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헬기군단이 몰려온다
다국적 헬기군단이 몰려온다
한국 헬기개발 사업에 군침을 흘리던 다국적 헬기 메이커들의 수주전이 시작됐다. 보잉 ·유로콥터 ·벨 ·아구스타 웨스트랜드 ·시코르스키의 5파전이 점쳐진다.
이건희 삼성 회장에겐 자동차 만큼이나 만들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헬리콥터’다. 삼성항공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실제로 1997년 미국 헬기업체인 벨과 제휴해 최초의 국산 헬기(SB427)를 만들면서 꿈은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헬기는 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이 회장의 기대를 저버렸다. 눈물을 삼키고 항공사업부문을 전문화 기업으로 지정 ·설립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넘겨야 했다.
헬기에 미련이 있는 기업은 삼성만이 아니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현대 ·대우에게도 헬기개발 사업은 ‘그림의 떡’처럼 도무지 잡히지 않는 꿈이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헬기는 단 한 대도 없다. 전투헬기는 100% 수입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다국적 헬기 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헬기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시장을 공략해왔다. 군수 쪽에선 미국의 보잉과 시코르스키가, 민수 쪽에선 유로콥터와 러시아 코모프가 주도적으로 헬기를 수출했다. 영국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엔진과 동체를 납품했고, 벨은 제작 기술을 팔았다.
올 하반기 한국에선 사상 최대의 헬기 수주전이 시작될 전망이다. 다목적 헬기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KMH(Korea Multi-purpose Helicopter) ’사업이나 대규모 공격헬기를 도입하는 ‘AH-X(Attack Helicopter, X는 사업자 미정을 뜻함) ’사업 중 하나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KMH 사업은 현재 국방부가 육군의 노후된 헬기를 교체하기 위해 수송 ·정찰 ·공격 등 여러 용도의 헬기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자그마치 6조6,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KMH 사업을 추진해온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규모면에서 지난해 차기전투기(FX) 사업(4조2,000억원)보다도 크다”며 “민수 쪽으로 사업이 확장될 경우 20조원을 넘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KMH 사업은 그 동안 예산문제로 난항을 겪어오다 현재 기획예산처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사업성 검토를 맡긴 상태다. KDI와 국방과학연구원(ADD) 관계자들은 지난 4월말 극비리에 미국과 유럽 등지를 돌며 다국적 헬기업체들의 생산라인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 KMH 사업 결정은 막바지 단계에 있다”며 “늦어도 7월 중 어떤 식으로든 사업계획이 나올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KMH 사업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역시 적지 않은 예산 때문이다. 이 경우 헬기 개발 프로젝트는 AH-X 사업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AH-X 사업은 2조2,000억원 규모의 공격헬기를 직구매하는 방안으로 FX 사업의 축소판이 재현될 수도 있다. 헬기사업이 KMH와 AH-X 중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힐 지에 대해선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다. 그러나 5월초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무기획득 사업계획에 다목적헬기 개발건이 포함됐고, 공격헬기 도입은 빠졌다. KMH 사업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그 동안 기회를 엿보던 다국적 헬기업체들은 벌써부터 출격 채비를 갖췄다. 보잉은 지난 2월 공격헬기인 아파치 동체를 국내 업체로부터 납품받는 선심을 보였고, 유로콥터 회장은 5월말 한국을 방문한다. 영국업체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5월초 영국 방산수출청장을 앞세워 방한해 KMH 사업에 자신들이 참여해야 함을 역설했다. 미국 업체인 벨과 시코르스키도 비공식 라인을 통해 참여의사를 적극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한국 헬기사업 수주는 5파전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KMH 사업에 누구보다 관심을 보이는 파이터는 세계 2위 항공기업인 EADS의 자회사 유로콥터다. 이미 지난해부터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전략을 세워놓고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느라 분주한 눈치다. 유로콥터는 최근 프랑스 본사 공장을 방문한 KDI ·ADD 관계자들에게 자사의 헬기 생산라인을 보여주며 적극적인 손짓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KMH에 대한 강한 참여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5월 말로 예정된 파브리스 브레지에 유로콥터 사장의 방한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는 방한 기간 중 정부 고위직 인사들과 만나 긴밀한 협조를 구하는 등 적극적인 세일즈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유로콥터는 세계 헬기산업의 종주권을 쥐고 있다고 자부한다. 민 ·군수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기종을 보유한 헬기 메이커임을 줄곧 주장해 왔다. 실제로 유로콥터는 수송헬기 도핀에서 수송 및 해군용 헬기 NH90, 2인승 다목적 공격헬기 타이거에 이르기까지 헬기 종류를 총망라한다. 민수시장에서는 단연 세계 1위다. 대표주자로 내세우는 타이거는 전천후 야간비행 능력과 대전차·공대공 미사일과 로켓포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유로콥터는 한국시장과 인연이 깊다.
