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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수위’까지 내려간 중국의 물가하락세

‘위험수위’까지 내려간 중국의 물가하락세

가전·통신기기 값이 '팍팍' 떨어지고 있어 디플레이션 위험 우려로 경제당국자들은 속이 안 편하다.
중국에서는 가전제품 값이 한달이 다르게 슬금슬금 떨어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가격인하가 가속되면서 위험 수준까지 내려갔다는 조짐이 나타나 당국자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지금 베이징(北京)에서는 8월 들어 갑자기 컬러TV 인하경쟁이 불붙어 21인치 값이 최저 5백 위안(元)까지 떨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돈으론 겨우 7만5천원 정도다. 베이징의 가전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궈메이(國美)와 다중(大中)·쑤닝(蘇寧) 3대 양판점 가운데 쑤닝이 선수를 쳐서 회심의 칼을 내뽑은 것이다. 쑤닝은 심지어 요새 중국인들에게 한창 잘 나가는 대형 프로젝션TV를 40% 할인 가격으로 내놓아 충격을 줬다. 베이징의 9월부터 10월까지는 한국처럼 가장 날씨가 좋고 새 아파트 입주가 활발할 때다. 새 집에 갈 때는 으레 큰 TV·세탁기·냉장고를 새로 장만하는 습성도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이런 황금계절을 앞두고 잘 나가는 프로젝션TV 가격을 내렸으니 꽤나 파격적이다. 이에 자극받아 소니·도시바·샤프·필립스·파나소닉 같은 유명 외국회사뿐 아니라 한국의 삼성·LG 등까지 최고 10% 할인에 나서 바야흐로 ‘전 메이커·전 품종’으로 가격전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벌써 몇 년째 베이징 사람들은 성수기에 오히려 싸지는 에어컨 값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올해도 예외없이 중국의 에어컨 업체들은 치열한 가격전쟁을 벌였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가장 더울 때인 7∼8월을 기다려 가장 싸게 에어컨을 샀다. 소비자들로서야 신나는 일이다. 반면 중국의 경제당국자들은 속이 안 편하다. 아무리 해도 경제가 좀처럼 뜨지 않는데다 물가하락으로 디플레이션으로 갈 위험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올 1∼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에 비해 또 0.8% 떨어졌다. 올 상반기 의복 값은 작년보다 2.2% 내렸고 가전품 값은 평균 6% 내렸다. 핸드폰 등 통신기기 제품은 하락폭이 유난히 커 작년 동기 대비 16.5% 떨어졌다. 작년에 1천 위안이 넘던 핸드폰이 7백 위안에 팔리고 있다. 이쯤 되니 소비자들은 더 떨어진다며 구매를 늦추는 게 보통이다. 상품출하가격지수는 연 13개월째 하락 중이어서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가격하락이 너무 오래 계속되는 바람에 기업들의 이윤이 눈에 띄게 줄어 투자감소→신상품 감소→공장가동 감소→고용 감소의 악순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해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향후 금융정책 방향을 놓고 고민 중이다. 인민은행측은 앞으로 이런 물가하락세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통화량을 늘리자니 가뜩이나 많은 금융권의 부실채권이나 비효율적 중복투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섣불리 정책기조를 못 바꾸고 있다. 물론 중국의 물가가 하락 일변도만은 아니다. 오히려 작년에 비해 교육·오락·문화서비스 비용은 올랐다. 유독 제조업만 죽을 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상위 20% 고소득층은 전체 국민저축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즉, 이들이 움직여야 내수가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최근 경제시보(經濟時報)가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베이징·광둥(廣東)·저장(浙江)·장시(江西)성의 고소득층을 조사한 결과 부유층의 소득과 소비경향이 반비례로 움직이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한마디로 최근 중국의 고민은 돈 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팍팍 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에 가는 중국의 관광객들은 대부분 중국에선 상당한 부유층들이다. 지난 월드컵 때 한국에 갔다온 한 사람을 만났더니 “솔직히 서울에서 삼성핸드폰 빼고는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삼성핸드폰도 통신방식이 달라 못 샀지만…” 하고 말했다. 웬만한 가전제품은 최고급 외제만 쓰는 사람들이니 한국에서 살 만한 게 없었다는 그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하물며 중국에서 살만한 게 있을 리 없다. 베이징의 경제계에선 지금 부유층의 돈을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최대의 화두라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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