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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1막 끝?…하반기 불안감 확산

경기회복 1막 끝?…하반기 불안감 확산

“돈을 벌기는 무슨 돈을 법니까. 우리 같은 소액투자자들은 불안해서 오래 붙들고 있지를 못해요. 더군다나 6월에 월드컵 치르고 지방선거 하고 나면 주식시장도 끝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어떻게 장기투자할 수 있습니까. 1천, 2천포인트 얘기도 하지만 이전에 워낙 당해서 이젠 믿지 못해요.” 서울 명동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한 중년의 투자자는 ‘주식투자해서 돈 좀 벌었냐’는 질문에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정부나 언론에서 연일 경제가 본격 회복되고 있다고 하고, 일부에서는 과열을 우려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불안하게 느끼는 투자자들이 많은 듯했다. 2년 전부터 레저용품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사장(42)은 사정은 다르지만 심정은 비슷하다. 최근 접속 건수가 늘고, 매출도 다소 회복되고 있으며 주 5일제 근무제가 도입되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집까지 잡혀 수천만원을 쇼핑몰에 투자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고객을 확보하려면 올해 투자를 더 할 수밖에 없어요. 서버 능력도 보강하고, 동영상도 집어넣어 서비스를 강화해야 하는데 앞으로 투자한 만큼 매출을 올려 회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겁니다.” 과연 우리 경제는 지난해의 부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것인가. 지자체와 대선 등 양대 선거와 월드컵·아시안 게임 등 국가적 행사가 줄줄이 치러지는 하반기 경제는 믿어도 좋은가. 투자자는 물론 크고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경기회복 초기에 겪게 되는 공통적인 고민에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경제가 바닥에서 탈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이러한 회복세가 하반기에도 지속될지 여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경제 회복을 이끌 새로운 성장의 기관차가 없는데다 본격 회복에 필수적인 수출과 기업의 투자가 아직도 부진하다는 점에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하반기에 물가와 금리가 오를 경우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경제에 다시 먹구름이 낄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장밋빛으로 치장된 각종 지표 최근 통계청이나 한국은행·전경련·대한상의 등 정부 및 민간단체가 발표하는 각종 지표를 보면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가운데 가장 극적인 지표는 단연 기업과 소비자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각종 실사지수다. 전경련의 기업실사지수(BSI)는 3월에 141.9로 2월의 110.7보다 무려 31.2포인트나 높아졌다. 전경련이 이 조사를 시작한 80년대 초 이후 사상 최대 상승폭이다. 대한상의의 BSI 역시 1분기 80에서 2분기엔 133으로 무려 53포인트나 급등했다. 이는 내수부문인 민간소비와 부동산 시장·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출은 두자릿수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고, 일부 고급 외제품의 경우 없어서 못파는 진풍경까지 연출하고 있다. 신규 아파트 청약현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어 급기야 정부가 부동산 안정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주가는 9백선을 넘어 1천포인트를 공략할 태세다. 내수부문의 급격한 회복은 지난해 한은의 잇따른 금리인하와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 등 재정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한은의 금리인하로 시장금리가 사상최저 수준인 6%대로 떨어지면서 가계는 물론 기업의 금리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개인들은 은행에서 수십조원의 돈을 빌려 부동산과 일부는 주식에 쏟아부었고, 신용카드로 왕성한 소비를 즐겼다. 정부도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각종 부동산 개발정책 등 재정을 작년 하반기부터 집중 투입해 내수를 부양했다.

내수를 이어갈 기관차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아직 신중하다. 여전히 신규투자를 억제한 상태에서 내수부문의 활기가 다른 부문으로 얼마나 확산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특히 우리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이 과연 언제쯤 회복세로 돌아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출은 지난해 12.7% 감소한데 이어 올 1∼2월에도 13%나 줄어들어 여전히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나지 않을 경우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게다가 수출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소비가 팽창을 지속한다면 대외불균형, 즉 경상수지 적자라는 우리 경제의 치명적 약점이 다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및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내수가 경기를 이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우려되는 점은 내수부문이 이끌어 낸 경기의 바닥 탈출을 본격 회복 국면으로 이끌어 갈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97∼98년의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는 ‘벤처’라는 기관차를 발견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전통산업이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만큼 아직은 IT부문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IT부문은 최근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바닥 탈출 조짐을 보여 기대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을 담보할 만큼 큰 힘을 발휘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세계적으로도 IT부문의 공급과잉이 해소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반도체와 컴퓨터 및 관련장비 분야의 공장가동률은 65%, 통신부문은 55%에 불과해 전체 가동률 75%를 크게 밑돌고 있다. 90년대 각 업체들이 네트워크 구축 등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던 통신부문의 가동률은 아직도 하락세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IT부문의 회복지연이 전반적인 경기회복 속도를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수년 전에 비해 정반대의 상황인 셈이다.

‘더블 딥’ 피할 수 있을까 이처럼 수출과 투자가 아직 부진한 가운데 내수가 불균형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일부에서는 ‘거품현상’을 우려하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거품이란 전체 경제의 흐름과 달리 특정부분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으로 이것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가져오게 돼 있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다시 거품인가(Bubbly Again?)’라는 보고서에서 가계신용(대출)과 부동산 부분에 거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 97년 홍콩의 부동산 가격폭락과 유사한 현상이 한국에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내수팽창에다 올 6월의 월드컵과 지방선거 등 대규모 국가적 행사가 물가를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한은이 금리를 조기에 인상해 경제의 안정성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은이 최근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물론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기업투자가 제대로 살아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경기를 바닥에서 건져놓은 소비까지 위축된다면 어려움이 찾아오는 건 당연하다. 일반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주가도 아주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대선을 앞두고 주가는 대체로 하락세를 보여왔다. 증시는 무엇보다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반기에 크게 오를 경우 대선을 앞두고 대형 호재가 터지지 않는 한 상반기보다 부진한 수익률을 낼 수밖에 없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두 6차례의 경기침체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5차례가 이중침체라는 이른바 ‘더블 딥(double dip)’을 겪었다는 사실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경기회복 초기엔 민간소비나 자산가격의 회복이 큰 역할을 하지만 호황기에 형성됐던 과잉투자가 해소되지 않아 한차례 침체를 겪은 다음 본격적인 회복기에 진입했던 것이다. 지금은 90년대 호황기의 IT 과잉투자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 불안요인이다. 결국 현재로선 낙관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경기가 W자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될 경우 하반기의 우리 경제를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최근 일부에서 제기하는 하반기 경제불안에 대한 논란은 더욱 신경을 쓰고 주시해야 할 부분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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