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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분가는 절대 없다”

“SK의 분가는 절대 없다”

최신원 회장은 SK그룹의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형이다. 언론을 꺼리는 그가 사진 기자를 대동한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업주 아들’로서, 그리고 ‘SKC 회장’이란 CEO로서 그의 솔직담백한 인생유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SK그룹의 맏형격인 최신원(51) 회장은 좀처럼 외부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난 1년여 동안 SK그룹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최태원 회장 구속, 대선 비자금 파동 등 갖은 풍파를 겪는 와중에서도 최 회장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난 11월 선친이자 SK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평전 <공격 경영으로 정면 승부하라> 를 3년간의 준비 끝에 펴내고, 기자와 단독으로 만났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SK 창업주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고 싶었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최 회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탁자엔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란 경구가 쓰여진 종이가 놓여 있다. 최 회장은 “요즘처럼 편안할 때가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11월로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됐습니다. 제가 평전을 기획한 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선친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고 싶어서입니다. 선친은 SK를 창업하셨지만 아직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편이죠. 평전을 내자 누구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더군요. 저 역시 가슴 속에 있던 응어리를 푼 것 같습니다.”
최종건 회장은 SK의 전신인 선경의 창업주다. 1973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줬다. 최신원 회장은 최종건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이다. SK그룹은 현재 최종현 회장의 두 아들인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 그리고 최종건 회장의 두 아들인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등 최씨 형제들이 움직이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친형 최윤원 씨가 지난 2000년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 SK그룹에서 맏형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집안 대소사를 직접 챙기며 사촌간의 우애를 다지고 있다. 그룹이 내우외환을 모두 털지 못한 상황에서 창업주의 평전을 내놓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2003년 2월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뒤 세간에서는 사촌 형제 간 갈등설이 불거지곤 했다. 지금도 일각에선 ‘이러다 SK가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선친이 작은 아버님(최종현 회장)에게 남긴 유언이 가족간 단합”이라며 “이번 평전의 출판으로 사촌간 우애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소문을 일축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비록 사촌간이지만 친형제나 다름 없다”며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작은 아버님은 ‘이제 내 자식은 3명이 아니라 조카 7명을 포함해 10명’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또 “집안에 제사가 많지만 해외 출장을 빼곤 모두 참석해야 하는 게 불문율”이라며 “그만큼 자주 만나기 때문에 서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이”라며 웃었다.

그의 말처럼 사촌 형제간 우애는 남다른 모습이다. 2003년 11월 10일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자리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축사를 했다. 보석으로 석방된 뒤 가진 첫 공식행사였다.
최 회장은 현재 SK의 상황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그는 “SK는 설립 초기부터 숱한 위기를 겪는 등 굴곡이 심했다”며 “하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위기관리가 뛰어난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SK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겨낼 것”이라며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곧잘 나도는 계열 분리에 대한 그의 입장도 분명하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것. 최 회장은 “지금 나의 책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맏형으로서의 역할”이라며 “SK는 앞으로도 하나로 간다는 데 형제들도 이미 뜻을 모은 상태”라고 밝혔다.



“워커힐 되찾고 싶어”

그래서인지 최 회장은 선친과 사촌들과의 추억이 많은 워커힐호텔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워커힐호텔은 최종건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수한 사업체다. 최 회장은 “워커힐호텔은 선친의 유작”이라며 “개인적으로 워커힐 호텔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한 애착을 보였다.
최씨 일가와 워커힐호텔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 정부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워커힐호텔은 교통부 산하 국제관광공사가 운영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출범 뒤 10년 동안 적자에 허덕이자 73년 초 정부가 워커힐을 SK(옛 선경개발)에 매각했다. 최종건 회장은 워커힐 인수로 사업의 전환점을 마련하려고 했다. 당시 섬유회사로만 알려져 있던 선경은 호텔사업에 뛰어들면서 사업의 외연과 기업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최종건 회장은 워커힐을 인수한 그 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최 회장은 “워커힐 사랑은 누구보다 각별하다”며 “선친뿐 아니라 가족들과의 추억도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현재 워커힐호텔은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채권단이 관리하고 있다. 지난 3월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파문으로 구속된 최태원 회장이 사태 해결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호텔 지분 40.7% 등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면서다. 채권단 측은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과 관계 없는 워커힐호텔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최씨 일가의 애착이 이처럼 큰 워커힐호텔에 대해 SK가 재매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또 다른 내용은 ‘최종건 회장의 창업주 정신’이다. 그는 “선친은 강하고 무서운 분이었다”며 “그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와 형님 모두 해병대에 자원입대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선친은 경영자로서 앞을 내다볼 줄 알았고, 일단 결심을 하면 공격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 역시 선친의 경영 안목을 이어 받았다. 지지부진하던 SKC의 실적이 크게 호전된 게 좋은 사례다. 그는 2000년에 SKC 회장으로 부임하자마자 SKC의 천안 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천안 공장은 비디오 테이프와 콤팩트 디스크(CD) 등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주력 제품인 비디오 테이프의 경쟁력이 날로 떨어지면서 적자만 쌓이는 실정이었다.

