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TV 방송을 장악한 손
동유럽 TV 방송을 장악한 손
로널드 로더의 동유럽 TV 사업은 끝없는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드릭 클링크하머가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1998년 프레드릭 클링크하머(Frederic Klinkham mer ·58)가 로널드 로더(Ronald Lauder)와 손잡으며 어려운 자리를 맡게 됐다. 화장품업체 에스티 로더(Estee Lauder)의 상속인으로 뉴욕 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는 벤처 캐피털리스트 로더는 한때 잘 나가던 장거리 전화업체인 RSL 커뮤니케이션스(RSL Communications)가 2001년 쓰러지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그가 소유한 동유럽의 TV 벤처업체인 센트럴 유로피언 미디어 엔터프라이지스(CME)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적어도 로더가 클링크하머를 영입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클링크하머는 CME로 옮기기 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영화사 아이맥스(Imax Corp.), 캐나다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미디어 링크스(Media Linx), 캐나다 토론토 소재 케이블 서비스 업체 케이블넷(Cablenet)의 사장을 역임했다. 당시 CME는 1억7,000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유일한 수익원인 체코 소재 노바 TV (Nova TV)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동업자가 장악하고 있었다. 클링크하머는 “동업자 때문에 하마터면 망할 뻔했다”고 말할 정도다.
CME는 ‘철의 장막’ 붕괴 이후 전망이 밝은 미디어 업체로 출발했다. 로더는 4,000만 달러를 들여 94년 4월 노바를 출범시켰다. 노바는 TV 시리즈물 (Baywatch)나 현지 제작 시트콤인 <노바 가족> (The Novaks), 흥겨운 심야 프로그램 등으로 체코에서 시청률 70%를 달성하며 연간 5,000만 달러의 영업이익(감가상각비 ·이자 ·세금 공제 전 수익)도 기록했다. 같은 해 10월 로더는 CME를 나스닥에 상장했다(로더의 CME 지분은 28%이지만 의결권 주식의 78%를 확보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로 6,600만 달러나 끌어들인 로더는 폴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 다른 동유럽 지역에 노바와 비슷한 방송사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96년 ‘누워서 떡 먹기’ 같은 사업은 막을 내렸다. 베텔스만(Bertelsmann)과 룩셈부르크에 있는 SBS 브로드캐스팅(SBS Broadcasting)이 로더의 수법을 간파하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98년 로더는 중유럽 최대 시장인 폴란드에서 1억2,500만 달러, 헝가리에서 3,100만 달러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그는 6억1,5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받고 CME를 SBS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투자자들에게 무려 250%의 수익률이 돌아가는 꽤 짭짤한 거래였다.
그러나 매각은 무산됐다. 99년 8월 노바의 공동 창립자이자 운영자로 CME 체코 사업부 지분 12%를 보유한 체코측 파트너 블라디미르 젤레즈니(Vladimir Zelezny)가 반대한 것이다. SBS는 젤레즈니에게 1억 달러 상당의 현금과 주식을 제시했지만 헛수고였다. 젤레즈니는 노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방송 송출까지 중단해버렸다. 그리고 직원들을 데리고 나와 새로운 본사에서 방송에 들어갔다. 로더에게 남은 것은 TV와 사무용 가구 몇 가지뿐이었다.
로더는 클링크하머를 불러들였다. 클링크하머는 체코 당국을 상대로 5억 달러 상당의 소송까지 제기했다.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젤레즈니에게는 손해배상금 2,900만 달러를 요구했다. CME 주가가 급락하자 클링크하머는 8대 1 주식병합을 시도했다.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CME 주식은 증시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클링크하머는 이후 2년 동안 동유럽에서 동분서주했다. 동유럽 TV 방송사들은 50년대 국유기업의 조직모델을 따르고 있었다. CME의 영국 런던 지사에서 진격 명령을 내리고 콘텐츠도 사들이는 형국이었다. 심지어 프로그램까지 편성해주기도 했다. 사실 직원들을 독려할 만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다. 클링크하머는 “수익이 목표에 미달해도 현지 경영진은 책임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그는 목표를 정해주고, 영업이익 목표가 달성될 경우 연봉 수준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클링크하머는 또 다른 서방식 혁신안을 도입했다. 프로그램 재방송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CME로 부임했을 당시 담당자들은 단지 면피를 위해 프로그램만 구매하고 있었다. 클링크하머는 시청자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비용도 절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프로그램을 두 번 이상 방영하면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 알게 됐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러시아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따라서 재방 ·삼방 해도 시청률이 높았다. 1999~2002년 CME는 재방으로 영업비용을 60%나 절감할 수 있었다.
