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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한번 하지 않고 명문대 간 비결

과외 한번 하지 않고 명문대 간 비결

Education

서울 목동에서 살고 있는 남모(18)양은 요즘 논술시험을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수시모집에 응시했다 떨어졌으니 이제 연초에 있을 정시모집에 응시해야 한다. 서울 주요 대학 정시모집의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논술과 구술면접 시험이다. 일주일에 세번 논술학원에 가서 강의를 듣고,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은 논술 개인교습을 받는다. 남양의 부모가 학원비와 과외비로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지출한 돈은 2백만원이나 된다.

평소에도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고 단과반 학원에 다니느라 매달 꼬박 1백20만원 정도는 사교육비로 지출됐다. 그녀의 어머니 김모씨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딸이 대학에 합격한다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일은 이제 끝이다. 그녀에겐 대학 합격만큼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학원 중독증’이란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2003년 한국의 사교육비는 총 13조6천 억원이나 된다. 전체 학생의 72.6%가 학원 수강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1인당 연간 평균 사교육비는 2백85만원에 이른다. 서울 강남 지역은 사교육비 지출액이 평균 4백77만원으로 다른 지역의 2배라고 한다. 특히 성적이 상위 20% 안에 드는 학생들은 그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공식 통계’가 이렇다면 실제 사교육 현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지출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대가 지난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신입생의 69.2%가 과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서울대 입학생 열명 중 일곱명이 과외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홍성표씨는 “고교 1, 2학년까지는 거의 모든 학생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고3 때에는 학원 수강이 줄어들지만 방학 때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학원 강의를 듣거나 과외를 한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서 1년 동안 한번도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대는 지난해 12월 16일 수시모집 합격자를 발표했다. 이중 인문계열 성적 최상위군 학생들이 지원하는 서울대 법대 합격생 가운데 과외를 받지 않은 학생이 과연 있을까.

뉴스위크 한국판은 과외를 받지 않고 학교 수업과 개인 공부만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30%에 해당하는 학생을 찾아 보았다. 수소문 끝에 찾은 학생이 부산 경남고 출신의 허민(19)군이다. 허군은 내신 1등급과 대학 수학능력시험 1등급으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그곳에서 다닌 허군은 전교 학생회장을 지내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무난히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는 고교 3년간 학업 최우수상을 받은데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천5백여권의 책을 독파한 독서광이기도 하다.

일반 학생들의 학생생활기록부가 4∼5쪽에 그치지만 허군의 학생부는 9쪽이나 된다. 학년별 성적과 출결 등 기본 사항 외에 각종 수상 경력과 봉사활동·자격증·특별활동 경력이 다채롭기 때문이다. 허군은 정보기술자격증·정보처리검색사 등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6개나 소지하고 있으며 영어는 텝스(TEPS) 8백57점, 토익(TOEIC) 8백50점 수준이고, 한자자격증 2급을 갖고 있다. 행정자치부 장관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가 주최한 논술경시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비롯해 교육부 백일장 최우수상 등 20여개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4년 2월에는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로 선정돼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한 뛰어난 대학 신입생의 사례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허군의 사례가 빛나는 것은 사교육 천국인 한국에서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지 않고 이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점이다. 고교 3년 동안 허군을 가르친 교사 김미경씨는 “허군이 뛰어난 점은 ‘정석대로’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험생들에게는 지겨운(?) 소리이겠지만 수업시간에 충실하고, 예습·복습을 제대로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대개의 고교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고교 2학년 때까지 학원을 다니는 게 현실이다. 고3 때에도 방학 기간중 단기 강좌나 과외를 하게 마련이다. 교사 김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릴 때부터 과외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혼자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허군의 부모는 15년째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도시 서민층에 해당한다. 자영업자인 아버지와 운전학원 강사인 어머니의 수입을 합쳐 3백만원 정도가 허군 가족의 한달 평균 수입이다. 허군의 어머니 박여생씨는 “학원비로 나가는 돈이 없고, 따로 용돈을 쓴 일도 없어 민이가 쓴 돈은 일주일에 2천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03년 통계로 추산하자면 초·중·고 평균 사교육비 3천4백만원(2백85만원×12년)을 절감한 셈이고, 서울 강남 학생을 기준으로 해서는 5천7백여만원(4백77만원×12년)을 아낀 것이다.

