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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현대그룹]“박기수에게 해운업을 가르쳐라”

[秘話 현대그룹]“박기수에게 해운업을 가르쳐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지난해 8월 고 정몽헌 회장과 마지막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진 박기수 사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 의해 현대상선에 낙하산 인사로 배치된 박기수씨는 정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적선동에 있는 현대상선 본사.
현대상선의 장철순 부회장은 차장 시절인 198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미주본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고등학교 친구인 박기수 사장을 데리고 왔다. 정회장은 매우 쑥스러운 듯 장철순 부회장에게 다가왔다. “장선배! 이 친구에게 해운업을 좀 가르쳐 주세요.” 정회장은 연세대 선배인 장철순 부회장을 꼭 ‘선배’라고 불렀다. 정회장은 당시 박기수를 미주본부에 입사시켜 과장 자리를 내줬다.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셈이다. 현대그룹에서는 유례가 없는 ‘낙하산’ 입사였다.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밀려오는 외부 청탁을 우려해 절대로 공채 이외의 방법으로 사람을 뽑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박기수를 입사시켜 장철순 부회장에게 맡긴 셈이다. “박기수 사장의 경력을 보니 중앙대 기계과 출신이었다. 그래서 컨테이너 기계관리를 해보라고 했다.”

“박세용 회장이 자르려고 했다” 장철순 부회장의 회고는 이어진다. “박기수 사장은 성격이 독특했다. 현대상선 내에서 융화가 잘 안 됐다. 그래서 컨테이너사업부 사람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박세용 회장이 현대상선 대표이사로 있을 때 한번은 박기수 사장을 자르려고 했다. 그런데 정회장이 그를 감싸서 박세용 회장도 결국 자르지 못했다.” 고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 본사에서 투신자살한 날로 추정되는 지난해 8월3일. 정회장은 가족과 함께 서울 강남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가족 아닌 외부인이 한명 끼어 있었다. 바로 박기수 사장이었다. 정회장은 가족과 저녁을 먹기 전에도 박기수 사장을 그의 숙소인 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그런 뒤 그는 정회장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갔다. 정회장의 미망인인 현정은 회장도 이 자리에 있었다. 정회장은 저녁을 끝낸 뒤 가족을 먼저 보냈다. 그는 박기수 사장과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회장의 단골 술집인 서울 강남의 ‘위바’였다. 두 사람은 와인을 나눠 마셨다. 정회장은 와인 매니어였다. 술자리가 끝난 뒤 자신의 차로 박기수 사장을 하얏트호텔까지 데려다줬다. 그런 뒤 정회장은 현대그룹 본사 사옥에 와서 투신자살했다. 따라서 박기수 사장은 정회장이 자살하기 직전까지 대화를 나눈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정회장의 자살 이유를 밝힐 수 있는 ‘비밀의 열쇠’를 쥔 셈이다. 정회장의 자살 뒤 그는 한국 경찰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 검찰과 경찰은 “그가 특이점이 없는 데다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며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다. 그런 뒤 그는 두달 가까이 미국 현지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러자 의혹은 더 커졌다. 특히 정회장은 자살 직전 마지막으로 미국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박기수 사장과 함께 했다. 그런데도 그가 자살하던 날 다시 박기수 사장을 긴급히 불러 뭔가를 논의했던 것이다. 당시 박기수 사장은 자신의 생일(8월2일)임에도 서둘러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에 있는 가족과의 생일파티 약속도 펑크를 냈다. 정회장과 급박하게 논의해야 할 속사정이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보성고 출신 7인 멤버 도대체 박기수 사장의 정체는 뭘까? 박기수 사장은 원래 현대그룹 내에서 ‘미스터리 현대맨’이었다. 그는 서울 보성고를 나왔다. 정회장과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다. 박기수 사장은 중앙대를 나왔다. 그는 7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가 시민권까지 얻었다. 이후 뉴욕의 ㈜대우에서 웨어하우스매니저(창고관리인)로 근무했다. “미국에서 거의 ‘밑바닥’부터 시작한 셈이다”는 게 주변인들의 말이다. 보성고 동창생인 한 언론계 인사의 설명이다. “보성고에 들어갔더니 정몽헌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잣집 아들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의 담장이 시멘트 벽으로 새단장됐다. 정몽헌 아버지가 시멘트를 학교에 기부했다. 당시는 시멘트만 학교에 줘도 엄청난 기부였다. 