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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최신원 SKC 회장…“서로 도움 된다면 分家 논의할 것”

[특별인터뷰]최신원 SKC 회장…“서로 도움 된다면 分家 논의할 것”

최신원 SKC 회장.
최신원 회장의 집무실은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의 방을 반(半)쯤 옮겨놓은 듯하다. 최종건 회장의 초상화부터 사진·명패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형제간 협의를 거쳐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방향이라면 그룹의 분가(分家)를 논의하겠다.” SK그룹에서 분가 얘기가 나왔다. ‘형제간의 충분한 협의’ ‘SK네트웍스 정상화’ 같은 전제조건이 붙어 있지만 분가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종건 SK 창업주의 차남인 최신원(52) SKC 회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서로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분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다만 그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서는 형제들간의 충분한 협의, 그룹의 경영사정 등이 감안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오너경영인 가운데 분가에 대한 소견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재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인터뷰는 지난 5월27일 서울 을지로 내외빌딩에 있는 SK텔레시스 회장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그동안 최회장은 언론이나 재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밖으로 나서기보다는 신중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지요. 저희 집안 형제들이 대개 비슷합니다.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경영에 대한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맡고 있는 회사 경영은 어떻습니까. “아시다시피 SKC과 SK텔레시스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SKC의 2차전지 사업과 이동통신 단말기 관련 제조사업, 그리고 SK텔레시스의 이동통신 장비사업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먼저 SK유통을 맡았다가 2000년 초 SKC로 옮겼는 데요. “1997년 말 고 최종현 회장께서 부르더니 ‘SK유통을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으로 ‘찬스다’고 생각했지요. 개인적으로 83년부터 선경인더스트리 뉴욕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매년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쇼에 참가해 정보기술(IT)의 신조류를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예 알겠습니다’고 대답했지요. 97년 매출 5,600억원 하던 이 회사를 98년 1조3,000억원, 99년 2조4,000억원짜리 회사로 키웠습니다. 계열사 가운데 SK텔레콤 다음으로 성적이 좋았어요.”

이 회사는 곧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에 합병되지요. “그게 99년 말입니다. 당시 SK글로벌 유동성 문제가 터지자 그룹에서 찾아왔어요. ‘SK글로벌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SK유통과 합병시켜야 한다’고 하더군요. 고민이 많았지만 가족 협의를 거쳐 SK유통을 포기했습니다. 그 다음에 SKC로 옮겨 왔지요.”

일부에서는 회장께서 보여준 경영실적에 대해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기업 최고경영자의 능력이란 것은 결국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기업활동에 나선 것이 6년밖에 안 됩니다. 이전에는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SK유통과 SKC 모두 내가 맡고부터 훨씬 좋은 실적을 내고 있어요. ‘2타수 2안타’인데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여기서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말은 손길승 전 SK 회장이 자신의 길을 가로막았다는 뜻이다. 손 전 회장은 최회장에게 하나의 장벽이었다. 최회장은 “알게 모르게 손회장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그는 최종건 창업회장 평전 발간기념식 때가 가장 섭섭했다고 말했다. 최회장은 지난해 11월 최종건 회장 30주기에 맞춰 평전을 펴낸 바 있다. “발간 기념식을 알리는 초청장까지 보낸 상태였는데 날짜를 연기하자는 겁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면서….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제사도 연기하느냐’고. 결국 뒤로 물러납디다.”

지금은 손 전 회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손회장이 구속 상태인 사실을 감안한 듯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지금은 내가 더 편한 사람 아닙니까. 능력이 많은 분인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덕과 신의입니다. 손회장은 덕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문경영인 얘기는 자연스럽게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 쪽으로 흘렀다. 표 전 사장은 SK텔레콤의 산 증인이기도 하지만 최회장에게는 “벌말(경기도 수원)에서 같이 자란 고종사촌 동생”이기도 하다. 지금도 최회장은 표 전 사장을 ‘아영아’ ‘문수야’라고 부른다. 아영은 표 전 사장 장녀의 이름이다. 표 전 사장 얘기가 나오자 최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사진을 한장 가지고 왔다. 프랑스 앵발리드박물관에서 두 사람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표 전 사장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은 것이 걱정 하나 없이 휴가를 즐기는 얼굴이었다. 최회장은 지난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CeBIT) 전시회를 마치고 유럽을 여행할 때라고 소개했다. 표 전 사장이 SK텔레콤 사장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도 안 지난 때였다. “위로도 할 겸, 전자박람회도 둘러볼 겸 다녀왔지요. 당시 결정(3월 SK텔레콤 주총에서 최태원 오너 일가가 퇴진한 사실을 일컫는다)은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발전을 위해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으로 이해합니다. 다만 통신업계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질과 능력이 검증된 ‘장수’(將帥)가 일찍 물러난 점은 매우 안타깝지요.” 최회장은 표 전 사장에 대해 “나중에 꼭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시련 컸던 만큼 福도 많을 것” 지난해는 SK가 창립 5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였다. 한편으론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SK네트웍스 분식과 최태원 회장 구속, 대선 비자금 파문 등으로 모진 시련을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형님이 돌아가신 후 갑자기 집안의 윗사람 역할을 맡게 됐는데…. 그룹의 어른으로서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했지요.” 상처가 아물면서 SK는 최태원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친정체제를 강화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근 최태원 SK㈜ 회장은 ‘뉴SK’를 내걸면서 대내외 행보를 활발히 하고 있다.

