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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론의 산실 갈라파고스에 가다

적자생존론의 산실 갈라파고스에 가다

미 공화당원 50여 명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갈라파고스제도행 호화 유람선에 올랐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領) 갈라파고스제도(Galapagos Islands)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백만 년 전 화산활동의 결과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966㎞ 정도 떨어진데다 인근에는 아무것도 없어 모든 섬이 ‘자연의 순수’ 그 자체였다. 온갖 조류, 도마뱀, 해양 포유류, 종자들이 유입됐다 나가곤 했다. 생물학적 식민지화가 이뤄진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행운이었다. 갈라파고스에는 날개를 퍼덕이고, 기어 다니며, 물 속에서 헤엄치는 동물들이 숱하다.

녀석들은 미각을 시험해보기 위해 찾아온 잡식성 ‘두 발 달린 짐승’ 앞에 기꺼이 나타났다 희생되곤 했다. 해적들, 포경꾼, 자연보호와는 아무 상관없는 무분별한 인간들이 점심 식사로 살갑고 호기심 많은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을 지금까지 10만 마리 정도 먹어치웠다.
그나마 격리된 환경 덕에 갈라파고스는 희귀한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미혼 때, 사온 중국 음식을 오랫동안 냉장고 안에 그대로 방치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지 않은가. 생태학적으로 어떤 틈새가 생길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윈은 해군 측량선 비글호(號)를 타고 갈라파고스에 도착했다. 모르긴 몰라도 다윈은 거북과 맥주로 포식하고 난 뒤 ‘넌 움직임이 느린데다 식용으로 쓸 수 있고 난 총을 갖고 있으니 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이론을 만들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비글은 퇴역했고 갈라파고스는 생태학적 보고(寶庫)가 됐다. 갈라파고스로 보무도 당당하게 입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가장 좋은 방법은 관광객으로 순항선에 몸을 싣는 것이다. 하지만 크루즈 관광은 여행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크루즈는 현대판 에스키모의 부빙(浮氷)이다. 옛날 에스키모인들은 늙어 쓸모 없어진 인간을 부빙 위에 올려놓고 띄워보냈다.

그나마 현대인들은 옛 에스키모인보다 자상하다. 동시에 더 위선적이기도 하다. 늙고 쓸모 없는 인간들에게 하루 9번의 식사, 가라오케, 슬롯머신을 제공하고 버뮤다 ‘마(魔)의 삼각지대’에서 언제 돌아오든 상관하지 않는 척한다. 관광의 단점은 집과 달리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벽화 중 <아담의 창조> 를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손가락을 내미는 장면이 있다.

마치 하나님이 장난으로 방귀 뀌는 소리를 흉내내는 것 같다(미국인들 사이에 남자들끼리 손가락 내밀며 방귀 소리를 흉내내는 장난이 있다). 하지만 안내인은 그 농담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관광지에서도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이탈리아 피사에 가면 편안하게 피사 시민들에게 우리 말로 “‘측량추’를 이탈리아어로는 뭐라고 하는가”라고 묻고 싶다.

운 좋게도 우리 일행 가운데 텍사스에서 온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갈라파고스 여행시 맞닥뜨리게 될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텍사스인 특유의 열정과 재주가 있었다. 조지와 바버라(모두 가명) 부부는 여행 그룹의 바쁜 일정을 이리저리 짜맞추느라 1년 동안 고생했다. 우리 그룹은 다윈의 이론, 적어도 자유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윈의 이론을 높이 평가하는 50여 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게다가 우리 모두 자연을 사랑한다. 사냥개가 사냥감 새를 발견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조지와 바버라는 스케줄을 이국적 여행상품으로 유명한 유람선 여행사인 린드블래드 익스페디션스(Lindblad Expeditions)의 폴라리스(Polaris)호 운항 일정에 맞췄다.지난 6월 우리는 갈라파고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폴라리스 전체를 예약했다.

폴라리스에는 해적기 대신 해골과 세동제거장치를 X자로 교차시킨 ‘노인기(Geriatric Roger)’가 걸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각기가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에 온라인 경매사이트 e베이(eBay)에서 쭈글쭈글한 정원 장식용 늙은 난쟁이상(像)을 파는 미시간주 입실랜티 출신의 은퇴생활자들이 있었다면 아첨하며 말 잘 듣는 선장에게 “이 사람들 물 속으로 던져버리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포식자 없어 가마우지 날개 퇴화

린드블래드에 아첨쟁이 선장은 없었다. 대신 야생생물학의 권위자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우리를 조디액(Zodiac) 보트에 태우고 갈라파고스의 이 섬 저 섬으로 안내했다. 가이드들은 갈라파고스의 식물군과 동물군에 대해 설명해줬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속 내용까지 우리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페르난디나섬(Fernandina Island)에서 가이드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의 날개가 퇴화한 것은 포식동물이 없어 날아다닐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공화당원인 우리야말로 타고난 포식자가 아닌가. 가까운 곳에 있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 한 마리가 아무 기능도 없는 짧은 부속기관을 펼쳤다. 그래도 조류 회원 자격은 충분한 듯했다.