현재 국내 경찰서 ·소방서 기업 등에 사용되는 헬기의 40%가 유로콥터 제품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탔던 전용헬기도 유로콥터가 생산한 ‘슈퍼푸마’다. 유로콥터는 2000년 이미 한국 육군에 수송·정찰 헬기인 BO-105 12대를 KAI에게 면허생산(조립기술이전 완료)을 맡겨 납품했다. 유로콥터는 무엇보다 KMH 사업에서 기술이전을 미끼로 던지고 있다. 다양한 기종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다목적 헬기사업에 적격자라는 논리다. 하지만 KMH 사업이 무산되고 AH-X 사업으로 바뀔 경우, 유로콥터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 보잉의 아파치 때문이다.
유로콥터는 96년 AH-X 사업자 선정 때도 공격헬기 ‘타이거’를 들고 보잉 ·카모프 경쟁했었다. AH-X 사업이 채택되더라도 유로콥터가 노리는 틈새는 있다. 공격헬기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정찰헬기를 이미 한국군이 채택한데다, KAI가 조립생산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적어도 정찰헬기 만큼은 보잉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찰헬기뿐 아니라 현재 노후된 맥도널 더글러스의 경공격헬기 500MD의 대체 기종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차기전투기 사업을 따낸 보잉은 이번 헬기사업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현재 보잉은 다목적 헬기를 개발하는 KMH 사업보다는 공격헬기를 직도입하는 AH-X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체 무게 7,500~1만파운드 급 헬기를 제작하는 KMH 사업에서 공격헬기 아파치(무게 1만5,000파운드)는 배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AH-X사업이 채택되면 아파치를 대량으로 팔 수 있다.
지난 2월 길형보 KAI 사장은 미국 보잉 본사 방문 후 아파치(AH-64)의 동체를 제작해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보잉코리아 관계자는 “이것만 봐도 우리는 한국 헬기산업의 동반자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보잉은 KAI에 1,100대의 아파치 동체납품권을 줬다. 현재 미군이 보유한 아파치는 700대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앞으로 10년간 생산목표도 1,000대 정도다. 일각에선 보잉의 약속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90년대 초 국내에서 AH-X 사업이 처음 제기됐을 때 보잉은 아파치를 대량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96년 공격헬기 도입을 목표로 제시된 사업계획에 보잉(아파치) ·유로콥터(타이거) ·러시아 카모프(카모프KA-52) 3개사가 응찰 의사를 보였고 군의 내부에선 아파치가 가장 후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보잉은 아파치를 통한 AH-X 사업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군사전문가 A씨는 “당시 예산문제로 난항을 겪은데다 외환위기와 햇볕정책의 여파로 아파치를 들여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보잉은 1대당 수천만달러를 호가하는 아파치를 전세계 시장에 1,100대나 수출했다. 주한미군도 현재 72대의 아파치를 보유하고 있다. 아파치는 지난 걸프전에서 2개 대대(40대)로 이라크군 전차 20개 대대(700여대)를 격파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은 한 동안 이라크전쟁에서 농부가 쏜 소총에 아파치가 추락했다는 소문을 진화하느라 애썼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뿐 아니라 보잉에게도 이득을 안겨줬다. 이라크 전쟁이 사실상 끝난 4월 중순 부시의 대국민 발표가 있던 날, 단상 뒤에 ‘보잉’ 로고가 크게 눈에 띄었다.
