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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의 원시적 환상미

열대우림의 원시적 환상미

서부아프리카의 풍요로운 땅 코트디부아르. 그러나 이곳은 평화로운 외관과 달리 정치 ·경제 불안으로 무법천지다. 그나마 평화가 깃든 곳이 있으니 더 없이 아름다운 골프코스가 그것이다.
오지의 소수 종족을 찾아가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휩싸인다.
물 건너 넓은 땅을 두고 왜 이런 물 위에서 살아갈까. 산 너머 기름진 땅을 두고 왜 이런 바위투성이 산꼭대기에서 살고 있을까. 척박한 황무지나 물 위에 사는 소수 종족은 대부분 부족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거나 전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고향땅에서 쫓겨난 힘없고 순해 빠진 종족의 후손들이다.

서부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Cote d’Ivoire ·영어로는 아이보리코스트)의 아이지(Ahizi)족도 그런 종족이다. 아이지족들의 얼굴을 보면 도대체 악기(惡氣)라고는 하나도 없다. 커다란 눈망울에 고함이라도 치면 놀라서 펄쩍 뛸 것 같은 겁 많은 부족이다. 이들이 사는 곳은 수도 아비장(Abidjan)에서 서쪽으로 105km 떨어진 티에그바(Tiegba)란 조그만 반 수상가옥 마을이다. 이 마을은 에브리에(Ebrie) 라군에 있는 작은 섬이다. 라군(Lagoon)은 해안 가까이 있는 호수를 말한다.

파도나 해풍, 내륙 쪽에서 흘러오는 하천 또는 산호초의 영향으로 바닷가에 둑이 쌓이며 자연적으로 안쪽에 물이 고여 바다와는 둑으로 분리된다. 이 나라 남해안을 따라 길게 누워있는 에브리에 라군은 그 길이가 무려 150km나 된다. 이 라군 서쪽 끝에 6만 평쯤 되는 작은 섬 티에그바가 있다.
17세기 아이지 부족은 코트디부아르 중부의 기름진 땅에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 쫓기고 쫓겨 더 갈 곳 없는 남쪽 끝 바닷가 라군의 작은 섬까지 밀려왔다. 그들은 농사도 짓고 라군에서 고기 잡는 법도 터득했다. 농사꾼들이 능숙한 어부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세월이 소요됐다.

그들은 이 작은 섬마을을 티에그바라 이름 지었다. 티에그바란 아이지 말로 ‘전쟁은 그만’이란 뜻이다. 외세의 침입으로 수많은 동족이 죽었고 기름지고 정든 고향땅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들은 멸족되지 않고 머나먼 남쪽 바닷가 라군의 섬에 정착해 삶을 이어가고 자손을 퍼뜨려 대를 이어왔다.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섬마을엔 6,000여 명의 아이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산 위에도 살고, 골짜기에도 살고, 물 위에서도 산다. 그들은 철저한 분업 형태다. 골짜기와 산 위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운다. 주로 뿌리가 전분 덩어리로 뭉쳐지는 카사바(cassava)와 타로 ·고구마 ·옥수수를 농사 짓고 물 위에 사는 사람들은 고기를 잡는다. 라군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아지족에게는 좋은 어장이다. 작은 보트로 그물을 던져도 언제나 풍성한 어획량을 올린다.

농산물과 물고기는 물물교환이 돼 농사꾼들은 단백질을 얻고 어부들은 전분을 얻는다. 그들은 물물교환을 하고도 남은 어획량은 대처에서 온 고깃배에 도매로 넘겨받은 돈으로 일용잡화를 산다. 그들은 대대로 내려오며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먹고 남은 카사바는 갈아서 압착하면 아미동(Amidon)이란 흰색 염료가 된다. 흑인들은 흰색을 좋아해 아미동은 꽤 비싼 값에 팔린다.

바나나를 찧어서 ‘푸투’라는 떡도 만들어 먹는다. 코코아 열매의 기름과 풀을 태운 재를 썩혀 비누를 만드는 것도 그들 조상의 생활 지혜에서 나온 발견이다. 팜트리(Palm Tree)를 잘라 넘어뜨린 후 남은 밑동에 대롱을 박으면 한 동이나 되는 수액이 나온다. 그 수액을 아무 가공 없이 그냥 두면 하룻밤 사이에 그 수액은 스스로 발효되어 달콤새콤한 술이 된다. 방기(Bangui)라 부르는 이 술은 그들 말로 맑은 술(White Wine)이라는 뜻이다. 알코올 도수 5~6도쯤 되는 이 술은 입에 짝 달라붙어서 마셨다 하면 잔을 놓을 줄 모른다.

