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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CEO들은 薄俸에 시달린다?

한국 CEO들은 薄俸에 시달린다?

김정태 국민은행장
손길승 SK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윤윤수 휠라코리아사장
“그만큼 월급을 받아도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농담조로 꺼낸 말이다. 당대 최고의 최고경영자(CEO) 중 한 사람인 그의 월급은 5천만원, 연봉으로 치면 6억원이다. 웬만한 은행의 직원 평균 연봉이 넘는 ‘월봉’을 받는데도 남는 게 별로 없는 것은 취임 후 자신의 지시로 임원들의 법인카드를 회수, 은행장 판공비가 없는데다 후원금 등 이런저런 명목으로 뜯기는 돈까지 월급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원 회식비에 직원 격려금까지 자신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그가, 듣기에 따라서는 시시콜콜한 이런 얘기들을 털어 놓은 이유가 뭘까? 1998년 말 주택은행장으로 옮기면서 스톡옵션을 받는 대신 월급은 1원만 받겠다고 했던 배포 큰 그다. 당초 그의 연봉은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빼고도 최다 25억원대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국민은행측이 연봉 8억4천만원(월 7천만원)에 연봉의 2백%에 해당하는 성과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과 맺을 경영성과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얘기다. 당시 국민은행 관계자는 “주가상승률·수익증가율 등을 감안해 성과 지표를 만들어 성과금 지급 기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8억4천만원의 연봉도 기실은 금융감독당국의 눈치가 보여 줄인 것이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통합된 지난해 11월 국민은행은 김행장의 연봉을 14억원으로 책정했다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8억4천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당시 국민은행은 국내 은행장 중 최고의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된 하영구 한미은행장의 연봉 7억원에 2백%의 가중치를 적용했다. 통합 국민은행의 규모가 한미은행의 두배 정도 됐기 때문이다. 깎인 8억4천만원도 하행장의 연봉에 20%를 가산한 것이다. 이사회에서 결정한 8억4천만원의 연봉은 그 달 김행장이 첫월급을 수령하면서 자진반납 형태로 스스로 삭감하는 바람에 다시 6억원으로 낮아졌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당시 “고액 연봉 때문에 금융당국으로부터 눈총을 받자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월급 5천만원의 사용 명세를 밝혀가며 김행장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눙친 것은 고액 연봉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닐까? 국내 최고의 CEO들은 연봉을 얼마나 받을까? 국내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의 사내 등기이사들이 지난해 받은 보수의 총액은 2백61억원이다. 1인당 37억2천만원꼴. 이들 중엔 이건희 회장·윤종용 부회장·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이 끼어 있다. 올해 사상 최고의 순이익을 거둘지도 모를 이 회사는 올해 이사보수 한도를 지난해보다 25% 늘려 5백억원으로 책정했다. 이사보수 한도란 회사가 1년 동안 등기이사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급여 총액의 상한선. 따라서 삼성전자가 올해 등기이사들의 급여를 최대로 지급한다면 1인당 보수는 평균 70억원대로 뛰어오른다. 스톡옵션은 물론 논외다.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사장은 2000년 24억원대의 연봉을 받아 화제가 됐고, 은행장들 중에서는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이 지난해 10억원선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그룹 상장사 CEO들의 몸값은 1억5천만∼3억5천만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20대 그룹은 1억∼2억원선. 50대 그룹으로 확대되면 8천만∼1억5천만원선으로 떨어진다. 한국의 CEO들의 몸값은 미국은 물론 아시아권의 일본·홍콩·싱가포르에 비해서도 낮다. 국제 컨설팅 업체인 타워스 페린이 펴낸 2000년 각국의 급여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CEO들의 평균 연봉은 19만 달러(2억3천3백만원)로 미국(1백40만 달러)의 13.6% 수준이다. 홍콩(63만 달러)·싱가포르(62만 달러)·일본(54만 달러) 등에 비해서도 3분의 1 안팎에 불과하다. 스톡옵션 등의 인센티브도 적다. 미국 CEO들의 인센티브는 기본급의 1백55%에 이르지만 한국의 CEO들은 기본급의 25%를 인센티브로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싱가포르(1백2%)나 홍콩(87%)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준. 신입 직원과 CEO의 급여를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임금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박사는 “한국 기업의 신입 직원과 CEO 간의 임금 격차는 약 8배로,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의 40배에 비해 상당히 작다”며 “우리나라는 경영진의 보수에 대한 규제가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CEO와 직원들 간의 임금 격차가 극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경영학의 태두 피터 F. 드러커는 CEO와 직원들 간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커지면 CEO의 리더십이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간부도 자기 회사에서 최저 임금을 받는 근로자보다 스무배 이상의 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PR회사에 근무하는 한 파트너 임원은 개인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저항선에 대해 말단 직원의 1백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편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위원회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등록 법인 중 지난번 주총에서 CEO의 급여를 밝힌 회사가 한 곳도 없다. 대부분 총액 개념의 이사보수 한도에 대해 주총에서 승인을 받았을 뿐이다. 해당 기업의 투자자는 물론이고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들조차 자기들이 고용하고 있는 CEO의 몸값을 모르고 있는 셈이다. CEO의 급여를 밝히지 않는 것이 현행법이나 관련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CEO의 급여를 밝히지 않는 까닭은 뭘까? SK 홍보실의 한 간부는 손길승 회장의 연봉을 묻자 사생활이라고 잘라 말했다. 연봉제의 적용을 받는 직원들의 급여가 비밀이듯이 CEO의 급여 액수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들이 전문경영인 CEO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들의 급여를 ‘당근’으로 활용하고 있는 경향도 있다. 우리나라는 주식 분산이 잘 안 돼 있어 지배적인 대주주와 소액주주들 간에 이해 상충이 잦다. 이런 상황에서 대주주가 CEO를 자신의 영향권에 두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객관적인 기준 없이 편의적으로 CEO의 급여를 책정했다면 당연히 공개를 꺼릴 수밖에 없다.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대주주의 눈치를 살피고 스스로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는 CEO가 받는 고액의 연봉에 눈을 흘길 수밖에 없다. 이 경우 CEO 급여의 공개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를 수반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적 가치관도 CEO 연봉의 공개를 꺼리게 만들고 있다. 경영에 책임을 지는 CEO의 몸값은 일반 직원들의 급여와는 성격이 다른데도 그 연장선상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증권연구원 정윤모 수석연구원은 “많이 받으면 많이 받는 대로, 적게 받으면 적게 받는 대로 견제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CEO는 기업의 가치 상승에 기여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자리라는 인식이 낮습니다. 같은 CEO라고 해도 엄연히 실적이 다른데, 더 주려고 하면 마찰이 빚어지죠. 그런가 하면 아무런 기여를 못하고도 경쟁사 수준의 연봉을 받는 CEO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정의롭고, 공평합니까?” 성과와 연동되지 않은 CEO의 급여는 배분적 정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CEO의 급여를 밝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헤드헌팅 업체 유니코써어치의 유순신 대표는 전 산업에 걸쳐 오픈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인센티브 시스템이 먼저 정착돼야죠. 사회 분위기도 어느 정도 성숙돼야 하구요. 삼성처럼 직원들도 성과에 대해 인센티브 차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회사라면 공개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전사적으로 이런 시스템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CEO만 외국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해 급여를 지급한다면 직원들이 수긍하겠습니까?” CEO들이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도 인센티브 시스템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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