“시장의 경쟁이 없으면 저렇게 되는 거예요.” 바버라가 말했다.
가이드가 “날지 못하는 갈라파고스가마우지는 페르난디나와 이사벨라(Isabela)섬의 고유종”이라고 말했다(여기서 ‘고유종’이란 ‘멀리 가지 못하는’ 혹은 ‘한 곳에서만 사는’이라는 뜻이다).
가이드가 계속 말을 이었다. “가까이 가도 괜찮습니다. 둥지를 틀 때도 마찬가지죠. 인간과 접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녀석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야생동물이죠.”
“맞아요! 오래 전에 깨달았어야 하는 건데.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멍청하다는 뜻이거든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온 한 변호사가 말했다.

변호사의 말은 해질녘 선상 술자리에서 안주가 돼버렸다.
“저기 멍청한 바다를 위하여.”
“멍청이들을 위하여.”
“멍청이 왕국을 위하여.”
“멍청한 것이라, 즐거워지는군. 모든 것이 멍청해져.”

갈라파고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에콰도르의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원시 그대로인 야생의 멍청함이 엄격하게 보전돼 동물세계와 밀접하게 교감할 수 있다. 이는 화성 탐사 로봇 로버(Rover)가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그로부터 느낄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이다. 우리는 갈라파고스 고유종인 웨이브드 알바트로스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됐다. 알바트로스는 번식을 위해 짝짓기하고 난 뒤 각자 헤어진다. 몇 달 동안 혼자 바다로 나가 있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 갈라파고스 에스파뇰라섬(Espanola Island)으로 돌아온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수컷은 자기 짝과 다시 만나기 전 다른 암컷들을 겁탈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암컷과 수컷은 애써 화해하려는 듯 꽥꽥 울며 부리를 서로 맞부딪치다 마침내 포옹한다. 새들의 주간(晝間) TV 프로그램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녀석들은 한 배에 알을 하나만 낳는다. 부부간 금실을 돈독히 하기 위함인 것 같다. 알을 낳은 뒤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가며 품는다. 한 번에 꼼짝 않고 최고 1주 동안 품기도 한다. 부화한 새끼는 어미가 토해주는 먹이를 한 번에 2kg 정도 받아먹는다. 약 5개월이 지나면 새끼의 몸무게가 어미보다 더 나간다. 여성 문제, 가족 붕괴, 아동 비만. 에스파뇰라섬은 힐러리 클린턴이 바꾸고 싶어하는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다.

조소의 대상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바보같이 어기적거리며 걷는 푸른발부비(blue-footed booby)라는 새가 있다(‘부비’는 바보라는 뜻도 갖고 있다). 물갈퀴 달린 부비의 발은 유엔 깃발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색깔이다. 녀석들이 짝짓기할 때 추는 춤은 디스코 폴카다. 그리고 서로에게 자갈을 선물한다.
부비는 도도한 군함조와 함께 해안 가까이서 물을 마신다. 군함조는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언월도(偃月刀)처럼 생긴 거대한 날개로 공중제비하며 곡예사인양 하늘을 수놓는다.

군함조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반면 부비는 시시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군함조가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그런 생각은 싹 가시고 만다.
부비는 노련한 잠수부다. 30m 상공에서 쏜살같이 급전직하해 45㎝까지만 물 속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낚아채기도 한다. 그러면 군함조가 기다렸다는 듯 공중에서 부비의 꼬리를 낚아채 물고 마구 흔들어댄다. 부비가 잡은 물고기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가이드가 말을 이었다. “군함조는 땅 위에서 크고 빨간 턱밑주머니로 공기를 한껏 불어….”

“유권자 여러분, 장담컨대 저 군함조만 보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조지 부시 정부에서 꿋꿋이 일했던 한 여성이 가이드의 말을 가로막았다.
“푸른발부비 이름을 다시 붙여야겠는걸.” 뉴욕에서 온 어느 마케팅 컨설턴트가 말했다. “저 발 좀 봐요. 라이선스 계약을 해도 될 법한 스케이트보드 운동화네요.”
“저거 보세요.” 가이드가 말했다. “용암갈매기(Larus fuliginosus)입니다. ” 그가 가리킨 새는 ‘하늘의 청소부’로 불리는 갈매기라기보다 비둘기에 더 가까웠다. “희귀종입니다. 지구상에 400쌍 정도뿐일 겁니다.”

