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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도요타 경영에서 배운다⑬ “도요타는 일본 최고의 은행”

특별기획 : 도요타 경영에서 배운다⑬ “도요타는 일본 최고의 은행”

1조엔 도요타 순이익의 비결은 현장 작업자의 ‘가이젠’에서 나온다. 도요타는 내부 잉여금만 60조원으로 일본 최고의 은행으로 불린다.
삼성전자는 한국 기업 가운데 최고의 매출과 이익을 내는 회사다. 2003년 매출 45조원에 순이익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다른 기업이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결과다. 일본에선 도요타가 단연 ‘넘버원’이다. 도요타는 2003년 순이익 1조1,620억엔(한화 13조원, 미화 110억 달러)으로 지난해보다 55% 증가했다. 이는 미국 GM과 포드자동차의 순이익 합계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도요타의 지난해 순이익을 다른 세계적인 기업과 비교해 보자.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2003년도 순이익 랭킹에 적용하면 4위에 해당한다. 1위는 209억6,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린 엑슨 모빌, 2위는 씨티그룹(178억5,000만 달러), 3위 GE(155억9,000만 달러) 다음이다. 이 기간 매출액은 17조3,000억엔(190조원)으로 전년도 대비 11.6% 증가하며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업이익은 31% 늘어난 1조6,700억엔, 경상이익은 44% 많아진 1조7,700억엔으로 각각 집계됐다. 순이익이 이처럼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높은 경쟁력을 배경으로 세계 주요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2,500억엔이 넘는 비용절감을 통해 엔화 강세의 영향을 흡수했다. 도요타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1엔 오를 때마다 200억엔의 영업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도요타가 이 같은 영업 실적을 낸 데는 주특기인 비용절감의 괴력이 엔화 강세마저 무력하게 한 셈이다. 도요타는 2004회계연도 예상실적을 밝히지 않았으나 분석가들은 3.6% 증가한 18조엔의 매출액과 2.8% 늘어난 1조3,000억엔의 순이익을 점치고 있다. 이런 도요타의 실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도요타는 버블 경제가 깨진 1993년부터 매년 1조원씩의 원가절감을 해왔다. 10년이면 이것만 합쳐도 10조원에 달한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현장 작업자의 가이젠(改善)과 이를 빠르게 반영한 경영진의 절묘한 조화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기마다 빛나는 ‘가이젠’의 힘 자동차업계의 경우 엔달러 환율이 조금만 변동해도 이익이 크게 변동한다. 90년대 중반의 엔고 시기에 도요타의 환차손은 매년 1,000억엔에 달했다. 게다가 엔고가 시작되기 이전인 버블경제 붕괴 직후인 93년 3월의 일본의 한 월간지는 ‘도요타, 드디어 영업적자로 전락하는가’라는 특집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다. 큰 위기였다. 참고로 도요타는 50년 파업 이후 단 한번도 적자를 기록한 일이 없었다. 도요타의 경쟁력은 이런 위기 때 잘 드러난다. 당장 위기 극복에 착수한 도요타는 자동차 설계의 개선만으로도 93년부터 매년 평균 약 1,000억엔의 비용을 절감했다. 생산현장의 효율화까지 합하면 수천억엔을 절감해 환차손을 모두 흡수해 버린 것이다. 당시 도요타의 한 간부는 도요타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도요타는 일단 위기를 느끼면 단숨에 이를 극복해 내는 결집력이 있기 때문에 반년을 잘 넘기면 영업적자는 없어지고 불안도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순이익 1조엔이라는 결과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결과는 끊임없이 추구하는 ‘가이젠’의 힘이었다. 2003년 환차손이 1,400억엔인데 비해 원가절감으로 절약한 비용만 2,300억엔이었다. 다소의 환율변동에는 끄떡없는 체질이 된 것이다. 나고야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도요타는 제조업체라기보다는 일본 최대의 은행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다. 도요타는 제조업체다. 하지만 일부 경영학자는 도요타를 일본 최고의 은행으로 평가한다.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는데다 이런 이익을 유보금으로 쌓아 어떤 은행보다도 현금이 많고 현금흐름도 좋기 때문이다. 2004년 현재 하루 동원 가능한 현금만 15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한달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6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도요타는 2000년 이후 매년 1조엔(1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왔다. 이런 이익을 바탕으로 도요타의 유보자금은 60조원에 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어느 은행보다 현금이 많다. 하루 결제하는 현금만 3,000억원이나 된다. 도요타의 2001년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자. 경상이익이 1조엔인데 이 중 금융수익이 5,500억엔이다. 종업원 1인당으로 환산하면 263만엔이다. 종업원 평균 임금의 30% 정도를 이자 등 금융 수익으로 벌고 있다는 얘기다. 도요타는 매년 순이익의 30% 정도를 각종 설비투자에 쓴다. 그리고 주식 배당을 뺀 이익의 30%는 꼬박꼬박 안정된 금융자산에 투자한다. 일본 게이단렌 관계자는 “도요타의 재무제표를 보면 자동차회사보다는 은행에 가까울 정도로 현금이 많다”고 분석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요타의 부채 비율이다. ‘0%’다. 쉽게 말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들인 이익으로 투자를 한다. 남의 돈을 쓰는 것은 경영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 도요타 창업 일가의 정신이다. 0년 노동쟁의와 판매 부진 등으로 파산 위기에 닥쳤을 때 은행돈을 빌리기 위해 고생했던 전철 때문이다. 도요타의 부채비율 ‘0%’는 석유파동의 위기를 겪고 난 77년 달성했다. 재무제표에 차입금 계정이 없어진 것이다. 이후 꾸준히 금융 수익을 얻고 있다. 한국 기업 가운데 이자보상비율(용어설명 참조) ‘1’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인 현실을 비춰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자동차에만 전념 도요타는 엄청난 내부 유보금을 금융상품 가운데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이자를 보장하는 상품에 집중한다. 주식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 주식 투자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본업인 자동차 만들기를 게을리 할까 봐 그렇다. 운이 좋아 주식투자로 이익을 많이 남길 경우 본업인 자동차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닛산은 버블 경제가 깨진 후 여기저기 투자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자금난을 가속화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중반까지 한강의 기적 소리를 들으며 성장 신화를 이어가던 국내 대기업들이 본업 이외에 딴 곳으로 눈길을 돌려 송두리째 날린 자금이 얼마인가. 여기저기 벌여 놓은 부동산의 폭락과 잘 모르고 투자했던 해외 파생금융상품은 IMF 관리 체제를 맞으며 원금은커녕 수천억원의 빚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기업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런 경험에 비춰보면 본업 충실이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지 느낄 수 있다. 적어도 도요타에선 그런 위기는 없을 것이다. 빚이 없는 것도 대단하지만 잉여자금 60조원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세계에 얼마나 될까. 도요타가 이익을 내는 것은 쉽지만 적자를 내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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