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1일 미국 LA 인근의 애너하임컨벤션센터 1층 ‘OFC 2002’가 열린 현장. OFC(Optical Fiber Communications Conference)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 광통신 관련 전시회 및 컨퍼런스다. 1만여평의 전시공간에 1천2백개의 광통신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소리 없는 전쟁터’다. 전시홀 부스 넘버 2143호. 이곳에서는 광통신 관련 코스닥 등록기업인 아이티(www.it.co.kr) 서승관 사장이 바이어를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다. 최근 활발하게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10기가급(Gbps) 광 모듈에 대해 그림을 그려가며 그는 설명하고 있다. 광 모듈은 광케이블을 이용한 통신을 할 때 전기 신호와 빛 신호를 상호 변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인근에 위치한 광통신 부품 제조벤처인 젠포토닉스(www.zenphotonics.com) 부스. 광통신용 광소자를 전문적으로 개발 생산하는 회사로 기존 방법과는 다른 폴리머를 이용한 기술로 눈길을 끌었다. 이 부스에도 전시회가 열린 3일 동안 1천여명의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이 회사 역시 이번 전시회에 광소자 10종과 부분품 5종, 광 도파로용 폴리머 물질 2종 등을 출품, 참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국의 광통신 산업이 세계 시장의 한복판에서 용틀임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광통신산업은, 한국과학기술의 요람 대덕밸리를 중심으로 서울과 광주지역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시장이 좁은 탓에 이들 광통신 기업들은 저마다 해외진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대의 광통신 전시회인 이번 ‘OFC 2002’에는 한국 기업들이 대거 참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올해는 기록적으로 많이 참여한 게 눈길을 끈다. OFC 참가 역사상 가장 많은 60개의 기업들이 단독부스를 마련해 역대 ‘최다(最多)’를 기록했다. 2000년 20개, 2001년 40개에 이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독립부스를 마련하지는 않았으나 부스를 마련한 기업과 함께 제품을 내놓은 기업을 합치면 60개가 훌쩍 넘는다. 그런데 국내업체가 이 전시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사실 올 전시회에는 전 세계적으로 1천2백여개 회사가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광통신 기업들의 성장세를 보면 심상치가 않다. 올해 60개 기업이 OFC에 부스를 마련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OFC가 끝난 다음 구두 조사에서도 대다수 기업들이 내년에도 참가할 계획으로 답변했다. 갈수록 기업들의 해외 진출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OFC의 공보담당 엘리자베스 렌즈(Elizabeth Renz)씨는 “매년 한국기업들의 참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한국의 참가 기업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국 기업들이 OFC에 참여한 것은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다. 지난 95년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그해 창업한 파이버프로(www.fiberpro.com)가 첫 발을 내디딘 후 96년에서 99년까지는 3∼5개 정도만이 참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게 올해에는 60개나 되기에 이르렀다. 광산업이 최근 활성화되고 있다지만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80개 이상의 기업들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버프로의 고연완 사장은 “지난 95년 삼성과 함께 처음 전시회를 가졌는데 이제는 60개 기업이 참가했다니 감개무량하다”면서 “우리나라도 광산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OFC는 전시회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컨퍼런스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OFC를 통해서 발표된 기술동향이 그만큼 시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에서 제출된 논문도 늘어났다. 연구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비롯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연구원 등이 2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관련 연구원들의 컨퍼런스 참여도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의 광 관련 관계자들이 총출동한 만큼 기술 동향 파악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KAIST·ETRI·한국광기술원(KOPTI) 등에서 1백여명의 연구진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렇게 대규모의 연구진들이 광산업 관련 연구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광산업의 미래를 밝게 해주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억 달러를 펀딩해 유명한 노베라 옵틱스의 김병윤 사장은 “올해는 ETRI 등에서 많은 분들이 논문 발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주최측인 OSA 사무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편 이 전시회에서 한국 기업들의 신제품 발표도 잇따랐다. 참가 기업들의 기술수준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광 관련 기업들의 상당수가 기존 연구기관이나 학교에서의 기술을 상용화시켰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광섬유 배열 솔루션 기업인 한텍(www.hantech.com)은 광섬유를 칩으로 만드는 기술을 선보여 전시회 기간 동안 발행되는 소식지에 실렸으며 파이버프로는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단독’ 신제품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KAIST 전자공학과 권영세 박사는 “한국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생산·상용화 경험 등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일부 기업들의 경우는 기존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품도 있어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광통신 기업들 간에 ‘한번 뭉쳐보자’는 분위기도 미국 전시회 현지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규모가 영세한 국내기업이 외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경비절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고 있다. 가령 내년에 열리는 ‘애틀란타 OFC 2003’에는 전세기를 공동으로 확보하고 한국 기업들의 기술을 공동으로 설명회를 갖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현지에서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거나 참가기업들간 네트워크의 밤, 유명 잡지에 공동광고를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의견도 개진됐다. 빛과전자의 김홍만 사장은 “일단 각각 회사들의 입장이 달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모두의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누군가 깃발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전세기 임대’와 관련, 우리로광통신측 관계자는 “광주에서 참가하는 기업만 해도 10여 곳이고 광기술원의 연구원들을 포함하면 1백여명은 너끈하다”면서 “1대보다는 1진과 2진으로 나눠서 2대를 빌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광통신 산업에 대해 낙관은 이르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일부 기술의 경우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기술이라는 게 아직은 걸음마를 조금 뗀 수준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시각도 있다. 게다가 시장도 아직은 초기단계라고 말한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 시장에 이어 광 시장이 미래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여러 차례 나왔으나 ‘아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 OFC에서의 최대 화두는 ‘생존’을 꼽는다. 그만큼 시장이 불안정하고 전망이 엇갈리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미국 현지 전시회 기간 중에 전시회와 세미나·발표회 등을 통해 만난 기업인들과 관계자들은 향후 1∼2년이 광통신 기업인들에게는 고난의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애널리스트 존 쇼던(John Soden, Managing Directer of RHK)씨는 “광통신의 미래가 밝다는 점에 대해서는 제고의 여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불확실성은 줄어들었지만 기업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그때까지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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