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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신동’, 그 의식의 흐름을 좇아서

‘야생의 신동’, 그 의식의 흐름을 좇아서


Portrait of the Daughter

극작가 새뮤얼 베켓이 1989년 세상을 떠났을 때 유고(遺稿) 사이에서 은빛 비늘로 된 옷을 입고 야성적으로 춤추는 여성의 사진이 발견됐다. 베켓이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딸 루시아와 가졌던 연애에 대한 기념으로 60년 이상 보관한 사진이었다. 조이스는 딸 루시아를 ‘야생의 신동’으로 자신에게 시적 영감을 주는 음울한 ‘뮤즈’로 간주했다.

사춘기 시절 루시아는 아버지가 마지막 소설 ‘피네간의 경야’를 집필하는 동안 그와 한 방에서 지냈다. 조이스는 1934년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이든 그것은 루시아의 뇌에서 불꽃을 일으켰다”고 썼다. 그러나 세간의 평은 달랐다. 20세기 문학사에서 루시아는 조이스 가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문제아로 묘사됐다. T. S. 엘리엇의 아내 비비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 자살한 페미니스트 시인 실비아 플라스처럼 괴벽스럽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성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존의 평가를 부인하는 두 작품이 나왔다. 마이클 헤이스팅스의 새 웨스트 엔드 연극 ‘칼리코’와 루시아의 생애를 재평가한 캐럴 슐로스의 근저 ‘루시아 조이스: 경야에서의 댄스’(Lucia Joyce: To Dance in the Wake)가 그것이다. 둘다 루시아가 시인이요, 삽화가일 뿐만 아니라 현대 무용의 선구자로서 창의력을 평가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난잡한 성행위·폭력·욕설 등 루시아의 증상에 대해 의사들은 ‘정신분열증’에서부터 ‘별 것 아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헤이스팅스의 연극에서는 그런 증상들이 루시아가 집안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면서 생겨난 당연한 결과로 해석한다. 제임스 조이스를 연구한 리처드 엘먼과 조이스의 아내 노라에 대한 연구서를 낸 브렌다 매덕스 등 이전의 전기작가들은 루시아가 가진 병이나 루시아가 성년기 대부분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이유를 파헤치지 못했다.

슐로스도 루시아의 정서적 불안정을 성장 환경탓으로 돌린다. 제임스 조이스는 “명확한 언어, 틀에 박힌 문법, 역동적인 플롯을 통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 의식의 모호한 영역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루시아를 작품 소재로 간주한 조이스가 그녀를 끊임없이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루시아의 자유분방하고 불온스러운 언행은 광기로 해석돼 갔다고 슐로스는 지적한다.

루시아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취리히·파리·더블린·런던으로 옮겨다니는 바람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슐로스는 1934년 루시아를 잠시 치료했던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말을 인용한다. 조이스 부녀는 강바닥으로 향하는 두 사람이었으며, 다른 점이 있다면 조이스가 자의로 다이빙을 택한 반면 루시아는 그냥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슐로스는 조이스 일가와 루시아에 관한 자료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조이스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빈틈없이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티븐 조이스(루시아의 동생 조지오의 아들로 조부의 유산 관리자)는 2000년 조이스 작품의 독서회 주최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 정부와 예술기관에 편지를 보내 올 여름 조이스의 획기적인 작품 ‘율리시즈’의 시간적 배경이 된 1904년 6월 16일 ‘블룸스데이’의 1백주년 기념행사 동안 저작권 침해가 있을 경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슐로스는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으며 어렵게 수집한 자료들을 자신의 책에서 삭제하느라 몇년을 고생했다. 그에 대해 스티븐 조이스의 아내 솔랑즈는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 임무에는 루시아의 편지 가운데 일부를 파기하는 것도 포함됐다. 헤이스팅스는 “[그 결과] 루시아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티븐 조이스는 1998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아들 마이클과 에즈라 파운드의 딸 메리 드 라슈윌츠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루시아의 편지들을 직접 파기했다고 발표했다. 스티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탐욕스러운 눈과 손가락이 그 편지들에 닿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피네간의 경야’를 통해 가족들이 숨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힌트를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조이스의 서정적인 산문은 스타일과 내용 면에서 금기를 깼다. 게다가 딸 루시아와 함께 열정을 바친 이 소설의 핵심에는 근친상간이 자리잡고 있다. 조이스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들 부녀간의 관계에 대한 추측이 무성한 것도 그 때문이다. 슐로스는 “서로 강렬한 감정을 주고 받았지만 근친상간의 물증은 없다”고 말했다. 헤이스팅스와 슐로스는 루시아의 극적인 삶을 역사로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가 파기됐고 많은 자료들이 저작권에 묶여 있기 때문에 루시아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비치는 이미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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