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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넷게임 만든 평범한 '히어로'

비범한 넷게임 만든 평범한 '히어로'

마이클 루이스는 최고의 인터넷 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광선총보다 더 가공할 무기인 ‘이야기’로 만만치 않은 경쟁업체들을 따돌렸다.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2)는 여느 중소기업 소유주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직원이 너무 많은 건 아닐까. 다음은 어느 부문에 전력투구해야 할까. 얼음 갑옷을 입으면 레이저 시각도 갖춰야 하는 것 아닐까. 마지막 고민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노’다. 온라인 게임은 단순해야 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크립틱 스튜디오스(Cryptic Studios)가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함 때문이다. 크립틱은 루이스가 설립한 인터넷 게임 제작업체다. 크립틱이 개발한 멀티플레이어 인터넷 게임 〈시티 오브 히어로〉(City of Heroes)는 지난 4월 하순 첫 선을 보였다. 현재 이용자는 18만 명으로 매주 6,000명이 새로 가입하고 있다. 가입비로 선불 50달러에 월 이용료 15달러만 내면 자신만의 슈퍼 영웅을 만들어 가공할 무기로 무장시킨 뒤 가상 도시 ‘패러건’에서 숱한 악당과 싸울 수 있다.

〈시티 오브 히어로〉는 요즘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 가운데 하나다. 소설로 치면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로 치면 〈블레어 위치〉(Blair Witch Project) 라고나 할까. 루이스는 몇 년 전 그래픽 칩 제조업체를 매각해 1,700만 달러나 거머쥐었다. 그는 크립틱이 내년 초반부터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말처럼 예상보다 30%나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크립틱은 인터넷 게임의 대세를 거스르고 있다. 인터넷 게임은 애초 차세대 대박으로 요란스럽게 선전됐지만 지금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는 3,000만 달러나 들여 〈심스 온라인〉(Sims Online)의 개발·마케팅·지원에 나섰으나 사용자가 겨우 8만명을 기록하면서 풀이 죽고 말았다. 사용자들은 괴물이 없고 싸움도 없는 〈심스 온라인〉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루카스아츠(LucasArts)와 소니가 지난해 선보인 <스타워스 갤럭시스> (Star Wars Galaxies)는 게임 전문잡지 <컴퓨터 게이밍 월드> (Computer Gaming World)로부터 ‘올해 최악의 게임상’을 받았다. 우주선이 등장하지 않는데다 제다이가 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이 히트를 치면 돈은 절로 굴러들어오게 마련이다. 소니의 <에버퀘스트> (EverQuest)는 미국에서 잘나가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다. 출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가입자가 40만 명에 이를 정도다. 가입비 50달러에 매달 13달러만 내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많은 가입자가 세계 전역의 게이머와 수백 시간 게임을 하며 인스턴트 메시지, e메일, 인터넷 음성 연결 기능으로 대화한다. 소니는 <에버퀘스트> 로 8년 동안 최고 5억 달러까지 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에버퀘스트> 를 개발·구축하는데 3,000만 달러가 들었다. 연간 업데이트 비용은 1,400만 달러다.

만화, 신화, 첨단 제작기술을 한 데 융합한 결과 〈시티 오브 히어로〉는 성공할 수 있었다. 루이스는 250만 달러를 직접 투자하고 한국 게임 제작업체 엔씨소프트의 미국 내 자회사인 배급업체로부터 450만 달러도 융자받았다. 엔씨소프트는 3년전 1,800만 달러를 들여 〈시티 오브 히어로〉의 마케팅·운영을 맡으며 고객지원도 담당한 적이 있다.

〈시티 오브 히어로〉가 선보이기 전 18개월 동안 크립틱 직원 35명은 코드 48만 라인으로 생생한 그래픽과 스토리를 구현했다. 코드는 740개 명령파일로 나뉘어져 캐릭터에게 무한대(10의 27제곱)에 가까운 옷을 갈아 입히고 도시 상공도 날게 만들 수 있다. 게임에서 조작할 수 있는 그래픽 파일만 2만5,000개다. 게이머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3만 명의 악당이 가상도시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는 10개 서버를 통해 2기가헤르츠(GHz)짜리 AMD 칩 600개로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칩들은 세계 최대의 슈퍼컴퓨터와 맞먹는 4테라플롭(1테라플롭은 초당 1조 건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용량)을 관리할 수 있다.

루이스는 오랫동안 비디오 게임, 롤플레잉 게임의 원조격인 <던전 드래곤> (Dungeons and Dragons)을 즐겨왔다. 그는 1993년 렌슬러 공대(RPI)에서 컴퓨터 시스템 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그래픽 칩 제조업체 스텔라 세미컨덕터(Stellar Semiconductor)를 설립했다. 스텔라는 99년 6,000만 달러 상당에 브로드컴(Broadcom)에 매각됐다. 거래가 마무리될 즈음인 2000년 3월 주식가치는 1억6,8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어 곧 인터넷 거품이 터지고 말았다.

루이스는 1,700만 달러를 챙기고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물리화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브로드컴을 떠나기 전 어린 시절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 리처드 다칸(Richard Dakan)이 찾아왔다. 영웅들을 주제로 한 온라인 게임에 투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루이스는 비디오게임 제조업체 아타리(Atari)에서 일한 바 있는 엔지니어 브루스 로저스(Bruce Rogers)도 우연히 알게 됐다. 당시 로저스는 새로운 그래픽 엔진과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다칸·로저스와 의기투합했다.