그 후로 정몽헌이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부 눈치 빠른 친구들이 그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정몽헌은 워낙 말이 적었다. ‘샤이’(부끄러움을 타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몽헌은 박기수·전동수·이정호 등과 친해져 있었다. 이들이 정몽헌의 친구 그룹이다. 그런데 그들의 면면을 봐라. 솔직히 말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 그룹은 아니었다.” 장철순 부회장의 설명도 비슷하다. “현대상선 내부에서도 웬만한 사람들은 박기수 사장이 ‘보성고 출신 7인 멤버’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전동수 사장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이정호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산호세에 사는 정회장의 친구다. 그는 대학도 안 다닌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현대택배의 미국 에이전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정회장이 보살핀 친구 그룹으로 봐야 한다.” 정회장은 졸업 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 출장도 잦았다. 당연히 미국으로 이민 온 박기수 사장·이정호 사장을 현지에서 자주 만났다. 정회장은 어느 날 박기수 사장에게 현대상선으로 오라고 직접 권했다. 박기수 사장이 현대상선으로 직장을 옮긴 이유다. 그는 이후 20여년간 현대상선에서 근무했다. 미주본부의 부장·이사·상무를 거쳐 본부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현대상선 한 임원의 설명이다. “박기수 사장은 미주본부에서 본부장이 직접 통제하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출장을 다니면서도 회사 총무과에 의뢰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비행기표를 사는 등 베일에 가린 직원이었다.” 현대상선 임직원들의 출장은 회사에서 대부분 처리해 줬다. 그러나 박사장은 자신의 일정과 행선지를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비밀행보를 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2002년 초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전무로 승진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박기수 사장은 전무 승진 8개월 만에 돌연 해고됐다. 왜 그랬을까? 시간적으로 살펴보면 노정익 신임 사장이 장철순 부회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때다. 노정익 사장은 당시 임원급 20여명과 함께 박기수 사장을 해임했던 것이다. 박기수 사장의 해임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그의 행적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고교 동창인 정회장이 미국에 출장 오면 아무 말 없이 회사에서 사라졌다. 그는 정회장이 미국에 오면 함께 돌아다녔다는 게 현대상선 임직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현대 내에서는 그의 별명이 ‘용가리 통뼈’ ‘크렘린’으로 불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기수 사장은 현대상선 미주본부 임직원 등과 원만치 못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충식 전 사장과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상선 미주본부 전직 임원의 설명이다. “정회장이 미국에 왔을 때 운전대를 잡는 게(모시는 것을 지칭) 본부장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를 박기수 사장이 가로챘다. 김충식 사장이 본부장 시절에도 그랬다. 당연히 둘 사이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의 비자금을 만지면서 회사를 엉망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지적이다. 현대상선 전직 고위 임원의 설명이다. “노정익 사장이 취임했지만 박기수 사장(당시 전무)이 정회장과 직거래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몰랐다. 그는 현대상선 사장으로 들어온 뒤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섰다. 채권단의 강력한 구조조정과 인적 쇄신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채권단에서 미주본부에 있는 박기수 전무를 해고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에 앞서 김충식 사장은 정회장과 그의 가신그룹들과 감정싸움을 하고 나갔다. 김충식 사장은 사표를 낼 때 산업은행 총재와 금융감독위원장 등을 만났다. 현대상선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했던 것이다. 현대상선을 망치는 인물로 가신그룹과 함께 박기수 사장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노정익 사장이 취임하면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자 박기수 사장을 자르라고 한 거다. 노사장은 그에 대한 깊숙한 속사정을 몰랐던 것이다. 잘 모르니까 용감하게 자른 거로 보면 된다.” 또 다른 현대상선 고위 관계자 설명이다. “김충식 사장은 박기수 사장이 미국 내에서 비자금 조성 등에 깊숙이 개입해 현대그룹과 정회장을 망쳐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사실이 채권단에까지 알려져 2002년 그가 갑자기 해고되는 빌미가 된 것이다.”