2002년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CME 채널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에서 시청률 1위, 우크라이나에서 2위를 달렸다. 게다가 프랑스 파리 소재 국제중재재판소(ICC)가 젤레즈니의 계약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CME는 젤레즈니로부터 손해배상금 2,900만 달러를 받아냈다. 체코 당국 역시 패소했지만 스웨덴 스톡홀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런던으로 옮겨가며 계속 항소했다. 클링크하머는 판결문이 나올 때마다 이를 CME 웹사이트에 공표했다.
판결문 가운데 어떤 것은 150쪽에 이르기도 했다. 그가 판결문을 게시한 것은 투명성으로 투자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전략은 먹혀들었다. 젤레즈니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자 버뮤다에 있는 골든 트리 애셋 매니지먼트(Golden Tree Asset Management)가 CME에 3,000만 달러나 투자했다.
사업은 성장가도에 올라섰다. CME는 지난해 들어 9월까지 매출 7,700만 달러에 영업손실 3,26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클링크하머는 산하 TV 방송국들의 현금흐름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가 오는 5월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 무역장벽이 사라지고 광고도 늘어나 CME의 재무상태는 개선될 전망이다. CME 주식은 액면분할 이후 16.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 CME는 체코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마침내 이겨 3억5,800만 달러나 받아냈다. 이는 체코의 1년 보건의료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체코 법원은 젤레즈니의 노바 지분을 박탈했다. 체코의 상원의원이기도 한 젤레즈니는 탈세 혐의로 기소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9월 CME는 갖고 있던 노바의 자산을 5,400만 달러에 매각했다. CME 산하 슬로베니아 할로(Slovenian Hallo) 방송국은 젤레즈니 사건을 소재로 한 시트콤까지 방영했다. 시트콤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로더는 마지막에 웃는 승자가 될지도 모른다. 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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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레드릭 클링크하머(Frederic Klinkham mer ·58)가 로널드 로더(Ronald Lauder)와 손잡으며 어려운 자리를 맡게 됐다. 화장품업체 에스티 로더(Estee Lauder)의 상속인으로 뉴욕 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는 벤처 캐피털리스트 로더는 한때 잘 나가던 장거리 전화업체인 RSL 커뮤니케이션스(RSL Communications)가 2001년 쓰러지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그가 소유한 동유럽의 TV 벤처업체인 센트럴 유로피언 미디어 엔터프라이지스(CME)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적어도 로더가 클링크하머를 영입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클링크하머는 CME로 옮기기 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영화사 아이맥스(Imax Corp.), 캐나다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미디어 링크스(Media Linx), 캐나다 토론토 소재 케이블 서비스 업체 케이블넷(Cablenet)의 사장을 역임했다. 당시 CME는 1억7,000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유일한 수익원인 체코 소재 노바 TV (Nova TV)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동업자가 장악하고 있었다. 클링크하머는 “동업자 때문에 하마터면 망할 뻔했다”고 말할 정도다.
CME는 ‘철의 장막’ 붕괴 이후 전망이 밝은 미디어 업체로 출발했다. 로더는 4,000만 달러를 들여 94년 4월 노바를 출범시켰다. 노바는 TV 시리즈물
96년 ‘누워서 떡 먹기’ 같은 사업은 막을 내렸다. 베텔스만(Bertelsmann)과 룩셈부르크에 있는 SBS 브로드캐스팅(SBS Broadcasting)이 로더의 수법을 간파하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98년 로더는 중유럽 최대 시장인 폴란드에서 1억2,500만 달러, 헝가리에서 3,100만 달러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그는 6억1,5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받고 CME를 SBS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투자자들에게 무려 250%의 수익률이 돌아가는 꽤 짭짤한 거래였다.
