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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부터 살리자” 무파업선언

“회사부터 살리자” 무파업선언

한전기공 노조는 2년 전만 해도 ‘강성’이었다. 2001년에는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지난해 발전산업노조 파업에 불참했다. 올해 3월엔 무파업을 선언했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대 변신이다.
발전산업노조는 지난해 2월 말 발전산업 민영화에 반발해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동조해 발전산업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산하 100여 개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발전설비 정비업체인 한전기공만은 파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전기공 노조는 쟁의 찬반투표 자체를 철회했다. 발전산업노조 파업은 지난해 2월 25일부터 4월 2일까지 37일을 끌었다. 이 기간에 한전기공은 노사 공동으로 상황실을 설치하고 비상대기하며 발전소 운전을 지원했다.

1년 뒤인 올해 3월. 한전기공 노동조합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무파업’노사평화 선언을 했다.
한전기공 노조의 동조파업 불참과 무파업 선언은 정비시장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전기공은 그 동안 수의계약을 통해 발전설비 정비시장을 독차지해왔다. 2001년 4월 한전의 발전부문이 분할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서로 경쟁하게 된 발전회사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정비도 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이경삼(62) 한전기공 사장은 “정비가 경쟁체제로 가는 상황에서는 고객인 발전회사의 신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노조가 이런 점을 잘 인식해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한전기공이 발전설비 정비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한다는 신뢰를 주지 못하면 발전회사는 경쟁체제 도입 일정을 앞당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전기공의 노사는 2001년까지만 해도 갈등이 심했다. 한전기공 노조는 2001년 4월 회사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며 사흘간 파업을 벌였다. 앞서 1994년에는 단체교섭 결렬로 파업했다. 지난해 4월 선임된 이 사장은 “두 차례 파업이 발전회사들에 정비를 경쟁으로 바꾸도록 하는 빌미가 됐다”며 “내가 발전회사들을 설득해 정비 경쟁발주 일정을 늦추도록 할 테니, 노조는 평화선언을 하라”고 제안했다.

당초 발전회사들은 지난해부터 정비를 전면 경쟁에 붙인다는 방침이었다. 이 계획은 한전기공 노조의 반발로 지난해 3월 철회됐다. 한 달 뒤 취임한 이 사장은 산업자원부와 한전, 발전회사를 상대로 또 다른 협상을 벌였다. “경쟁으로 정비 비용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정비는 투자다. 정비를 잘 해야 발전설비를 최고의 성능으로 오래 돌릴 수 있다. 한전기공은 설계 수명이 20∼30년인 발전설비를 40∼60년 쓰도록 정비한다. 다른 업체들이 기술력을 갖출 때까지는 한전기공에 정비를 맡겨 달라.” 한전에서만 36년 근무하면서 기획본부장 · 기술본부장 ·관리본부장을 역임한 그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남동 · 남부 · 동서 ·중부 ·서부 등 5개 발전회사와 한전기공은 지난해 9월 13일 단계적 경쟁 일정에 합의했다. 한전기공의 경쟁업체를 육성하는 조건으로 2005년까지 경쟁을 미루기로 한 것. 원자력 · 수력발전 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기술적인 특성과 설비의 안전성을 고려해 계속 한전기공에 정비를 맡기기로 했다. 2005년이 되면 발전설비 정비는 지난해 한전기공 수의계약 금액을 기준으로 20%가 경쟁에 부쳐진다. 2006년에는 30%, 2007년부터는 전체가 개방된다. 한전기공은 2004년까지 2년간 수의계약 금액의 16%까지 하도급을 주기로 했다. 올해 8월 현재 한전기공은 4개 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있다.

이 사장이 노조에게 만족할 만한 수준의 교섭 성과를 내놓자 배병관 노조위원장이 나섰다. 배 위원장은 전국 36개 지부를 돌며 이젠 노조가 평화선언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노조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고객신뢰가 우선이라는 점을 설득시켰다”고 말했다. “지난해 동조파업 불참에 이어 무파업 선언을 하면서 발전산업노조 등의 눈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분을 좇아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노조의 출근 저지, 설득으로 풀어

한전기공 사장 자리에는 종종 발전산업에 문외한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한전은 이 사장 선임에서는 그런 전철을 탈피했다. 자연히 노조도 이 사장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이 사장은 취임 초기 곤욕을 치렀다. 노조는 지난해 5월 ‘반개혁적인 이경삼 사장 물러나라’고 외치며 이 사장의 출근을 막았다. “집에 돌아와서 하루 잘 쉬었습니다. 다만 개혁에 착수한 나를 반개혁적이라고 몰아붙인 캐치프레이즈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죠.”

노조가 반발한 것은 이 사장의 원자력발전소 사업장 통합이었다. 한수원은 영광 · 고리 · 울진 · 월성 등 4곳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 한전기공은 9개 사업장을 두고 있었다. “한수원에 맞춘 한전기공 사업장 통폐합을 취임 첫 과제로 삼았어요. 총무팀을 비롯한 공통 지원조직을 줄이고 지휘통제의 효율을 높이며 사업장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장은 “내 취지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것 같다”며 통폐합 대상인 5개 사업장에서 설명회를 가졌다. 큰 원칙에 동의한다면 서로 양보해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그 결과 한전기공은 꼭 필요한 사업장에서만 지원 인력을 줄여 유지하면서 사업장을 통폐합할 수 있었다.
“나도 72년에 간부가 되기 전에는 한전에서 노조활동을 해서 노조를 잘 이해하는 편입니다. 부위원장까지 지냈어요. 또 한전 관리본부장 시절에는 노조를 상대했습니다. 노사가 서로 신뢰하면 풀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한전기공은 지난해 12월 단체협약 갱신을 통해 퇴직금제도 등을 개선했다. 퇴직금 누진제와 체력단련휴가를 폐지했다.

한전 자회사인 한전기공은 국내 발전설비의 92%를 유지관리한다. 수력댐과 민자발전소 등 나머지 8%는 자체적으로 설비를 정비한다. 한전기공은 그 동안 한전과의 수의계약을 통해 매출과 이익을 안정적으로 올렸다. 지난해엔 매출 4,150억원에 28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발전설비 정비가 경쟁체제로 바뀌면 한전기공의 매출과 수익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

이 사장은 올해 5월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비전 2007’을 마련했다. “앞으로 5년 동안 기술을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고도화하고, 민자발전소와 해외발전소 등 신규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발전설비 정비 경쟁에 따른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2007년 매출이 3,700억원대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2007년 매출목표를 5,100억원으로 잡았습니다. 노사가 지금처럼 한마음으로 일한다면 못 이룰 목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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