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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처럼 두른 雪山의 장관

병풍처럼 두른 雪山의 장관

광활한 초원과 톈산(天山)산맥이 어우러진 나라 카자흐스탄. 이 나라 최대 도시 알마티에 있는 누르타우 CC는 톈산산맥의 장관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다.
황량한 초원은 끝 간데없이 펼쳐져 하늘과 붙어 버렸다.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원근법 구도처럼 한줄기 직선 길도 가느다랗게 좁아지다 하늘에 닿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스텝(초원), 가도 가도 커브 한 번 없는 일직선 길. 바람소리를 가르는 자동차 엔진의 파열음만이 광야의 적막을 깬다.
10여 세기 전 아랍의 무슬림들이 지배했다가 끝없는 너무나 넓은 땅에 질려서 포기하고 돌아가버린 나라 카자흐스탄. 소련의 일원에서 10여 년 전 개방 물결을 타고 독립한 이 나라는 땅덩어리가 자그마치 우리 남한의 거의 30배에 육박하지만 인구는 우리 남한 인구의 3분의 1도 채 안 된다.

그들은 말을 타고 스텝을 질주하는 유목민족이다. 이 드넓은 나라 남동쪽 끝자락이 가까워 오면 오른쪽으로 하얗게 눈을 덮어쓴 톈산산맥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띄엄띄엄 양떼와 소떼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길은 톈산산맥과 평행선을 그으며 계속 스텝을 가르며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닛산 페트롤 4WD가 핸들을 고정한 채 일직선으로 달린다.

말을 탄 목동과 수백 마리의 양떼가 길을 건넌다. 한참을 달려도 마주 오는 차 한 대도 못 만나는 적막강산에 차 3대가 길가에 섰고, 열두어 명이 차 옆에서 서성거린다. 차가 고장 난 것일까. 차를 세웠다.
오늘은 기쁜 날로 시집 장가 가는 날이다. 신랑은 멀리 300여 km나 떨어진 탈가르 마을로 신부를 데리러 갔고, 길섶에 고물자동차 3대를 세워놓고 신랑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신랑의 큰아버지와 신랑 아버지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다.

동창생들은 남자들만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 이 골짜기 저 산 너머로 시집을 가 벌써 손자까지 둔 여자 동창생도 여럿이다. 친구의 아들 결혼식이 초등학교 동창회처럼 된 것이다.
“네 남편, 지금도 너를 사랑하니?”
“너부터 대답해 봐라. 지금도 네 마누라 사랑하니?”
오랜만에 만난 남녀 동창생들은 어깨를 치며 나이도 잊은 채 낄낄거린다. 그들이 세워놓은 러시아제 자동차 라다의 보닛은 보드카 병과 삶은 양고기로 차림 상이 되었다. 그들은 이 떠돌이의 옷소매를 잡아당겨 보드카 한 잔을 철철 넘치게 안긴다.

오른손에 보드카 한 잔, 왼손에 삶은 양고기 한 점. 빈속에 단숨에 마신 보드카는 사르르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양고기 한 점은 입속에서 씹을 사이도 없이 넘어간다.
눈 덮인 톈산산맥을 타고 넘어온 찬바람도 보드카의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내 평생에 이렇게 맛있는 술 한 잔, 안주 한 점은 없었다. 모두 술에 취했다.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멀리 개미만하게 차 한 대가 달려온다.
헤드라이트를 깜박이자 환호성을 터뜨린다. 들뜬 신랑 신부가 차에서 내리자 신랑 아버지의 동창생들은 보드카 한 잔을 안기고, 여자 동창들은 손으로 양고기 한 점을 집어 신랑 입에 넣어준다.
신랑의 큰아버지는 간단한 연설을 한다.

누르타우 CC 벤트그래스 페어웨이는 카펫처럼 잘 다듬어져 있다.
“알라의 뜻으로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이 되었으니….”
뒤따라온 신부 측 친척들과 차 행렬은 눈 덮인 톈산산맥 아래 국경마을 케겐으로 향한다. 신랑 집 마당에서 면사포를 쓴 신부가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불을 붙이는 것이다. ‘불같이 일어나라’는 뜻으로 우리네 생각과 다를 바 없다. 생각만 같은 게 아니다. 카자흐(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우리와 한 핏줄인 몽골리안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바로 거울 속 내 모습이다.

신랑 집 안방엔 신부 측 부모와 친척들을 위하여 상다리가 휘어지게 잔칫상을 차려놓았다. 신랑 신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넓은 마을회관 이층에 신랑 신부가 들어가자 온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신랑 신부가 자리를 잡자 가득 차려놓은 잔칫상 앞에 모두가 앉는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한다. “신부는 절대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절대로 알라신께 복종해야 한다….”