그러나 매각은 무산됐다. 99년 8월 노바의 공동 창립자이자 운영자로 CME 체코 사업부 지분 12%를 보유한 체코측 파트너 블라디미르 젤레즈니(Vladimir Zelezny)가 반대한 것이다. SBS는 젤레즈니에게 1억 달러 상당의 현금과 주식을 제시했지만 헛수고였다. 젤레즈니는 노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방송 송출까지 중단해버렸다. 그리고 직원들을 데리고 나와 새로운 본사에서 방송에 들어갔다. 로더에게 남은 것은 TV와 사무용 가구 몇 가지뿐이었다.
로더는 클링크하머를 불러들였다. 클링크하머는 체코 당국을 상대로 5억 달러 상당의 소송까지 제기했다.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젤레즈니에게는 손해배상금 2,900만 달러를 요구했다. CME 주가가 급락하자 클링크하머는 8대 1 주식병합을 시도했다.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CME 주식은 증시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클링크하머는 이후 2년 동안 동유럽에서 동분서주했다. 동유럽 TV 방송사들은 50년대 국유기업의 조직모델을 따르고 있었다. CME의 영국 런던 지사에서 진격 명령을 내리고 콘텐츠도 사들이는 형국이었다. 심지어 프로그램까지 편성해주기도 했다. 사실 직원들을 독려할 만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다. 클링크하머는 “수익이 목표에 미달해도 현지 경영진은 책임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그는 목표를 정해주고, 영업이익 목표가 달성될 경우 연봉 수준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클링크하머는 또 다른 서방식 혁신안을 도입했다. 프로그램 재방송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CME로 부임했을 당시 담당자들은 단지 면피를 위해 프로그램만 구매하고 있었다. 클링크하머는 시청자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비용도 절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프로그램을 두 번 이상 방영하면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 알게 됐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러시아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따라서 재방 ·삼방 해도 시청률이 높았다. 1999~2002년 CME는 재방으로 영업비용을 60%나 절감할 수 있었다.
2002년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CME 채널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에서 시청률 1위, 우크라이나에서 2위를 달렸다. 게다가 프랑스 파리 소재 국제중재재판소(ICC)가 젤레즈니의 계약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CME는 젤레즈니로부터 손해배상금 2,900만 달러를 받아냈다. 체코 당국 역시 패소했지만 스웨덴 스톡홀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런던으로 옮겨가며 계속 항소했다. 클링크하머는 판결문이 나올 때마다 이를 CME 웹사이트에 공표했다.
판결문 가운데 어떤 것은 150쪽에 이르기도 했다. 그가 판결문을 게시한 것은 투명성으로 투자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전략은 먹혀들었다. 젤레즈니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자 버뮤다에 있는 골든 트리 애셋 매니지먼트(Golden Tree Asset Management)가 CME에 3,000만 달러나 투자했다.
사업은 성장가도에 올라섰다. CME는 지난해 들어 9월까지 매출 7,700만 달러에 영업손실 3,26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클링크하머는 산하 TV 방송국들의 현금흐름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가 오는 5월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 무역장벽이 사라지고 광고도 늘어나 CME의 재무상태는 개선될 전망이다. CME 주식은 액면분할 이후 16.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 CME는 체코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마침내 이겨 3억5,800만 달러나 받아냈다. 이는 체코의 1년 보건의료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체코 법원은 젤레즈니의 노바 지분을 박탈했다. 체코의 상원의원이기도 한 젤레즈니는 탈세 혐의로 기소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9월 CME는 갖고 있던 노바의 자산을 5,400만 달러에 매각했다. CME 산하 슬로베니아 할로(Slovenian Hallo) 방송국은 젤레즈니 사건을 소재로 한 시트콤까지 방영했다. 시트콤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로더는 마지막에 웃는 승자가 될지도 모른다. 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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