루이스는 “직접 유통시킬 만큼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든지 아니면 좋은 조건으로 대형 게임업체에 판매할 생각이었다”고 들려줬다. 그는 크립틱의 이사직을 맡은 가운데 다칸과 로저스가 한창 작업 중일 때 UCLA에 다녔다.

다칸은 대학원 동창인 고전학자 잭 에머트(Jack Emmert)도 끌어들였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기존 캐릭터에 라이선스 이용료를 쏟아붓느니 공상과학 만화 속의 슈퍼영웅들이 등장하는 게임을 개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하면서 대학원도 졸업한 에머트는 “게이머들 가운데 누구도 이름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며 “막강한 무기로 악의 세력과 싸우고 싶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게이머들은 먼저 의상과 체형을 고른다. 그 뒤 400가지 능력 가운데서 몇몇을 갖출 수 있다. 광선총, 중력 제어장치, 마인드 컨트롤, 적을 입김으로 단숨에 얼려 죽이는 눈사람 등이 그것이다.

2002년 초반 크립틱은 엔씨소프트와 융자·유통 계약을 맺었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크립틱은 로열티로 신생 개발업체가 흔히 받는 매출 대비 10%보다 많이 챙겼지만 경험 많은 기업이 보통 받는 30%보다 적었다. 루이스는 “무명 업체로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2002년 말이 다가오는 데도 게임 개발은 18개월이나 지연되고 있었다. 비효율적인 코드와 재미없고 복잡한 플레이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학업을 중단하고 문제해결에 직접 나섰다. 게임은 그야말로 혼돈과 복잡 그 자체였다. 개발자들은 자신의 작업과정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게다가 각자 좋아하는 프로젝트에 매달린 채 무기 ·전투·줄거리만 늘리고 있었다. 루이스는 다칸을 해고하고 지난해 CEO에 올랐다. 이후 게임을 간단하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게임 디자이너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가운데 하나가 게임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멋진 PC 기반 게임은 수명이 게임 시간으로 평균 30이다. 반면 그럴 듯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1주일에 20시간씩 수개월 동안 지속되며 아바타 수천 개가 상호작용한다. 요컨대 게임을 흥미진진하되 간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티 오브 히어로> 의 초기 버전들은 선택 폭이 너무 넓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루이스는 자신이 운영했던 칩 제조업체의 두 프로그래머를 끌어들였다. 그는 한 캐릭터에게 고층 빌딩 뛰어넘기라든가 음속 질주 같은 두 가지 방어 능력을 한꺼번에 부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방어 능력이 하나면 공격 능력도 한 가지만 갖추게 했다. 그 결과 선택의 폭이 줄었지만 게임은 더 재미있었다.

크립틱의 수석 디자이너 에머트는 최초 버전으로 400시간짜리 콘텐츠를 만들었다. 게임당 보통 45분이 소요됐다. 그 가운데 75%가 싸움, 25%는 대화와 다른 캐릭터 돕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 15분 동안만 악당과 싸우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는 게임이 더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뒤 한 게이머 콘퍼런스에서 홍보할 수 있는 2분짜리 예고편 제작비까지 지원했다. 새 게임은 시판되기 전 1년 사이 이미 여러 가지 상을 받았다. 지난 1월 테스트가 시작되고 4월에는 3만 명이 무료로 게임을 즐겼다. 그동안 크립틱은 코드 버그를 바로잡고 게이머의 불편도 해소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시티 오브 히어로> 가 드디어 출시됐다. 공짜로 즐기던 게이머들을 비롯해 수천 명이 앞 다퉈 가입했다.

소니는 4년 이상 <에버퀘스트2> 개발에 매달린 뒤 11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크립틱도 <시티 오브 히어로> 의 열기가 한창 달아오른 상황에서 <시티 오브 빌런> (City of Villains)을 개발하고 있다. 루이스는 새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말처럼 “게임을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알 듯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의 또 다른 세상
소니와 일렉트로닉 아츠 같은 대형 게임업체는 지금까지 젊은 남성층을 겨냥한 멀티플레이어 판타지 게임 제작에 주력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의 대다수 성인은 칼을 휘두르는 꼬마요정으로 게임 개발업체에 돈이나 갖다 바칠 생각이 없다. 환상적인 롤플레잉 게임이 널리 인기를 끄는 시장은 아시아뿐이다.

일렉트로닉 아츠의 <심스 온라인> 은 가입자들이 아바타로 가상 세계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대다수 가입자는 짜증이 났다. 인공지능 캐릭터들과 교제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데어닷컴(There.com)이라는 사이트는 성인 게이머들이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 수 있게 조치했다. 그러나 개발자들이 군사 시뮬레이션 구축에 집중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운영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2년 전 린든 랩(Linden Lab)이 개설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 사이트는 지난해 8월 사용자 1,000명으로 인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용자들은 가상 T셔츠 같은 제품 생산에 부과되는 무거운 세금으로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아바타로 하여금 피켓까지 들고 파업시위를 벌이게 했다. 12월 린든은 코드 작성을 사용자들에게 맡기고 ‘토지’(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을 수 있는 새 공간) 이용료, ‘재산세’, 월정 가입비 10달러만 부과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많은 디자이너를 끌어들였다.

디자이너들은 T셔츠와 총을 판매한다. 앞으로는 다른 게이머의 가상 도장(道場)·술집·주택도 지을 것이다. 그 덕에 세컨드 라이프의 접속자 수가 10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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