이어 부시는 휴양차 고향으로 가던 중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보잉 공장에 들렀다. 이 공장에선 아파치가 생산된다. 부시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부시는 FX사업 때 한국에 왔었다. 국내 군사전문가들은 보잉이 이번 헬기사업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잉 역시 주한미군이 아파치를 쓰고 있는 만큼 한·미 공동작전수행을 위해 아파치를 도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보잉은 지난해 FX 사업에서 프랑스 전투기 회사인 라팔을 따돌리고 F-15K를 선정시킨 전력을 갖고 있다. 당시 라팔은 가격과 기술이전에서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었다. 보잉은 그 동안 한국 군수시장 점유율에서 록히드마틴에게 뒤져 왔다. F-15K 수주에 이어 아파치까지 수출하게 되면 보잉은 한국 군수시장의 톱 메이커로 자리잡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아파치가 배제되는 KMH 사업이 확정된다 해도 보잉이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보잉에겐 히든 카드가 있다. 기체 무게 8,800파운드로 KMH 모델에 부합하는 정찰 ·공격헬기 ‘코만치’를 들고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코만치가 개발 마무리단계인 만큼 한국에 최신 기술을 이전해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보잉은 수송헬기에서도 한국업체와 공조한 경험이 있다.
2000년 올림픽대교에 조형물을 설치하다 추락하기도 했던 보잉의 수송헬기 CH-47을 대한항공이 조립 ·생산했다. 유로콥터나 보잉 못지 않게 KMH 사업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업체가 영국의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다. 이탈리아 아구스타와 영국 웨스트랜드의 합병된 헬기 메이커다. 합병 전 웨스트랜드는 한국 해군에 대잠수함 공격헬기 링스를 납품했다. 1991~99년 사이 22대가 한국에 들어왔다.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유로콥터의 수송 ·정찰 헬기인 BO-105와 경쟁하다 떨어진 경험이 있다. 당시 바퀴 달린 헬기를 들고 나와 한국지형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세계 2위의 방위장비 수출국이다. 지난 5월초 영국 방산수출청장과 아구스타 웨스트랜드 임원들이 방한해 한 ·영방산업체 세미나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도 여럿 참석했다. 세미나는 KMH 사업에 영국업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경우 한국이 어떤 혜택을 받을 것인지를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무엇보다 자사의 협력업체들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헬기 분야에서 50년간 롤스로이스 등 엔진 ·부품 업체들과 탄탄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만큼 한국 정부 ·군대 ·기업의 요구에 부합하는 한국형 다목적 헬기 사업을 유연하게 지원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이 세미나에서 앨런 가우드 영국방산수출청장은 “영국은 한국 방산업계 ·해군과 파트너십이 있다”며 “이전의 단순한 공급자-고객 관계가 아닌 KMH 사업을 통해 특정 장비개발에서 완전한 협력관계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가우드 청장은 이어 “KMH 사업은 헬기를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해외시장 개척에도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이전과 시장을 모두 주겠다는 얘기다. 이들은 세미나를 마치고 KAI 직원들과 친선축구경기를 벌이고 돌아갔다.
미국 헬기업체인 시코르스키도 만만찮은 후보다. 헬기개발에 남다른 욕심을 냈던 대한항공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한국 육군의 주력 수송헬기인 UH-60을 대한항공이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했다. 2001년 열린 서울에어쇼에서 대한항공과 함께 한국형 헬기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유야무야된 상태다. 이유는 한국 방위산업에서 KAI가 전문화 업체로 지정돼 있어 대한항공은 사실상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코르스키는 요즘 KAI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정대철 의원의 대표발의로 전문화 업체 지정에 대한 법률개정이 상정돼 있다.