정회장의 숨겨진 가신그룹 종합해 보면 김충식 사장이 정회장에게 불만을 품고 사표를 내면서 채권단에 가신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박기수 사장을 ‘숨겨진 가신그룹’으로 꺼낸 것이다. 그런데 정회장은 박기수 사장이 느닷없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게 현대상선 임직원들의 설명이다. 정회장은 그를 서둘러 챙겨줘야 했다. 정회장은 그를 현대상선의 미국 현지법인인 CUT(캘리포니아 유나이티드 터미널)와 WUT(워싱턴 유나이티드 터미널)의 이사회 회장으로 비밀리에 다시 임명했다. 박기수 사장이 현대그룹에서 보이지 않는 실세임을 또 한번 과시한 셈이다. 당시 현대상선 미주본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 내 현지법인들은 형식적으로는 현대상선이 대주주였지만 정회장이 개인적으로 직접 챙긴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그가 자살하기 직전 비밀리에 박기수 사장이 모두 챙기도록 인수인계한 셈이 됐다.” 따라서 이들 현지법인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일부 채권단과 현대상선 측의 반발도 있었다. 특히 회사 규모가 비교적 큰 CUT의 경우 박기수 사장이 대표이사를 겸임해 직접 경영에 나서도록 했기 때문이다. CUT는 WUT와 함께 현대상선의 미국 내 컨테이너 사업을 전담하는 알짜배기 회사다. 이들 회사는 각각 연간 매출 규모가 10억 달러(1조1,600억원)가 넘는 대형 회사다. 이들 회사는 그간 현대상선의 해외 비자금 조성 과정 등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아 왔다. 더구나 박기수 사장은 정회장의 자살을 전후로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의 또다른 핵심 인물로 떠오르고 있었다. 특히 현대상선의 미주본부 운임채권을 이용해 해외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도 받아왔다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현대상선의 미주본부 운임채권이란 본사와 지사 간 관계에서 생기는 자금 거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배가 다시 돌아올 때는 아시아 각국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 버는 돈은 현대상선 본사와 별도로 미주본부의 채권으로 잡힌다. 이 같은 운임매출채권은 연간 1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현대상선 미주본부는 2000년 당시 현대가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 측에 돈을 보낼 때 개입한 의혹을 샀다. 즉 현대상선이 보유 중이던 배를 판 돈과 용선(배를 빌리는 것) 과정에서 편법으로 빼돌린 돈의 일부까지 끌어들여 총 3억 달러를 북한에 추가로 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정회장이 자살한 뒤 검찰은 이 돈의 일부로 추정되는 3,000만 달러를 권노갑 의원에게 준 것으로 수사를 벌였다. 그는 또 현대그룹의 해외부동산 매각 등에도 개입한 것으로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2002년 미국 LA에 있는 미주법인 건물(12층짜리 건물)을 2,850만 달러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수 사장은 이 건물 매각작업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현대그룹의 해외부동산 거래를 중개한 김희영 사장의 설명이다. “현대상선 LA 건물은 처음에 박기수 사장과 3,300만 달러에 매매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정회장의 지시라며 외국 업체에 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제시한 금액보다 무려 450만 달러나 더 싼 값에 팔았더라. 박기수 사장은 일본계 변호사를 끼고 이 일을 처리했다. 해외부동산 거래대금의 일부를 비자금 등으로 전용할 때 쓰는 수법이다. 한국계 업체보다 비밀이 더 잘 보장되기 때문이다. 바로 비자금 문제다.” 정회장은 당시 이 문제가 시끄럽자 미국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현대상선의 재정난 해결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해외부동산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을 부인했다. 현대상선 측도 “지사 인력의 대부분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 지역으로 옮겨 필요없는 건물을 판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기수 사장의 비밀 행보에 대한 설명은 또 있다. 현대그룹 전직 임원의 말이다. “박기수 사장은 정회장을 등에 업고 현대상선뿐 아니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의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해 내부적으로도 말썽이 있었다.”

정회장 장례식장 나타나지 않아 이것은 또 무슨 말일까? 바로 박기수 사장과 그의 고등학교 친구인 전동수 사장의 관계를 말하는 부분이다. 전동수 사장은 이미 언급한 대로 정회장의 국내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한 인물이다. 박기수 사장을 잘 아는 현대상선 미주본부 전직 임원의 설명이다. “박기수 사장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전동수 현대엔터테인먼트 사장을 자주 언급했다. 박기수 사장은 현대전자에 대해 자신이 힘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전동수 사장 얘기를 꺼냈다. 정회장과 함께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친한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 두 사람도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들리는 소리로는 현대전자의 미국 내 사업까지 박기수 사장이 비밀리에 처리해 줬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 돈을 만지는 쪽이었다. 미국 내 회사 건물을 판다든지…. 모두 비자금 쪽이었다. 전동수 사장이 국내 비자금 문제에 연루됐다면, 박기수 사장은 해외 비자금 문제에 관여됐다고 보면 된다.” 박기수 사장은 지난해 정회장이 갑자기 자살하자 귀국한 지 이틀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정회장의 상가에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LA의 롱비치 사무실에도 두 달 정도 정상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리토스에 있는 자택에도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CUT의 부장이라고만 밝힌 사람의 말이다. “사장님은 장기출장 중이다. 정회장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한 상태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처지임을 이해해 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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