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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피’ 수혈에 나선 고이즈미

‘젊은 피’ 수혈에 나선 고이즈미



Koizumi's Children


11월 9일 실시되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교토(京都) 4구에 출마한 정치신인 다나카 히데오(田中英夫·59)의 지원유세차 유명한 정치인들이 나섰다. 다나카가 노리는 자리는 몇주 전까지만 해도 자민당의 원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의 것이었다. 노나카는 지난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의해 반강제로 은퇴당하면서 고이즈미의 ‘축출’을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갓 한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 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다나카의 지원유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다나카가 정작 엑스트라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자민당을 지지해온 유권자들의 표밭을 다지는 거물 노나카와 팝스타 같은 매력을 갖춘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46) 국토교통상이 함께 개혁을 외치기에 다나카가 할 일이라고는 상투적 구호를 외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뿐이다. 그런 각본에 충실한 그를 향해 반대편 민주당 후보인 기타가미 게이로(北神圭朗·36)는 ‘노-다나카’(노나카와 다나카의 이름을 합친 것)라는 선거구호를 외친다. 전직 관료로서 ‘개혁의 고질라’로 자처하는 기타가미는 “이곳은 노나카의 아성이다. 자민당은 내부 분열이 있더라도 선거 때만 되면 힘을 합친다. 그것이 그들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자민당 지지세력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를 꾀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그들의 노력은 2차대전 이래 일본을 다스려온 자민당에 다시 한번 권력을 안길 것이다. 그렇다고 승리를 향한 고이즈미의 길이 순탄대로라는 말은 아니다. 최근 몇주 동안 그는 자민당의 원로 의원 수십명을 은퇴시켰다. 두명의 전직 총리와 특혜성 공공 건설사업 지출을 독점했던 특정 이익 ‘정파’의 수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자민당은 대신 일명 ‘고이즈미의 자식들’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을 내세웠다. 고이즈미가 업적을 남기느냐의 여부는 그들의 당락에 달렸다.

그들을 의사당에 입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990년대 말 자민당은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는 바람에 3당 연립여당을 구성해야 했다.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고이즈미측은 정치적 선심공세에 의존하던 기존의 득표전략을 고쳤다. 자민당 파벌을 연구해온 도쿄대 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 교수는 “대다수 후보들은 이제 유권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는 공약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민당 후보들은 대신 힘있는 장관들의 대중적 이미지와 개혁이념(이 둘은 때로는 상충한다)을 내세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한가지 척도는 풍부해진 정강정책이다. 또 하나는 경제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당내 두뇌집단의 급증이다. 지금 일본 언론은 전례없이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민은 이를 환영하는 것이 분명하다. 교토에서 사는 한 주부(30)는 “누구를 찍을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며 공공사업 지출·소비세·개헌 등에 관한 후보들의 입장에 따라 마음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이 회복세이고 올해 경제도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지만 자민당이 고이즈미의 공적에만 기댈 형편은 못된다. 많은 유권자들, 특히 농업·건설업 등 전통적 선거구의 유권자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기 때문에 섣불리 경제회복을 내세웠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고이즈미의 해결책은 카리스마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민당의 TV 광고에서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회색 코트를 벗어던지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채 높은 의자에 앉아 ‘신일본’ 창조를 약속했다. 지난주 접전지역으로 꼽히는 선거구들의 유세장에서 그는 약 8천명의 군중을 끌어모았다. 자리를 가득 메운 중년여성들은 그가 연단에 오를 때마다 애칭인 “준짱! 준짱!”을 연호했다. 마찬가지로 이시하라 국토교통상과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간사장은 언변과 섹스 어필로 대규모 청중을 끌어모았다.

야당 역시 젊은 후보들에게 당의 미래를 걸었다. 다만 자민당과는 달리 정계에 갓 입문한 후보들을 내세웠다. ‘고질라’ 기타가미도 그중 한명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일본에 왔다. 대학 졸업 후 재무성에서 일하다가 1년 전 민주당에 발탁됐다. 그가 내세우는 것은 두가지다. 해외에서 받은 교육을 토대로 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갖고 있으며, 전직 관료로서 정부가 현재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안다는 것이다.
기타가미의 숙제는 생각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자민당이 강세인 교토에서 그의 라이벌 다나카를 보기 위해 수백명이 모이는 것과는 달리 그는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한다.

최근 한 식료품점 앞에서 유세할 때는 청중이라곤 자신의 수행원들밖에 없었다. 되도록 한명이라도 더 손을 잡으려고 길 끝까지 유권자를 쫓아간 적도 있고 지나가는 스쿠터를 가로막고 놀란 운전수와 악수를 한 다음에야 보내준 적도 있었다. 그는 패배를 각오하고 있으면서도 “영원한 야당 노릇을 하기 위해 재무성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만간 집권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가미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은 미래의 주자로 자임하는데 그러려면 새 선거제도와의 한판 씨름이 불가피하다. 1990년대에 제정된 정치개혁법에 따라 만들어진 새 소선거구 제도 때문에 야당들은 힘을 합쳐야 유리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지난 9월 말 우파 성향의 자유당을 흡수했듯이 군소정당들을 통합해서 실제로 고이즈미의 자민당을 쓰러뜨릴 수 있을 양당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민주당의 전략 설계자는 율사 출신인 간 나오토(菅直人) 당대표다. 복잡한 정책 문제를 두루 꿰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인상적인 말을 던지는 데는 고이즈미에 비해 열세다. 고이즈미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신의 개인적 매력이 당 후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 그의 지휘 아래 민주당은 이미지 변신에 착수했다. 그 일례가 21쪽짜리 팸플릿인데 현재 자민당에 빼앗기고 있는 유권자들, 다시 말해 여성의 표심을 훔치는 요령을 후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대중연설 기법은 물론 각종 에티켓에 대한 지침 등 온갖 훈수가 들어 있다. 옷차림을 깨끗이 하라든가, 헤어토닉을 너무 많이 바르지 말라든가, 치아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가 끼인 상태로 말하지 말라는 것 등이다.

민주당의 작전이 먹혀든다는 점은 자민당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예컨대 이번 유세기간에 자민당은 처음에는 간 나오토가 제의한 고속도로 이용요금 철폐를 무책임한 조치라고 비난하더니 심야 대폭할인을 포함해 도로 이용료를 삭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치열한 선거전은 교토의 한 원두커피점 사장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기도 했다. 고니시 준(小西潤)은 여전히 자민당을 지지하지만 부인 다마미(珠美)는 ‘신물’이 나서 야당에 투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타가미에게 투표할 거예요”라고 그녀는 선언했다. “한번 민주당에 정권을 맡겨서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대이변을 연출하지는 못하더라도 민주당은 차제에 자민당의 유력한, 그러나 상처받은 일부 거물들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된다면 설령 고이즈미 일파가 당선되더라도 간 대표는 도덕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몇군데서 상징적 승리를 거둘 경우 내년 여름까지 치러야 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마련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편 고이즈미도 정책 추진에 탄력이 실릴 기회를 노린다. 상당수의 ‘자식들’이 유권자들의 심판을 통과할 경우 그는 의회와 자민당 내에서 필요로 하는 영향력을 얻을 것이다. 그런 승리를 거두면 자민당내 라이벌 파벌들의 세력이 약해지고 입법부 내 특수 이익집단들이 무너지면서 고이즈미가 정책을 입안해 시행할 수 있는 전례없이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고이즈미는 지난주 목요일 유권자들에게 중의원의 여당연합 과반수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만일 자민당이 집권에 실패할 경우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교토의 다나카 같은 새 얼굴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유력한 스타들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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