법 개정에 따라 대한항공의 입지가 달라지면 시코르스키의 행보가 바뀔 수도 있다. 최신예 전투헬기로 불리는 코만치도 보잉과 시코르스키가 합작해 개발하는 기종이다. 따라서 KMH 사업을 보잉이 따낼 경우 시코르스키도 동참할 여지가 있다. 현재 시코르스키의 UH-60과 같은 계열인 VH-60이 노무현 대통령의 전용헬기로 쓰이고 있다. 미국 텍스트론 그룹의 자회사인 벨은 KAI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헬기업체다. 벨은 삼성테크윈과 최초의 국산 수송헬기인 SB427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후보다. 현재 수송헬기인 UH-1과 공격헬기인 AH-1이 한국군에서 주력으로 운용 중이다. 벨 관계자는 “수송헬기부터 공격헬기까지 모두 만들겠다는 KMH 사업과 같은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러시아 헬기업체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카모프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 경협 당시 차관을 현물로 상환하는 ‘백곰사업’에 따라 카모프 헬기를 대량으로 들여왔다. 카모프는 현재 산림청 산불진화용 헬기로 쓰이고 있다. KMH 사업이 확정되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곳은 KAI가 될 공산이 크다. 현재 전문화 기업으로 지정된 만큼 모든 사업의 주도권을 쥘 것이기 때문이다. KAI는 97년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3사의 항공사업부문을 합쳐 설립됐다. 95년 당시 삼성항공이 97년 벨과 공동개발한 SB427을 현재 100여대나 제작했다. SB427은 2000년 중국에 수출되면서 한국도 항공기 완제기 수출국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KAI 관계자는 “SB427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국산 헬리콥터”라고 말한다. 길 사장은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우주 항공업체인 KAI 사장이 됐다. 정부의 헬기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헬기는 공군이 아닌 육군의 무기다. 대한항공은 국내에서 헬기제조 기술을 가장 많이 확보한 업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98년 국내 항공사업이 KAI로 통합될 때 대한항공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헬기 제작 노하우를 독자적으로 지키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KAI가 이번 헬기사업에서 독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볼멘 소리를 한다. 경전투헬기 500MD에서 대형수송헬기 CH-47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헬기를 면허 생산한 대한항공의 경험이 사장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최근 AH-X 사업을 일부 반영한 다목적 헬기 사업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헬기산업 발전을 위해선 공격헬기를 도입하는 AH-X 사업보다 개발 프로젝트인 KMH 사업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한국이 대형 공격헬기를 만드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한 무기산업 전문가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 ‘포니’에서 출발한 한국 자동차 산업은 현재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며 “헬기도 현재 주수출품인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와함께 KMH 사업은 자주국방 ·미군철수 대안 ·통일후 등의 문제 해결뿐 아니라 기간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헬기를 포함한 항공 산업은 개발초기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내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개발비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9번 째로 많은 방위비를 지출한다. 이는 훌륭한 내수 시장이 된다. 또 내수용 헬기 개발을 넘어 수출까지 내다봐야 한다. 전투헬기 조종사 출신인 조성균 썬에어로시스 수석연구원은 “세계 헬기 산업은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판로확보를 위해 여러 업체들이 합작으로 신기종을 개발하는 추세”라며 “보다 많은 기술이전을 받고 개발비 분담과 공동마케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선진 헬기 메이커를 파트너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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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에겐 자동차 만큼이나 만들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헬리콥터’다. 삼성항공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실제로 1997년 미국 헬기업체인 벨과 제휴해 최초의 국산 헬기(SB427)를 만들면서 꿈은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헬기는 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이 회장의 기대를 저버렸다. 눈물을 삼키고 항공사업부문을 전문화 기업으로 지정 ·설립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넘겨야 했다.
헬기에 미련이 있는 기업은 삼성만이 아니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현대 ·대우에게도 헬기개발 사업은 ‘그림의 떡’처럼 도무지 잡히지 않는 꿈이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헬기는 단 한 대도 없다. 전투헬기는 100% 수입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다국적 헬기 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헬기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시장을 공략해왔다. 군수 쪽에선 미국의 보잉과 시코르스키가, 민수 쪽에선 유로콥터와 러시아 코모프가 주도적으로 헬기를 수출했다. 영국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엔진과 동체를 납품했고, 벨은 제작 기술을 팔았다.