이들은 모든 걸 자급자족 해왔지만 현대 문명이 이곳에도 스며들어 이들은 잉여 생산물을 대처에 내다팔아 조상이 상상도 못한 문명의 이기들을 들여온다.
시계 ·라디오 ·신발 ·화장품 ·석유…. 이뿐 아니라 몇 년 전부터는 전기가 들어오면서 TV ·냉장고까지 들어오고 있다. 이 섬의 한복판엔 터미널리아 알티시마란 고목이 한 그루 서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 서당 뒤에 있는 당목쯤 될까. 3년에 한 번씩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 모여 산돼지를 잡아 제사를 올리며 이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한다. 이 나무 아래 그늘은 재판정이 되기도 한다.

두 집안에 다툼이 생기면 추장은 두 집안 사람을 이 나무 아래로 불러 재판을 하고 화해를 시킨다. 두 집안은 추장의 재판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웃는 낯으로 서로 손을 잡는다. 여자는 이 신성한 나무 아래에 앉을 수 없다. 평온한 티에그바에서 두어 시간 동쪽으로 가면 지옥이 나타난다.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 여행하기에 가장 위험한 도시.’ 배낭여행 가이드북의 바이블이라 일컫는 <론리 플래닛> (Lonely Planet)은 아비장을 이렇게 질타하고 있다. 1970년대엔 ‘아프리카의 파리’라 불리던 아비장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남한의 세 배가 넘는 이 나라는 서부아프리카에서 가장 비옥한 땅에 물도 풍부해 온갖 농산물이 풍성하다.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세계 3위, 코코아는 세계 1위, 파인애플 ·야자유는 아프리카 1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지난 70년대 이 나라의 농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부흥은 아프리카의 기적이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이 나라 독립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인 우프레가 철권통치로 장기집권하면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보여줬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적으로 불황이 닥치면서 이 나라엔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경제는 무너지고 쿠데타로 정변은 소용돌이쳤다. 치안상태는 엉망이 됐다.

아비장에는 강도가 들끓고 경찰이 강도보다 더 시민의 등을 쳤다. 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나고, 악취가 진동하는 무법천지가 됐다. 그러나 아비장에도 평화가 깃든 한 곳이 있다. 골프코스.
아비장은 물의 도시다. 에브리에 라군이 이 아름다운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구석구석 가지처럼 내륙을 파고들었다. 레 플레토에서 건너편 호반에 우뚝 선 아프리카 최고의 호텔 이부아르(Ivoire)를 보는 것은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호텔 이부아르가 자매 호텔인 호텔골프(Hotel Golf)를 리비에라 지역 호반에 신축하고 그 뒤 열대우림 속에 이부아르 GC를 조성했다. 아름드리 열대림이 솟아올랐고, 그 아래로 정글이 하늘을 가렸다. 그 사이로 비단결 같은 페어웨이가 이어졌다. 숲 속에서는 온갖 종류의 새가 지저귀고 있다. 열대의 꽃은 푸른 바탕에 붉게, 노랗게 수를 놓았다.

챔피언십 코스 18홀의 분위기는 세 번 변한다. 열대우림 정글 사이를 뚫고 업힐, 다운힐로 이어지던 페어웨이는 광활한 초원으로 바뀐다. 그림 같은 호수와 수로를 따라 야자수가 미풍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평원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망고나무가 도열한 페어웨이로 이어진다.
이 골프코스를 바라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티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온갖 장애물이 골퍼의 가슴을 방망이질한다. 우선 아름드리 열대우림 속으로 공이 들어가면 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무성한 가지들은 페어웨이 위까지 뻗어있어 탄도를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페어웨이, 그린과 함께 러프도 버뮤다그래스라 공이 빠지면 찾기도 곤란하고 고래 심줄 같은 잔디 줄기가 실타래처럼 엉겨 있어 클럽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악명높은 수많은 워터해저드도 공포 그 자체다. 원래 이곳은 늪지대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워터해저드에 악어들이 우글댔는데 골퍼들의 안전을 위해 거의 다 사살하고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아 있다.

실제 물에 빠진 공을 주우려 워터해저드에 들어갔던 캐디 두 명이 악어 밥이 되었다. 골퍼들도 굴러서 워터해저드에 빠진 공을 팔을 뻗어 아이언으로 주우려다 악어의 공격을 받은 적이 수없이 많았다.
열대정글도 많이 베어냈다. 악어와 뱀과 전갈의 위험에서 골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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