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판단 책임을 결과로만 따져서야…
경영 판단 책임을 결과로만 따져서야…
제일·조흥 등 6개 은행이 예금보험공사가 부실 문책 대상으로 통보한 전·현직 임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들어갔다. 손해배상청구소송 규모만도 1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소송이다. 기본적으로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부실 여신과 횡령 등이다. 소송을 제기한 은행들은 결국 주주들을 대표하고 있다. 따라서 전·현직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주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주주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투자수익률의 극대화일 것이다. 투자자 전체의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경영자들이 위험과는 관계없이 기대수익율이 가장 높은 사업들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좋다. 위험을 분산해야 하는 것은 투자자 자신들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다른 위험을 안고 있다. 때문에 서로 상반되는 위험을 안고 있는 여러 기업의 주식을 소유한다면 개별 기업들의 위험은 투자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경영자들은 위험과는 상관없이 기대수익률이 가장 높은 사업을 선택하고, 투자자들은 다양한 기업들의 주식을 분산 소유함으로서 스스로 위험을 상쇄시키는 것이 투자자들 전체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번 손해배상 소송이 은행의 기대수익률 극대화에 도움이 될까. 만약 소송이 실패한 경영판단, 즉 결과적으로 부실해진 여신에 대한 책임 추궁이라면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은행 경영자들에게 판단 실패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다면 경영자들은 ‘기대수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안전의 극대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주 자신들에게 손해다. 위험은 어차피 상쇄되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는 반면 수익률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경영자의 재량권을 무한정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경영자들이 회사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빼돌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경영자들이 사기나 횡령·배임 등 회사의 이익을 축내어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 이번 소송에서도 횡령 부분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영판단’이라면 비록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결정, 즉 부실여신을 만들어낸 행위일지라도 법원은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 낫다. 어떤 결정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그것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사업의 성공 여부는 경영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공한 투자에 대해서는 잘한 결정이라고 칭찬하고, 실패한 투자에 대해서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법관들도 인간인 한 그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대표소송의 본고장인 미국의 법관들은 이미 그같은 자신들의 약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의 주주대표소송제도 아래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이라는 것이 철저히 지켜진다. 비록 실패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경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희생시킨 경우가 아닌 한 법원이 스스로 해당 사건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명예뿐만 아니라 투자자들 전체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영자에게 대출자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보다 더 ‘경영판단적’인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문제가 되고 있는 경영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은행의 이익을 희생시켰다는 증거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상태에서 경영진들에게 부실 여신에 따른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은 앞으로도 은행의 경영판단 행위가 법원의 판결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경영판단에 대한 사후적 책임추궁 외에도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거 은행장의 인사와 은행의 경영에 대해서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깊이 관여해 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거액의 대출이 은행장이나 임원들만의 재량으로 이루어졌을까? 그들로부터의 대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은행장의 자리가 위태로웠던 것은 아닐까? 또 그 압력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은행 자체에 대해서도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의 제재가 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소송은 전직 경영진들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해야 할지 모른다. 즉 국가가 은행에 대해서 배상을 하고 그 대신 국가는 문제의 부실 대출에 음으로 양으로 관련되었던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더 올바른 수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소송은 문제의 본질을 제공한 사람들은 그대로 둔 채 어쩌면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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