올 하반기 한국에선 사상 최대의 헬기 수주전이 시작될 전망이다. 다목적 헬기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KMH(Korea Multi-purpose Helicopter) ’사업이나 대규모 공격헬기를 도입하는 ‘AH-X(Attack Helicopter, X는 사업자 미정을 뜻함) ’사업 중 하나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KMH 사업은 현재 국방부가 육군의 노후된 헬기를 교체하기 위해 수송 ·정찰 ·공격 등 여러 용도의 헬기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자그마치 6조6,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KMH 사업을 추진해온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규모면에서 지난해 차기전투기(FX) 사업(4조2,000억원)보다도 크다”며 “민수 쪽으로 사업이 확장될 경우 20조원을 넘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KMH 사업은 그 동안 예산문제로 난항을 겪어오다 현재 기획예산처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사업성 검토를 맡긴 상태다. KDI와 국방과학연구원(ADD) 관계자들은 지난 4월말 극비리에 미국과 유럽 등지를 돌며 다국적 헬기업체들의 생산라인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 KMH 사업 결정은 막바지 단계에 있다”며 “늦어도 7월 중 어떤 식으로든 사업계획이 나올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KMH 사업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역시 적지 않은 예산 때문이다. 이 경우 헬기 개발 프로젝트는 AH-X 사업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AH-X 사업은 2조2,000억원 규모의 공격헬기를 직구매하는 방안으로 FX 사업의 축소판이 재현될 수도 있다. 헬기사업이 KMH와 AH-X 중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힐 지에 대해선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다. 그러나 5월초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무기획득 사업계획에 다목적헬기 개발건이 포함됐고, 공격헬기 도입은 빠졌다. KMH 사업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그 동안 기회를 엿보던 다국적 헬기업체들은 벌써부터 출격 채비를 갖췄다. 보잉은 지난 2월 공격헬기인 아파치 동체를 국내 업체로부터 납품받는 선심을 보였고, 유로콥터 회장은 5월말 한국을 방문한다. 영국업체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5월초 영국 방산수출청장을 앞세워 방한해 KMH 사업에 자신들이 참여해야 함을 역설했다. 미국 업체인 벨과 시코르스키도 비공식 라인을 통해 참여의사를 적극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한국 헬기사업 수주는 5파전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KMH 사업에 누구보다 관심을 보이는 파이터는 세계 2위 항공기업인 EADS의 자회사 유로콥터다. 이미 지난해부터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전략을 세워놓고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느라 분주한 눈치다. 유로콥터는 최근 프랑스 본사 공장을 방문한 KDI ·ADD 관계자들에게 자사의 헬기 생산라인을 보여주며 적극적인 손짓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KMH에 대한 강한 참여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5월 말로 예정된 파브리스 브레지에 유로콥터 사장의 방한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는 방한 기간 중 정부 고위직 인사들과 만나 긴밀한 협조를 구하는 등 적극적인 세일즈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유로콥터는 세계 헬기산업의 종주권을 쥐고 있다고 자부한다. 민 ·군수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기종을 보유한 헬기 메이커임을 줄곧 주장해 왔다. 실제로 유로콥터는 수송헬기 도핀에서 수송 및 해군용 헬기 NH90, 2인승 다목적 공격헬기 타이거에 이르기까지 헬기 종류를 총망라한다. 민수시장에서는 단연 세계 1위다. 대표주자로 내세우는 타이거는 전천후 야간비행 능력과 대전차·공대공 미사일과 로켓포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유로콥터는 한국시장과 인연이 깊다.
현재 국내 경찰서 ·소방서 기업 등에 사용되는 헬기의 40%가 유로콥터 제품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탔던 전용헬기도 유로콥터가 생산한 ‘슈퍼푸마’다. 유로콥터는 2000년 이미 한국 육군에 수송·정찰 헬기인 BO-105 12대를 KAI에게 면허생산(조립기술이전 완료)을 맡겨 납품했다. 유로콥터는 무엇보다 KMH 사업에서 기술이전을 미끼로 던지고 있다. 다양한 기종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다목적 헬기사업에 적격자라는 논리다. 하지만 KMH 사업이 무산되고 AH-X 사업으로 바뀔 경우, 유로콥터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 보잉의 아파치 때문이다.
유로콥터는 96년 AH-X 사업자 선정 때도 공격헬기 ‘타이거’를 들고 보잉 ·카모프 경쟁했었다. AH-X 사업이 채택되더라도 유로콥터가 노리는 틈새는 있다. 공격헬기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정찰헬기를 이미 한국군이 채택한데다, KAI가 조립생산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적어도 정찰헬기 만큼은 보잉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찰헬기뿐 아니라 현재 노후된 맥도널 더글러스의 경공격헬기 500MD의 대체 기종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차기전투기 사업을 따낸 보잉은 이번 헬기사업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현재 보잉은 다목적 헬기를 개발하는 KMH 사업보다는 공격헬기를 직도입하는 AH-X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체 무게 7,500~1만파운드 급 헬기를 제작하는 KMH 사업에서 공격헬기 아파치(무게 1만5,000파운드)는 배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AH-X사업이 채택되면 아파치를 대량으로 팔 수 있다.