“맛있겠는걸.” 새 사냥을 무척 좋아하는 한 사람이 말했다. 생물멸종이 공해나 기후변화 못지 않게 인간의 미각과도 관계 있다는 게 우리의 중론이었다. 새로운 생물이 목격될 때마다 우리들 입에서 “맛은 어때요”라는 질문부터 터져나왔다. 가이드들 가운데 한 사람 입에서 코끼리거북 맛을 안다는 답이 나오는 데만 1주일이나 걸렸다. 갈라파고스 태생인 그는 “직접 먹어본 게 아니고 오래 전 부모님이 드셔봤다”고 털어놓았다.
“맛이 괜찮답니까.” 우리가 물었다.
“맛있답니다.”

거북이 입이나 용암갈매기 가슴 요리는 없었지만 폴라리스의 음식 맛도 괜찮았다. 선원들은 활기에 차 있었다. 선실도 그리 좁지는 않았다. 그리고 밤마다 가이드들이 갈라파고스의 식물군과 동물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해줬다. 우리는 생태학과 관련해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가이드 한 사람이 지질연대로 볼 때 갈라파고스가 생겨난 것은 얼마 안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조지가 시계를 지질학적 시간에 맞춰놓으면 스트레스는 줄고 젊음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금방 다녀 오겠습니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말입니다. 돌아와서 얘길 계속하죠.”

아침마다 우리는 스노클을 쓰고 잠수했다. 숙취 해소에 효과 만점이었다. 갈라파고스에서는 상업용 어로행위가 금지돼 있다. 갈라파고스 해역은 물고기 천국이다. 거대한 킹에인젤피시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매상도 올리지 못하는 애완동물 가게의 수족관 안에서 보글보글 거품만 내는 잠수부처럼 느껴졌다. 피자 위에 올려지는 작은 은빛 앤초비들이 떼지어 다녔다. 파랑비늘 ·점자돔 ·놀래기들이 알바트로스처럼 무아지경을 연출했다. ‘자비로운’ 상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쥐가오리가 수중에서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지나갔다. 모습은 ‘그링고 피시’와 비슷했다. 그링고 피시는 물 속에서 옅은 색깔을 띠다 햇빛만 쬐면 밝은 빨강으로 바뀐다. 영미 사람들을 일컫는 ‘그링고’라는 말이 물고기 이름에 붙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조디액 보트로 돌아와보니 우리는 빨강이 아니라 분홍에 더 가까웠다. “참복이 매우 살갑게 군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독이 있거든요.” 가이드가 말했다.

“어디나 똑같군.” 정치자금 모금책들을 상대해야 하는 텍사스주 휴스턴의 여성이 말했다.
바다사자 새끼들이 우리와 함께 잠수했다. 녀석들은 우리 주위를 돌며 우리가 신고 있는 잠수용 발갈퀴도 물어뜯고 조디액의 구명 튜브와 씨름까지 했다. 바다사자가 아니라 바다강아지였다. 우리는 산티아고섬(Santiago Island)의 용암 해안에서 갓난 바다사자를 목격했다. 어미는 혈통 좋은 애완견처럼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 갓난 새끼를 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저건 어떤 맛일까”라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갈라파고스 해역은 물고기 천국

그날 저녁 선미 토론회에서 한 플라이 낚시광이 새 사냥꾼에게 물었다. “바다사자를 훈련시켜 플로리다주 플로리다키스(Florida Keys) 제도의 여을멸 몰이에 나서면 안 될까요. ”
다 큰 바다사자 수컷은 별 쓸모 없을 것이다. 녀석들은 바다사자 ‘수영장 청소부’, 바다사자 ‘우체부’ 등 건장하고 멋진 다른 수컷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 영역만 지킨다. 반면 암컷들은 마음대로 영역을 들락거린다. 댈러스의 변호사가 말했다. “의뢰인들한테 충고해줘야겠네요. 부인한테 그냥 집을 주라고 말이에요.”

우리가 갈라파고스에 개목걸이 ·개집 · 동물 이혼 법정을 들여오겠다는 말은 아니다. 자연의 균형은 이미 많이 흔들리고 있다. 육지 정착민이 풀어 놓은 염소가 코끼리거북의 서식지를 잠식해 버렸다. 작은 섬에서는 염소들이 노후연금을 모두 찾아간 상태다. 하지만 이사벨라섬에는 아직 수만 마리가 남아 있다. 찰스 다윈 재단(Charles Darwin Foundation)과 세계야생생물기금(WWF) 등 여러 기관이 염소 퇴치에 수백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우리는 공짜로 퇴치해주겠다고 자원했다. 아니 꼭 공짜라고 볼 수도 없다. 우리에게 염소 사냥권만 주면 미국인 엽사들에게 염소 사냥 트로피를 획득할 기회가 무한한 갈라파고스 여행상품을 판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 표정을 보니 어째 미덥지 않다는 눈치였다.