최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천안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에게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밝혔다. 그리고선 천안공장을 2차전지와 휴대전화 단말기 등을 만드는 첨단 공장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최 회장은 비디오 테이프 등 기존 생산 라인을 중국 공장으로 옮겼다. 대신 그 자리엔 휴대전화 ·2차전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필름 등의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이 공장은 2002년 흑자로 돌아섰고, 2003년에는 SKC의 전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올리는 알짜 사업장으로 변신했다. 비디오 테이프 생산업체에서 정보통신업체로 변신한 SKC의 사례는 SK그룹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화젯거리가 됐다.

최 회장은 사회 사업에서도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최 회장은 “선친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런 영향으로 최 회장은 사회 사업에 열심이다. 특히 회사 돈이 아닌 자신의 돈으로 남을 돕는다. 그는 “수재의연금 등을 낼 때 ‘SK 최신원’이 아닌 ‘을지로 최신원’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차피 세상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선친의 30주기를 맞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담연(湛然)장학재단’을 세운다. 담연은 최종건 회장의 호다. 장학재단은 최씨 가족의 사재와 평전 수익금으로 운영된다.



최종건 평전, 어떤 내용 담고 있나
잿더미에서 일군 SK의 신화

‘1953년 4월,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선경직물의 공장 앞에 건장한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전쟁 전 선경직물 공장은 청년의 모든 꿈이었다. 그 청년은 혼자 삽을 들고 잿더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청년의 뜨거운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잿더미 속을 파헤치는 그의 주변으로 벽돌을 만드는 사람이 생기고, 목수가 생기고, 미장공이 생겼다. 그리고 2개월 만에 공장 안엔 4대의 직기가 조립됐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만들어진 이 4대의 직기가 지금의 SK 신화를 만들어내는 씨앗이 됐다. ’

SK의 임직원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이야기다.
공격 경영으로 정면 승부하라. 과거 재벌들의 전기가 창업주를 영웅으로 만드는 데 반해 이 책은 재미있고 편하게 읽히는 매력이 있다. 설립 초기 선경의 파트너였던 일본 데이진(帝人) 그룹 관계자들을 포함해 최종건 회장과 관련된 200여 명의 인터뷰로 만들어졌다. 사실에 기인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또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SK의 전신 선경의 태동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책을 펼치면 골목대장이었던 최종건 회장의 소학교 시절 이야기부터, 1970년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생산체제를 갖추게 된 그룹 이야기가 숨가쁘게 진행된다. 당시 친형제처럼 지내던 조선일보 방일영 사장을 통해 외화를 빌리게 된 에피소드, 박정희 대통령을 통해 워커힐호텔을 인수하게 된 배경, 임종 직전까지 놓치지 않았던 석유 사업의 야망 등 최종건 회장의 도전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국내에 ‘화이버스코프’라는 암진단 기계가 없어 나중에서야 폐암 말기 선고를 받게 된 일화는 감동을 자아낸다.

최종건 회장은 나중에 그 기계를 외국에서 직접 구입해 병원에 기증하면서 “나는 이미 늦었지만 나와 같은 병에 걸려 고통받는 다른 환자들을 위해 기증한다”고 말할 정도로 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최신원 회장은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해서 책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제대로 된 평전을 내자는 게 신념이었다”며 “회사 내부적으로 사정이 안 좋았는데 직원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주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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