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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 “두 번 죽지 않는다”

CIT, “두 번 죽지 않는다”

타이코 사태에서 간신히 살아난 CIT 그룹이 서서히 기운을 차리며 새로운 사업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앨버트 갬퍼(Albert Gamper ·61)는 전자부품 제조업체 타이코(Tyco) CEO로 자신의 상사였던 데니스 코즐로스키(Dennis Kozlowski)가 소집한 긴급회의를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기업 ·소비자 금융 대기업인 CIT 그룹(CIT Group)의 CEO인 갬퍼는 타이코의 모든 사업 본부장들과 함께 플로리다주 보카러턴으로 호출됐다. 코즐로스키는 주가 부양을 위해 타이코를 4등분하겠다고 밝혔다.

타이코가 92억 달러에 CIT를 인수한 지 겨우 7개월이 지난 2002년 1월의 일이었다. 갬퍼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발언에 나섰다. 코즐로스키 자신이 수년 동안 시너지효과 운운하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갑자기 뒤집으면 시장에 혼란만 야기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코즐로스키는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그는 “분사야말로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조치”라고 답했다.

그렇게만 됐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하지만 매각안은 문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CIT는 타이코의 붕괴와 스캔들로 지난 2년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CIT의 전체 신용한도액을 인출하면서 고객과 채권자들의 신뢰를 잃을 뻔했다. 팩터링(수취채권 매입), 비행기 리스, DIP 대출(Debtor-In-Possession: 정리절차 신청 회사의 경영자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 재산권 ·경영권을 계속 인정하고 해당 기업에 제공하는 대출), 소비자 금융, 장비 리스, 중소기업 대출 등 기존 사업과 명성도 복구해야 했다. CIT와 CIT의 전 소유주 매뉴팩처러스 하노버(Manufacturers Hanover)에서 43년 동안 잔뼈가 굵은 갬퍼는 “CIT가 타이코로부터 벗어나면서 타이코에 인수되기 전보다 훨씬 튼튼해졌다”고 자평했다.

어쨌든 CIT는 이제 정상을 되찾았다. CIT는 지난해 들어 9월까지 매출 25억 달러에 순이익 4억1,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에는 매출 28억 달러에 적자 69억 달러였다. 대손율을 대출잔액의 1.2%까지 줄인 덕에 반전된 것이다. 2002년엔 2%였다. CIT의 신임 사장 제프리 피크(Jeffrey Peek?6)는 “타이코와 상관없는 게 확실하다면 거래를 늘리고 싶다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피크는 올해 안에 갬퍼의 후임을 맡을 예정이다.
갬퍼가 보카러턴에서 돌아왔을 때 사태는 더 악화해 있었다. 타이코의 주가와 채권 가격이 급락하자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는 CIT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당시 시장상황은 에너지업체 엔론(Enron) 사태로 공황을 방불케 했다. 그런 판에 신용등급까지 하향조정돼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 85억 달러의 상환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갬퍼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조셉 리온(Joseph Leone)은 투자금융 담당자들을 모아놓고 해법 모색에 나섰다. 리온은 당시 상황에 대해 “회의 때마다 모두 신경이 곤두섰다”고 회상했다. 묘안은 전혀 없었다. 신용한도액 85억 달러를 모두 인출하는 것은 매우 불길한 일 같았다. 신용한도액을 모두 인출하고도 살아남은 금융기관은 없었기 때문이다. 가용자금으로 반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대출채권의 유가증권화로 메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역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20분 동안 논의가 진행된 끝에 갬퍼는 첫째 대안을 택했다.

첫째 대안이 채택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대다수 채권자는 안도하는 듯했다. 그러나 불안감은 한동안 계속 이어져 전화로 조기 상환을 요구하는 채권자도 있었다. 담당자가 만기에 상환받을 것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소비자 금융 부문의 델 파이낸셜 서비시스(Dell Financial Services), 중소기업 금융 부문의 아바야(Avaya)처럼 오랫동안 거래해온 고객들과 계속 협상한 덕에 CIT는 점차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2002년 6월 어느날, 타이코의 CFO 마크 스워츠(Mark Swartz)가 집에 있던 갬퍼에게 전화했다. 코즐로스키가 고가 미술품 매입을 둘러싸고 탈세 혐의로 기소됐다는 것이다. 70억 달러를 끌어모으리라 생각했던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불가능해 진 것. 3주 뒤 타이코는 CIT를 46억 달러에 매각했다. 1년 전 매입가의 절반이었다.

타이코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1908년 설립된 자동차 할부금융의 원조 CIT는 아직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2002년 12월 유나이티드 항공(United Airlines)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뒤 12억 달러 상당의 DIP 금융을 물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CIT의 기업 신용 담당 빅터 루소(Victor Russo)가 개입했다. 갬퍼는 그에게 3억 달러를 승인해줬다. 루소는 뱅크원(Bank One)갘P 모건 체이스(J.P. Morgan Chase) ·시티그룹(Citigroup)에 신디케이트론을 제안했다. CIT는 수수료 500만 달러에 주간사로 나설 생각이었다.

루소와 변호사들, 구조조정 금융 및 항공기 리스 전문가들은 나흘 동안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검토했다. 평가는 유나이티드의 비행기 부품 재고 가치부터 시작했다. CIT는 다른 은행들을 설득하기 위해 긍정적인 자료들을 취합했다. CIT는 유나이티드에 항공기를 임대해준 업체들이 임대 계약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며, 고객들이 유나이티드 항공편을 계속 이용할 것이고, 임금삭감에 반대하던 노조도 ‘전투에서 이기되 전쟁에서 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설득했다.
루소는 유나이티드의 가치가 값진 국제 노선에 있다고 판단했다. CIT는 2억 달러의 대출채권을 15개 은행에 넘기고 나머지만 자사가 보유했다. 이것이 짭짤한 거래였다는 것은 곧 증명됐다. 유나이티드가 이제 거의 정상화됐기 때문이다.

피크는 위기관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훈련받은 CEO가 될 것이다. 이는 CIT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CIT는 팩터링에 힘쓸 전망이다. 최근에는 GE 파이낸셜의 팩터링 부문(자산 규모 4억4,600만 달러)을 인수했다. 게다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당수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서비스도 확대할 계획이다.
피크는 메릴린치(Merrill Lynch)에서 18년 동안 일했다. 투자금융에서 시작해 퇴사 직전 자산 관리를 책임졌다. 그는 스탠리 오닐(Stanley O’Neal)과 CEO 자리를 놓고 경쟁하다 패하면서 메릴린치에서 물러났다. 비웃음을 당한 피크와 상처 입은 CIT, 이제 뭔가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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