펜션업을 하려는 게 조씨의 희망.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따라 제주지역에만 허용된 휴양펜션업은 형태만 민박일 뿐 분양까지 가능한, 지역주민들의 새로운 소득원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이 본격화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다른 육지지방 사람들 사이에서 제주땅 구입 붐이 일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가히 열풍이라고 부를만도 하다. 먼저 문의도 급증했지만 실제 거래도 점차 늘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인 제주랜드 홍사진 대표는 “2∼3개월 새 토지구입 문의가 종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며 “구입문의자 1백%가 서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부동산중개업협회 제주도지부 유태관 사무국장은 “땅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만 오히려 매물을 대기가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IMF 한파 이후 긴 동면(冬眠)에 빠져 있던 제주지역 부동산 경기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국제자유도시라는 막강한 변수의 등장 때문이다. 자유도시 건설이 가시화되면 제주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지난 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전후해 벌어졌던 ‘제주땅 선점 경쟁’이 10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지방 사람들이 선호하는 땅들이 제주도 특정지역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굳이 구분을 둔다면 해안도로나 중문관광단지·서귀포시 주변지역 등을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요소는 외지인들에게 별로 중요치 않은 요소다. ‘그저 제주 아무데나 있는 땅이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 전체가 ‘복덩어리’인 셈이다. 선호도는 떨어지지만 개발의 제약 요인이 없는 임야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도시 부동산 업자들이 땅을 구하러 ‘장기외유’에 나서는 일도 눈에 띈다. 부민공인중개사무소 한 관계자는 “중간업자들이 떼지어 몰려와 열흘 또는 보름·한달씩 돌아다니며 땅을 물색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지 가격이 뛰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지역은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 나돌 정도. 제주도의 대표적 관광지인 산방산 주변의 땅(밭) 6천여㎡를 3년 전쯤에 매물로 내놓았던 김모씨(57·제주시)는 최근 서울의 한 부동산업자로부터 ㎡당 7만여원을 받고 팔라는 제의를 뿌리친 데 이어 일주일 뒤 금액이 10만여원으로 뛰었는데도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당 9만원이면 살 수 있었던 애월읍 해안도로변은 최소 12만원을 줘야 구입이 가능해 졌다. 국제자유도시 건설계획상 집중 개발 대상지로 지목된 중문관광단지에서 서귀포시에 이르는 일원도 사정은 마찬가지. 거꾸로 내놨던 매물을 서둘러 회수하거나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위약금을 물고도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한 탓이다. 무성한 소문만큼 실제 거래가 따르지 않는 것도 이 때문. 오름(제주도의 기생화산)과 바다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북제주군 구좌읍 덕천리 중산간도로변에 24만여평의 임야(준농림지)를 공동 소유한 김모씨(서울 중랑구) 등 3명이 바로 이런 경우다. ㎡당 6천원대에 매물로 내놓아도 장기간 팔리지 않아 노심초사했는데 최근 땅값 상승 기미가 보이자 “㎡당 최소 7천원은 줘야 팔겠다”며 매물을 회수해 버렸다. 지난해 말 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정은 개발사업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IMF 한파를 만나 중단됐던 관광단지·지구 및 골프장·콘도·리조트 개발이 재개되고, 외자유치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남제주군 수망관광지구를 인수한 남광산업건설㈜는 최근 제주도 등과 각종 부담금 납부에 따른 협의를 활발히 벌이면서 공사재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99년 4월 개발공사를 멈췄던 한화국토개발도 최근 제주시 봉개휴양림관광지구 공사 재개를 위해 직원들을 대거 제주에 내려보냈다. 소리만 요란했던 외자유치도 한껏 진전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세계적 투자업체인 베친스키그룹은 남제주군 성산포관광단지에 62억 달러를 투자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지난해 11월 10억 달러를 코트라(KOTRA)에 투자신고 했다. 또 미국 업체 AJ어소쉬에이트(AJ Associate)도 개발 찬반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남제주군 송악산 지구를 개발하기 위해 1억 달러의 투자 신고서를 냈다. 그러나 토지매입 붐과 개발 사업 및 외자유치 활기라는 일련의 현상들이 긍정적인 역할만 할 것으로 믿는 지역 주민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지역주민의 원주민화’를 가속화시켜 개발에서 소외되고 개발 이익 배분에서도 제외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크게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외지인들의 기대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세계 ‘최후발 주자’로서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성공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또 성공한다 해도 그 열매는 먼 장래의 일일 것이다. 투기로도 비쳐지는 외지인들의 토지매입 붐은 벌써 곳곳에서 이상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개발이 가능한 땅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선뜻 매입에 나섰다가 낭패를 보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일부 생활정보지나 일간지 등에 실리는 달콤한 유혹들은 무작정 사고 보자는 ‘묻지마식 투자자들’에게 경계대상 1호로 지목되고 있다. 제주 인(In) 제주 공인중개사사무소 강동형 대표는 “국제자유도시에 대한 기대감만 갖고 제주 현지 사정에 대한 상식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땅을 샀다 후회하는 서울 사람들을 요즘 들어 많이 본다”며 “공신력 있는 업소 등을 찾아 꼼꼼히 토지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내일 전국 불볕더위 이어져…제주는 28일 오전까지 비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손담비, 출산 100일 차 맞아? 벌써 선명한 복근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정부, 통상대책회의 개최..."차주 루비오·베센트 만난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슈퍼달러에 웃었던 국민연금, 올해 환율 효과는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단독]인투셀, 中 선행특허 상장 전 인지 정황...거래소에도 함구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