지난 2월 길형보 KAI 사장은 미국 보잉 본사 방문 후 아파치(AH-64)의 동체를 제작해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보잉코리아 관계자는 “이것만 봐도 우리는 한국 헬기산업의 동반자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보잉은 KAI에 1,100대의 아파치 동체납품권을 줬다. 현재 미군이 보유한 아파치는 700대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앞으로 10년간 생산목표도 1,000대 정도다. 일각에선 보잉의 약속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90년대 초 국내에서 AH-X 사업이 처음 제기됐을 때 보잉은 아파치를 대량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96년 공격헬기 도입을 목표로 제시된 사업계획에 보잉(아파치) ·유로콥터(타이거) ·러시아 카모프(카모프KA-52) 3개사가 응찰 의사를 보였고 군의 내부에선 아파치가 가장 후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보잉은 아파치를 통한 AH-X 사업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군사전문가 A씨는 “당시 예산문제로 난항을 겪은데다 외환위기와 햇볕정책의 여파로 아파치를 들여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보잉은 1대당 수천만달러를 호가하는 아파치를 전세계 시장에 1,100대나 수출했다. 주한미군도 현재 72대의 아파치를 보유하고 있다. 아파치는 지난 걸프전에서 2개 대대(40대)로 이라크군 전차 20개 대대(700여대)를 격파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은 한 동안 이라크전쟁에서 농부가 쏜 소총에 아파치가 추락했다는 소문을 진화하느라 애썼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뿐 아니라 보잉에게도 이득을 안겨줬다. 이라크 전쟁이 사실상 끝난 4월 중순 부시의 대국민 발표가 있던 날, 단상 뒤에 ‘보잉’ 로고가 크게 눈에 띄었다.
이어 부시는 휴양차 고향으로 가던 중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보잉 공장에 들렀다. 이 공장에선 아파치가 생산된다. 부시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부시는 FX사업 때 한국에 왔었다. 국내 군사전문가들은 보잉이 이번 헬기사업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잉 역시 주한미군이 아파치를 쓰고 있는 만큼 한·미 공동작전수행을 위해 아파치를 도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보잉은 지난해 FX 사업에서 프랑스 전투기 회사인 라팔을 따돌리고 F-15K를 선정시킨 전력을 갖고 있다. 당시 라팔은 가격과 기술이전에서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었다. 보잉은 그 동안 한국 군수시장 점유율에서 록히드마틴에게 뒤져 왔다. F-15K 수주에 이어 아파치까지 수출하게 되면 보잉은 한국 군수시장의 톱 메이커로 자리잡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아파치가 배제되는 KMH 사업이 확정된다 해도 보잉이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보잉에겐 히든 카드가 있다. 기체 무게 8,800파운드로 KMH 모델에 부합하는 정찰 ·공격헬기 ‘코만치’를 들고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코만치가 개발 마무리단계인 만큼 한국에 최신 기술을 이전해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보잉은 수송헬기에서도 한국업체와 공조한 경험이 있다.
2000년 올림픽대교에 조형물을 설치하다 추락하기도 했던 보잉의 수송헬기 CH-47을 대한항공이 조립 ·생산했다. 유로콥터나 보잉 못지 않게 KMH 사업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업체가 영국의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다. 이탈리아 아구스타와 영국 웨스트랜드의 합병된 헬기 메이커다. 합병 전 웨스트랜드는 한국 해군에 대잠수함 공격헬기 링스를 납품했다. 1991~99년 사이 22대가 한국에 들어왔다.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유로콥터의 수송 ·정찰 헬기인 BO-105와 경쟁하다 떨어진 경험이 있다. 당시 바퀴 달린 헬기를 들고 나와 한국지형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세계 2위의 방위장비 수출국이다. 지난 5월초 영국 방산수출청장과 아구스타 웨스트랜드 임원들이 방한해 한 ·영방산업체 세미나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도 여럿 참석했다. 세미나는 KMH 사업에 영국업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경우 한국이 어떤 혜택을 받을 것인지를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는 무엇보다 자사의 협력업체들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헬기 분야에서 50년간 롤스로이스 등 엔진 ·부품 업체들과 탄탄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만큼 한국 정부 ·군대 ·기업의 요구에 부합하는 한국형 다목적 헬기 사업을 유연하게 지원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이 세미나에서 앨런 가우드 영국방산수출청장은 “영국은 한국 방산업계 ·해군과 파트너십이 있다”며 “이전의 단순한 공급자-고객 관계가 아닌 KMH 사업을 통해 특정 장비개발에서 완전한 협력관계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가우드 청장은 이어 “KMH 사업은 헬기를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해외시장 개척에도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이전과 시장을 모두 주겠다는 얘기다. 이들은 세미나를 마치고 KAI 직원들과 친선축구경기를 벌이고 돌아갔다.
