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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탄저균과 전쟁 중

미국은 지금 탄저균과 전쟁 중

탄저균은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생화학 테러 병기다. 그렇다면 방어책은?그저 소규모 생명공학업체들이 미 정부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타내기만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기적의 위궤양 치료제 잔탁(Zantac)을 만드는 데 한몫한 바 있는 데이비드 라이트(David Wright)는 종이수건만으로 치명적인 생화학 테러에 맞서고 있다. 생명공학업체 파머신(Pharmathene)의 CEO 라이트는 칠판을 닦으며 “지우개조차 살 여유가 없다”고 농담하면서 “자금을 아끼면서 일을 점차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전 설립된 파머신은 지금까지 의약품을 생산해본 적이 없다. 직원 13명은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사무실에서 다른 10개 기업과 회의실을 함께 쓴다. 라이트가 하는 일은 탄저균 감염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 연구다. 2001년 미국인 22명이 우편물을 통해 탄저균에 감염됐다. 이들 가운데 5명이 며칠 만에 사망했을 정도로 탄저균은 매우 치명적이다. 파머신이 인간을 대상으로 안전 테스트에 나서기 위해서는 2,500만 달러가 더 필요하다.

파머신은 탄저균 백신이나 해독제를 개발하기 위해 애쓰는 가난하고 작은 생명공학업체 가운데 하나다. 탄저균은 미국에 대한 생화학 테러 병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탄저균 한 병이 도시지역 상공에 살포되면 시민 40만 명을 감염시킬 수 있다. 감염자 가운데 절반은 2주도 안 돼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지난 6월 9 ·11 위원회는 “알 카에다가 9 ·11테러 전 탄저균 생산능력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욱이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당면한 위협 가운데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탄저균 공격”이라는 조지 테닛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고를 인용했다.

탄저균은 대량 생산하기가 비교적 쉽다. 자연에서 발생해 토양에 서식하는 탄저균은 소나 양 같은 초식동물을 감염시킬 수 있다. 감염된 동물의 혈액에서 탄저균을 추출해 배양할 수 있다. 탄저균 공격은 감염자가 심각한 증상을 보이기 전까지 탐지해내기도 어렵다.

생화학 테러 위협이 심각한 나머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하순 ‘생물무기 방어 프로젝트(Project Bioshield)’ 법안에 서명했다. 56억 달러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없이 10년 동안 천연두 ·보툴리눔독소증 ·탄저균 치료약을 비축하는 프로젝트다. 올 가을 미 정부는 탄저균 해독제 비축에 수억 달러, 백신 구매에 14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의회예산국(CBO)은 10년에 걸쳐 8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미 국립보건원(NIH)은 생물무기 방어에 16억 달러를 따로 지출할 계획이다. 2002년의 경우 2억9,100만 달러였다. 그 정도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영국의 소기업 어캠비스(Acambis)에 새로운 천연두 백신 연구용으로 5억 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 백신 안전시험에서 심장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테스트는 계속되고 있지만 신규 시험 대상 모집이 지난 4월 중단됐다. 대형 제약업체들에게 정부의 예산은 필요 없다.

이들 업체는 2001년 탄저균 공격 당시 미국 보건복지부가 독일 제약사 바이엘(Bayer)에 항생제 시프로(Cipro) 값을 대폭 할인하라고 강요하자 경악하고 말았다. 피츠버그 대학 생화학안전센터는 22개 대규모 제약업체 ·생명공학업제가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의약품 506종 가운데 겨우 32종이 감염성 질환에 효과를 발휘한다고 발표했다. 그 가운데 절반이 에이즈 치료제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NV-CA)는 9 ·11테러 이래 벤처자금 가운데 생물무기 방어에 투자된 것은 2% 뿐이라고 밝혔다.

미 상원 의원 조셉 리버맨(민주 ·코네티컷주)과 오린 해치(공화 ·유타주)는 대형 제약업체들의 관심을 끌려면 당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물무기 방어 제품에 대한 세제혜택과 포괄적 면책을 예로 들 수 있다. 리버맨과 해치는 생물무기 방어 의약품을 개발한 기업에 고혈압 ·가슴앓이 치료제 같은 베스트셀러의 특허 만료 기간도 2~3년 유예해주는 방법까지 제안하고 있다.

현재 유일한 탄저균 백신인 바이오포트(BioPort)의 바이오스랙스(Biothrax)는 면역력을 형성하기 위해 18개월 동안 다량 접종해야 한다. 이는 좀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미군이 접종을 거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브리즈번에 있는 백스젠(VaxGen)과 영국의 아베시아(Avecia)가 제조한 두 백신은 현재 임상실험 중이다. 접종기간을 3개월 정도로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NIH는 이번 연구에 2억 달러를 지원했다.

9 ·11테러 전 탄저균 감염 치료법은 없었다. 1999년 미 상원 군사위원회의 존 워너(공화 ·버지니아주) 위원장은 한때 카터 정부에 몸담았던 민간투자자 조엘 매클리어리(Joel McCleary)에게 자문을 구했다. 매클리어리는 하버드 의대 자문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미생물학자 존 콜리어(John Collier)와 만났다. 수년 동안 탄저균을 연구해 온 콜리어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의약품 개발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콜리어와 그의 동료들은 단백질 제품을 연구하고 있었다. 탄저균 박테리아의 치명적인 독소가 세포막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단백질이다. 매클리어리와 콜리어는 사명을 파머신으로 정했다. 그리고 2001년 탄저균 공격 직후 미 국방부로부터 1,3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매클리어리와 콜리어는 글락소(Glaxo)에서 마케팅 책임자로 일한 바 있는 라이트를 지난해 CEO에 앉혔다. 딕 체니 부통령의 친구 제임스 캐버너프(James Cavanaugh)가 운용하는 자산 10억 달러짜리 펀드 헬스케어 벤처스(Healthcare Ventures)로부터 1,500만 달러를 더 끌어들이기도 했다. 파머신의 제품은 동물실험에서 성공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돼야 한다. 단점은 나흘 동안 6시간마다 정맥으로 주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해법을 내놓은 기타 많은 중소기업이 생물무기 방어 프로젝트 예산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뉴욕 소재 엔지바이오틱스(Enzybiotics)는 미 국방부로부터 4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엔지바이오틱스는 록펠러 대학의 빈센트 피세티 박사가 발견한 라이신(lysine) 효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라이신은 탄저균 박테리아가 독소를 생산하기 전 공격해 박멸한다.

휴먼 지놈 사이언시스(HGS)는 AB스랙스(ABthrax)를 생산하고 있다. AB스랙스는 보호항원이 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는 항체다. HGS는 탄저균에 노출된 뒤 12시간 안에 한 번만 주사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AB스랙스의 부작용은 미미했다. “알 카에다가 비밀리에 러시아의 각기 다른 탄저균 26종을 노릴지도 모른다. 많은 치료제를 비축해야 한다. 탄저균 탈취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머신의 매클리어리 회장이 던진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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