할머니들의 연설이 끝나자 밴드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 잔치판이 벌어진다. 어둠이 내리고 바람은 더욱 매서워졌지만 잔치판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인정이 넘치고 소박하며 톈산의 눈처럼 맑은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변할 줄 모른다. 그들은 자고로 양과 소를 치고, 말을 타고 달리며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사랑한다.
톈산산맥 너머 남쪽은 키르기스 공화국(옛 키르기스스탄)이 되고 서쪽 너머는 중국의 위구르 자치주가 된다. 변방의 국경마을 케겐은 만년설을 넘어온 기세 좋은 바람소리에 짓눌려 언제나 조용하기만 한데 오늘은 왁자지껄한 카자흐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소리를 잠재웠다.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계속돼온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팽팽한 균형은 카스피해에서 석유가 솟구치면서 급격히 카자흐스탄 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이 나라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톈산산맥의 눈 덮인 산에 둘러싸인 이 도시에 어둠이 내리면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코카콜라 빌보드가 하늘을 덮는다. 사람들이 맥도널드 가게에서 줄을 서고, 거리는 매연을 내뿜는 차들로 메워진다. 카지노의 현란한 불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다. 가로등 아래 끝없이 늘어선 창녀들은 공공연히 행인들의 옷소매를 끌어당긴다. 밤의 꽃들은 인종도 갖가지다. 러시안, 카자흐, 우크라이나, 타타르, 우즈벡, 키르기스….

끝없이 펼쳐진 스텝이 톈산산맥에 가로 막혔다.
4~5년 전만 해도 밤이 되면 침묵 속으로 빠져들던 알마티가 이렇게 급변하게 된 것은 개방정책으로 자본주의 독버섯이 서서히 땅속에서 솟아오를 무렵 이 나라 서쪽 끝 카스피해의 오일 머니가 쏟아져 들어와 독버섯에 물을 준 격이 됐기 때문이다.
어수룩한 유목민들은 카지노에 전 재산을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았다. 반반한 처녀들은 만인의 연인이 되고, 경찰은 썩을 대로 썩어 여기저기서 돈을 뜯는다.
알마티는 참으로 볼 것 없는 도시다.

19세기 중엽 러시아 침략자들이 허허벌판에 바둑판처럼 세운 도시라 세련된 맛도, 고풍스런 멋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도시들은 그 옛날 실크로드의 오아시스로 향기를 피우는 유적들이 수두룩하건만 이곳은 음침한 러시아풍 시멘트 건물들만 판박이처럼 줄지어 서있다. 그러나 시내 중심가는 우후죽순처럼 빌딩들이 솟아오르고, 외국기업들이 몰려와 터를 잡아 마치 미국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알마티 시내를 벗어나 20여 분, 톈산산맥 산자락으로 올라가면 알프스의 스키 리조트 뺨치는 호화판 스키장에 원색의 스키어들이 여유를 즐긴다.

카자흐스탄은 우리의 주목을 받는 나라다. 스탈린 시대 연해주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10만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고, 가장 최근에 수도를 이전한 나라다.
최대 도시이자 수도였던 알마티는 드넓은 이 나라의 남단에 위치해 러시아와 길게 면해 있는 북쪽의 인적 없고 드넓은 스텝 때문에 예부터 러시아의 침략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정부는 이 때문에 소련에서 독립한 2년 후인 1993년 수도 이전을 결정했다. 국민의 의견수렴을 거치지도, 국민투표를 하지도 않고 전격 결정한 데는 나자르 바예프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이 뒷받침되었다.

97년 12월 수도는 알마티에서 까마득한 북쪽 허허벌판에 세워진 아스타나로 이전했다. 수도 이전의 성공 여부는 판단하기 이르다. 겨울이면 섭씨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이곳으로 공관을 옮긴 나라가 8개국. 아직도 30개의 외국공관과 10여 개의 국제기구는 알마티에서 옮길 생각을 않고 있다. 알마티와 아스타나 두 도시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골프광이라면 이곳에도 갈 곳이 있다. 알마티 중심가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누르타우 CC는 참으로 아름다운 골프코스다. 카펫 같은 블루그래스 페어웨이에 비단 같은 그린 너머에는 눈을 덮어쓴 톈산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일반적인 골프코스는 5개 홀이 파4가 되고, 파3 ·파5가 각각 두 홀씩 9홀을 구성하지만 이곳은 전체 길이 3503야드에 파3 ·파4 ·파5가 각각 3개 홀씩 짜였다. 시그너처 홀은 542야드 파5, 2번 홀이다.
티 그라운드에서 400야드가 일직선으로 뻗었다가 오른쪽 90도로 꺾어져 140야드에 그린이 자리 잡고 있는 도그레그 홀로 꺾어진 지점에서 세 번째 샷을 하면 어렵잖게 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이브 샷이 잘 나갔거나 내기 판돈이 크지 않다면 세컨드 샷으로 온 그린을 시도해 봄직하다. 단 지름길 사이엔 워터해저드가, 그린 앞엔 벙커가 과욕을 응징하겠다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비지터로 클럽과 신발을 렌트한다면 우리나라 수준으로 지갑이 축날 각오를 해야 하는 게 흠이다.
이 9홀 골프코스는 9홀을 추가 증설해 올 가을에 정규 18홀 코스로 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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