갈라파고스는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에콰도르 정부 자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변호사 ·총 ·돈을 보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 변호사와 총은 있다. 찰스 다윈 재단에 돈만 보내주면 된다(donations@darwinfoundation.org). 코끼리거북을 생각해보라. 녀석들의 기원은 공룡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스타로 등장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가 히트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코끼리거북에는 또 어떤 면이 있을까, 가만 가만…. “멸종가능성이요. ” 바버라가 한 마디 거들었다.



펭귄 ·플라밍고 공존하는 열대지역

우리는 산타크루즈섬(Santa Cruz Island)에서 야생 거북 몇 마리를 목격했다. 거북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며칠이 지나도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북의 최고 속도는 제로에 가깝다. 우리는 찰스 다윈 연구소(Charles Darwin Research Station)에 한 무리의 거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연구소에서는 거북의 짝짓기가 시도되고 있다. 다양한 아종(亞種)을 복구해 갈라파고스에 방사하기 위해서다. 나는 브래트(Bradt) 출판사에서 나온 <야생의 갈라파고스> (Galapagos Wildlife)를 읽어줬다. “호르몬 수준이 너무 높으면 거북 수컷은 바위를 올라타려 드는 것으로 알려져….”

“어머, 하여튼 남자들이란!” 여자들이 핀잔을 줬다.
“짝짓기가 매우 격렬하죠.” 연구소의 생물학자가 이렇게 설명하며 핀타(Pinta) 아종의 마지막 남은 수컷을 가리킨 채 덧붙였다. “녀석은 겨우 20분 교미에 성기능 장애가 오고 말았습니다.”
“어머!” 여자들이 또 웅성댔다.

갈라파고스에는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어느날 오후 배를 타고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이동하던 중 1,000여 마리의 돌고래 떼와 마주쳤다. 녀석들은 수면 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파도 위의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슈니코프였다. 우리들 사이의 골수 보수주의자들도 경외감에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나마 ‘교토(京都) 의정서’에 대해 생각했다.
돌고래 떼 너머로 일광욕하는 향유고래 한 마리가 시선에 들어왔다. 너무 근사했다. 그때 우리 모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동물을 해치는 것은 의원들 차에 붙어 있는 범퍼 스티커 ‘고래를 구하자’를 보는 것만큼이나 나쁜 일이라고….

“통계학 강의를 들은 지 40년이 지났지만 이제야 이해됩니다.” 조지가 말했다. 전날 봤던 펭귄과 플라밍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구상에서 펭귄과 플라밍고가 공존하는 곳은 갈라파고스뿐이라는 말을 전날 들었다. 갈라파고스는 적도상에 자리잡고 있어 사실 열대지역이다.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페루 해류가 대기를 식히면서 ‘가루아(garua)’라는 짙은 안개까지 형성한다. 안개는 무인도 갈라파고스의 모든 것을 촉촉히 적셔준다. 이를 평균 내면 기후는 완벽하다. 우리가 통계학에서 항상 헷갈리듯 추운 지역에 사는 펭귄과 따뜻한 지역에 사는 플라밍고는 ‘평균’과 ‘중간’을 구분 못하고 모두 갈라파고스로 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유명한 갈라파고스방울새로부터 뭔가 배워야 한다. 그러나 사실 갈라파고스방울새는 작고 멋없으며 재미도 없다. 다윈이 갈라파고스방울새에 주목한 것은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다윈은 갈라파고스방울새의 작은 부리에서 다양한 진화 양상을 간파했다. 그 결과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그가 다른 사람들 부인에게 물어봤다면 그 사실을 좀더 일찍 알게 됐을 것이다.

생태학의 모든 교훈이 교화적인 것은 아니다. 바다이구아나를 예로 들어보자. 바다이구아나는 육지에서 해안으로 씻겨나가면서 물결 타는 법을 터득했다.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도마뱀이 된 것이다. 바다이구아나는 주로 해조류를 먹고 산다. 캘리포니아주 훔볼트 카운티로 이주해 밭에 채소를 기르고 삼으로 옷을 지어 입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의 도마뱀 버전이다. 바다이구아나는 유행가처럼 따분하고 질그릇처럼 못생겼다. 하루 종일 서로 몸을 층층히 쌓은 채 집단 애무를 한다.
바다이구아나를 바라보던 댈러스의 변호사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집에 애들만 두고 온 게 잘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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