‘뉴SK’ 기치 아래 최태원 회장 친정체제가 가동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시련이 컸었던 만큼 복(福)도 많아야지요. 이런 시련이 최태원 회장으로선 그룹을 이끌어가는데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회장의 활발한 활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형제간에 불협화음은 없습니까. “최태원 회장이 그룹 경영과 관련해 일을 잘 하고 있고, 내가 옆에서 나서면 모양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해서는 최태원 회장이 잘 알아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게 돕고 싶어요. 이번에 SK케미칼 주식을 사들인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그룹의 경영권을 방어하자는 차원이지요. 최태원 회장이 나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 언제든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입니다.”

SK는 굵직한 현안을 가족 모임을 통해 결정한다고 들었습니다. 가족 모임은 어떻게 하십니까. “집안에 제사가 많아요. 1년에 10번이니까 거의 한달에 한번꼴이지요. 형님이 돌아가셨지만 언제나 서초동 형수님 댁에 모이는데, 해외 출장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100% 출석합니다. 제사를 모시는 자리가 가족 모임이라고 보면 됩니다.”

선친의 유작(遺作)이라고 할 수 있는 워커힐호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워커힐은 고 최종건 회장께서 마지막으로 인수한 기업입니다. 호텔을 인수한 것이 73년 3월인데 선친께서는 같은 해 11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쉽게도 향후 경영이나 비전 등의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셨지요. 그러다 보니 자식 된 입장에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워커힐은 SK네트웍스 정상화를 위해 최태원 회장이 사재를 출연함으로써 매각이 진행 중입니다. 우연하게도 선친의 ‘마지막 사업’이 30년 후 그룹의 최대 현안인 SK네트웍스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된 것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물리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갈량이 죽음까지 염두에 두고 일을 계획했다는 것인데, 워커힐에 이 비유가 딱 들어맞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직접 워커힐을 인수해 경영할 의지가 있으신 건가요? “독자적으로 인수하기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러나 워커힐에 대해 나와 뜻을 같이하는 곳이 있다면 협의해 볼 수 있으며, 좋은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채권단 측 일각에서는 최태원 회장 일가에는 팔 수 없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각의 차이 아닌가요. 채권단은 워커힐 매각을 통해 궁극적으로 SK네트웍스의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당사자인 워커힐 임직원 등은 가급적이면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에 매각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삼성·현대를 비롯해 한진·동양 등에서 분가가 이뤄졌습니다. 2세대로 넘어오면서 분가는 기업사(史)에서 자연스런 것으로 이해됩니다. “반면에 두산 같은 경우도 있잖습니까. 100년 넘게 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분가라는 말이 한번도 나온 적이 없어요. 지적한 대로 분가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다려주세요. 편안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룹에 걱정이 없을 때 나오는 거지요.”

“분가는 協力으로 가는 것”

이 말씀은 소버린 사태가 진정되고 SK네트웍스가 정상화되면 분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최씨 형제간의 분가 이야기가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최종건 회장이 돌아가셨을 때부터 조심스럽게 이런 얘기가 나왔고,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후부터는 재계에 단골로 나돌던 얘기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 마땅히 그래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에 모를 심어야 하는데 주변에서 모내기를 한다고 무작정 따라나설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이야기는 또 길어졌다. 최회장은 “분가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모습으로 진행돼야지,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저희 형제들간의 충분한 협의, 그리고 그룹의 내부 경영사정 등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 내내 최회장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분가가 협력으로 가는 것”이라며 “또 이 문제로 형제들이 갈등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최신원 회장은…> SK그룹은 고 최종건 회장이 지난 1953년 적산기업이었던 선경직물을 인수해 오늘에 이른 기업이다. 73년 최회장이 작고하면서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은 후 SK㈜·SK텔레콤 인수를 통해 재계 4위권으로 키웠다. 최종건 회장은 모두 7남매를 두었는데 최신원 SKC 회장은 차남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이 작고하면서부터 ‘원’(源) 자 돌림 형제들의 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최회장에 대해 세간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주로 미국지사에 근무하거나 사장보좌역을 지냈기 때문이다. CEO로서 본격적인 그룹 경영에 뛰어든 것은 6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회장의 말대로 그가 맡은 SK유통·SKC 등은 양호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기부금을 낼 때도 ‘최신원 SKC 회장’이 아니라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이름을 고집할 만큼 소박한 성격이다. ‘선경최종건장학회’를 만드는 등 선친의 유훈을 잇는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최신원 skc 회장> 1952년 수원 生
배문고·경희대 법학과 卒
88년 美 브랜다이스대학 경영학과 卒
88년 선경인더스트리 이사
94년 선경인더스트리 경영기획실 전무
94년 선경 사장보좌 겸 해외담당 전무
96년 선경 사장보좌 겸 직물·정보통신 부사장
98년 SK유통 대표이사 부회장
2000년∼現 SKC·SK텔레시스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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