허군의 사례는 비단 경제적 절감의 측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과외에 의존하는 공부를 하다 보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려 혼자서는 학습할 수 없게 된다”고 충고한다. 대다수 고교생들이 ‘학원중독증’에 걸려 있는 현실에서 허군의 경우는 ‘사교육 천국’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비록 매우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학생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허군을 만나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은 그의 경험을 빌려 ‘나홀로 공부법’의 요령을 찾아본다.

■단기 목표를 세우고, 게임처럼 공부하자
학교 공부 와중에 컴퓨터자격증과 한자자격증을 취득한 허군은 “3∼4월에는 한자자격증을 따고, 5∼6월에는 컴퓨터자격증을 딴다”식으로 2개월 단위의 단기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방법을 취했다. 목표 달성에 따른 성취감도 맛볼 수 있고, 장기 목표를 설정할 경우 레이스가 길어져 식상해질 수 있다. 텝스 성적이 처음엔 5백점이 나왔는데 두달 뒤에는 7백점, 다섯달 뒤에는 8백점을 넘길 계획을 세워 다섯달만에 8백50점대로 수직상승했다.

■공부는 규칙적으로, 복습은 철저히
벼락치기로 공부하게 되면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허군은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한두시간은 반드시 복습에 투자했다. 매일 30분씩 전날 배운 모든 과목을 다시 훑어보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필기의 제왕이 되자
허군의 노트는 두 종류다. 하나는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하는 농담까지 모두 적는 수업 노트고 또 하나는 그것을 다시 깨끗하게 정리하는 요점 노트다. 필기를 열심히 하면 수업에 집중이 되고,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된다. 농담까지 받아쓰다 보면 후에 복습을 하면서 당시 수업 분위기나 상황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요점 노트는 수능 한달 전 공부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자
등하교 때 차에서는 영어듣기를 하고, 화장실(?)에서는 사회탐구 교과서나 책을 읽고, 쉬는 시간에는 직전에 공부한 내용을 복습했다. 점심 시간에는 수행평가와 과제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 시간이 부족한 고3 시기에는 이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허군의 경험담이다.

■책 한권만 잡고 늘어져서는 안된다
보통 30∼40분이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공부가 지겨워진다. 이런 경우 공부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주어진 시간에 미션을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흥미가 떨어지기 전에 목표한 공부량을 끝내고 다른 과목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자
다른 학생들이 학원에 다닌다고 불안해 하거나 조급해 하면 안된다. 허군은 “과외하는 학생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서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허군의 어머니 역시 “직장에 나가다 보니 아이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침밥을 손수 해먹인 것과 아이에게 전적으로 신뢰를 보낸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몸으로 익히자
시나 소설을 공부할 때는 마치 실연을 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여가며 이해했다. 몸으로 익히면 기억도 잘 되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1인 2역으로 연기하듯 소리를 내고 몸짓을 써가며 공부한다. 이 방법의 문제는 오직 집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하면 타인에게 방해가 될 뿐더러 바보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참고서와 문제집은 단권화하자
좋은 참고서와 문제집을 하나 선택하고 그것을 꾸준히 공부하는 게 좋다. 다른 참고서 역시 비슷비슷한 내용의 반복일 뿐이다. 한권을 반복해서 공부하면 처음에 놓쳤던 부분도 알 수 있게 되고, 모르는 유형이나 모호한 유형은 표시했다가 다시 공부할 수 있다. 오답 노트를 만들 필요 없이 취약한 부분을 메울 수 있다.

■TV를 끄고 책을 읽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학 시절과 고1, 2 때는 책을 많이 읽었다. 중학 시절에는 하루에 최소한 5∼6시간씩 책을 읽었고, 고1, 2 때는 하루 3∼4시간, 고3 시절에도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는 꼭 독서에 투자했다. 집에서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책읽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홀로 공부’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허민군은 이 점에서 탁월한 시간 관리 능력을 보여준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때에는 보통 오전 6시에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하고, 7시까지 학교에 등교해 수업을 받는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5분을 투자해 공부한 내용을 훑어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다음 수업 내용을 예습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2시간 동안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약 과목에 집중했다. 새벽 1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허군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부모님도 큰 역할을 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저녁 시간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고,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어릴 적부터 책읽는 습관을 가르쳐준 것도 허군의 부모다. 허군의 어머니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줄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한다거나 책망해서는 자신감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홀로 공부는 그만큼 온가족의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허민군은 “공부의 적은 교육부의 입시 정책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며 “혼자 오기있게 공부한 결과 대학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학원중독증을 치유하는 것도 결국 수험생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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