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장기 절세 막고 국장 유도?”…ISA 개편에 서학개미 ‘부글’
- [서학개미의 분노] ①
S&P500도 안 된다면…서학개미 반발 커진다
ETF 자금, 오히려 미국으로 '쏠림'..."확장세 유지"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정부가 국내 자본시장으로 장기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을 추진하면서 투자자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국내 투자에 세제 혜택을 강화한 ‘생산적 ISA’를 신설하는 동시에 기존 일반 ISA의 장기 운용 혜택까지 손질하기로 하면서다. 특히 ISA를 통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100 등 해외지수에 장기 투자해온 이른바 ‘서학개미’들은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 기존 가입자의 절세 혜택과 투자 선택권까지 제한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정부 정책과 달리 최근 시장 자금은 오히려 해외로 향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머무르자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는 국내주식형보다 해외주식형 상품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세제 혜택만으로 투자자의 자산배분을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생산적 ISA 만들면서 일반 ISA는 혜택 축소
정부가 내놓은 ISA 개편안의 핵심은 국내 주식과 국내 주식형 ETF, 국민성장펀드 등에 투자하는 생산적 ISA를 신설하는 것이다. 생산적 ISA의 투자수익에는 일반 ISA보다 강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청년형에는 납입액의 10%를 소득공제하는 방안도 담겼다.
일반 ISA와 생산적 ISA의 중복 가입도 허용한다. 이에 따라 연간 납입한도는 기존 2000만원에서 최대 4000만원으로, 총 납입한도는 일반 ISA 1억원과 생산적 ISA 2억원을 합쳐 최대 3억원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일반 ISA다. 정부는 2020년 세제개편을 통해 허용했던 무제한 만기 연장을 없애고 납입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다. 기존에는 계좌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과세이연과 손익통산 효과를 누릴 수 있었지만 개편안대로라면 일정 기간마다 계좌를 정산해야 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생산적 ISA에 추가 혜택을 주는 것과 별개로 기존 ISA의 장기 운용 혜택까지 줄일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국내 투자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당근’을 넘어 해외투자의 상대적인 절세 매력을 낮추는 ‘채찍’까지 동원했다는 것이다.
금투세 폐지 후 ISA는 ‘해외투자 절세계좌’로
정부가 일반 ISA까지 손보려는 배경에는 ISA의 투자 구조가 당초 제도 취지와 달라졌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ISA에서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이나 ETF를 직접 살 수 없지만 국내 자산운용사가 한국거래소에 상장한 S&P500·나스닥100 등 해외지수 ETF에는 투자할 수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ISA에서 국내 상장 해외 ETF를 장기간 적립하고 국내주식은 일반계좌에서 거래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절세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중개형 ISA에서 해외투자 ETF 비중은 2021년 말 평가액 기준 4%에서 2024년 말 31.7%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11월에는 33.5%를 기록하며 국내주식(33.4%)을 앞서기도 했다. 금융투자협회 ISA 다모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에도 국내 상장 해외 ETF 운용자산 비중은 약 23%로 국내주식(약 22%)을 웃돌았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가 이런 현상을 가속했다는 분석이다. ISA 혜택 확대는 당초 국내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추진됐다. 그러나 금투세가 폐지되면서 일반계좌에서도 국내주식 양도차익이 원칙적으로 비과세인 반면 국내 상장 해외주식형 ETF에는 ISA의 비과세·저율 분리과세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됐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관련해서 “일반형은 저율 분리과세가 취지인데 계속 과세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만기를 길게 설정하면 가입 기간 중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더라도 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작 시장의 자금 흐름은 정부가 기대하는 방향과 엇갈리고 있다. ETF CHECK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해외주식형 ETF에는 1조266억원이 순유입됐다. 국내주식형 ETF 순유입액은 3446억원으로 해외주식형의 3분의 1 수준이다.
연초 이후에는 국내주식형 ETF에 4조9026억원이 들어와 해외주식형(2조5593억원)의 1.9배에 달했다. 국내 증시 상승에 힘입어 ‘국장’으로 몰렸던 자금이 코스피가 박스권에 접어들자 다시 해외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 대표지수 ETF로 매수세가 집중됐다. 최근 일주일 ‘KODEX 미국나스닥100’에 3034억원이 순유입됐고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에도 각각 2782억원, 2037억원이 들어왔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 목적성은 명확하지만 시장 자금은 결국 수익성과 투자 매력도를 따라 이동한다”며 “단순 세제 혜택을 조정하는 방식만으로 장기적인 국장 자금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안팎에선 관건은 일반 ISA의 해외투자 혜택을 줄였을 때 해당 자금이 실제 국내 증시로 이동하느냐로 보고있다. 투자자가 생산적 ISA로 옮기는 대신 ISA 납입 자체를 줄이거나 연금·일반 증권계좌 등 다른 투자수단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해외 증시의 기대수익률이 높다고 판단하면 절세 혜택 일부를 포기하고 해외투자를 이어갈 수도 있다.
장기 자산형성이라는 ISA 본래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기투자에서는 국가와 자산을 분산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제를 통해 특정 시장으로 자산배분을 유도하면 투자자의 선택권을 제약할 수 있어서다.
투자자 반발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ISA 개편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일반 ISA의 기존 혜택을 유지하면 생산적 ISA의 상대적인 매력이 떨어지고, 혜택을 줄이면 장기 투자자들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자산에서 이탈한 자금 일부가 해외 자산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양상”이라며 “미국 증시가 강세를 이어가면서 해외 주식 기반 ETF에 대한 투자 수요는 당분간 확장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세제는 투자자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수익률과 성장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ISA를 국내 증시로 장기 자금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면 기존 혜택을 축소하는 데 앞서 실제 국내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금 규모와 투자자가 포기해야 할 절세·분산투자 편익부터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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