미국 헬기업체인 시코르스키도 만만찮은 후보다. 헬기개발에 남다른 욕심을 냈던 대한항공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한국 육군의 주력 수송헬기인 UH-60을 대한항공이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했다. 2001년 열린 서울에어쇼에서 대한항공과 함께 한국형 헬기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유야무야된 상태다. 이유는 한국 방위산업에서 KAI가 전문화 업체로 지정돼 있어 대한항공은 사실상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코르스키는 요즘 KAI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정대철 의원의 대표발의로 전문화 업체 지정에 대한 법률개정이 상정돼 있다.
법 개정에 따라 대한항공의 입지가 달라지면 시코르스키의 행보가 바뀔 수도 있다. 최신예 전투헬기로 불리는 코만치도 보잉과 시코르스키가 합작해 개발하는 기종이다. 따라서 KMH 사업을 보잉이 따낼 경우 시코르스키도 동참할 여지가 있다. 현재 시코르스키의 UH-60과 같은 계열인 VH-60이 노무현 대통령의 전용헬기로 쓰이고 있다. 미국 텍스트론 그룹의 자회사인 벨은 KAI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헬기업체다. 벨은 삼성테크윈과 최초의 국산 수송헬기인 SB427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후보다. 현재 수송헬기인 UH-1과 공격헬기인 AH-1이 한국군에서 주력으로 운용 중이다. 벨 관계자는 “수송헬기부터 공격헬기까지 모두 만들겠다는 KMH 사업과 같은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러시아 헬기업체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카모프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 경협 당시 차관을 현물로 상환하는 ‘백곰사업’에 따라 카모프 헬기를 대량으로 들여왔다. 카모프는 현재 산림청 산불진화용 헬기로 쓰이고 있다. KMH 사업이 확정되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곳은 KAI가 될 공산이 크다. 현재 전문화 기업으로 지정된 만큼 모든 사업의 주도권을 쥘 것이기 때문이다. KAI는 97년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3사의 항공사업부문을 합쳐 설립됐다. 95년 당시 삼성항공이 97년 벨과 공동개발한 SB427을 현재 100여대나 제작했다. SB427은 2000년 중국에 수출되면서 한국도 항공기 완제기 수출국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KAI 관계자는 “SB427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국산 헬리콥터”라고 말한다. 길 사장은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우주 항공업체인 KAI 사장이 됐다. 정부의 헬기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헬기는 공군이 아닌 육군의 무기다. 대한항공은 국내에서 헬기제조 기술을 가장 많이 확보한 업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98년 국내 항공사업이 KAI로 통합될 때 대한항공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헬기 제작 노하우를 독자적으로 지키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KAI가 이번 헬기사업에서 독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볼멘 소리를 한다. 경전투헬기 500MD에서 대형수송헬기 CH-47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헬기를 면허 생산한 대한항공의 경험이 사장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최근 AH-X 사업을 일부 반영한 다목적 헬기 사업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헬기산업 발전을 위해선 공격헬기를 도입하는 AH-X 사업보다 개발 프로젝트인 KMH 사업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한국이 대형 공격헬기를 만드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한 무기산업 전문가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 ‘포니’에서 출발한 한국 자동차 산업은 현재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며 “헬기도 현재 주수출품인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와함께 KMH 사업은 자주국방 ·미군철수 대안 ·통일후 등의 문제 해결뿐 아니라 기간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헬기를 포함한 항공 산업은 개발초기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내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개발비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9번 째로 많은 방위비를 지출한다. 이는 훌륭한 내수 시장이 된다. 또 내수용 헬기 개발을 넘어 수출까지 내다봐야 한다. 전투헬기 조종사 출신인 조성균 썬에어로시스 수석연구원은 “세계 헬기 산업은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판로확보를 위해 여러 업체들이 합작으로 신기종을 개발하는 추세”라며 “보다 많은 기술이전을 받고 개발비 분담과 공동마케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선진 헬기 메이커를 파트너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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