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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내 생활의 모든 것
이젠 예수에 대해 쓰고파”

“소설은 내 생활의 모든 것
이젠 예수에 대해 쓰고파”

예술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소설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소설이 작가의 관점에서 본 세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니, 작품 속에 동시대를 향한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작가란 오로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현실의 갈등 한가운데로 향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색채가 있는 소설로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최인호 씨를 만났다. 소설가의 길을 걸으면서 가졌던 문제의식, 역사소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문학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 봤다.
그는 지금 서울신문에 〈유림〉, 부산일보에 〈제4의 제국〉 등 두 개의 연재소설을 쓰고 있다. 글 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고 벅찰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벅차긴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전에는 글 쓰기가 내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투 도어 냉장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냉동실과 냉장실이 구분돼 있듯 글 쓰기와 내 생활이 분리돼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것들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림〉은 공자의 사상에 담긴 정치와 권력의 의미를 조선시대 풍운아인 조광조와 학자 이퇴계 ·이율곡을 통해 생각해본다는 내용이고, 〈제4의 제국〉은 가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나는 유교와 불교가 우리 민족의 원형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는 2,500년 전 공자에 의해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 꽃핀 것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의 율법이 되고 있고, 불교도 우리나라에서 대승불교로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천민사회가 돼가는 듯합니다. 예의도 어른도 공경이란 것도 없는 근본 없는 사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림〉이 지금 우리의 정치 풍토에 귀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별들의 고향〉을 우선 떠올리게 하는 최인호는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보기 드문 도시적 감각의 작가이다. 서울고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벽 구멍으로〉가 최연소 입선작으로 뽑혔으며, 대학 시절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환자〉가 당선됐다. 72년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인간 소외를 다룬 〈별들의 고향〉이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영화화돼 소설가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타인의 방〉 ·<불새> ·〈깊고 푸른 밤〉 · <잃어버린 왕국〉 ·<상도> ·〈해신〉 등의 소설이 있고, 시나리오로 〈바보들의 행진〉 · <고래 사냥>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아시아영화제 각본상, 대종상 각본상 등도 수상했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경제철학을 다룬 〈상도〉가 TV 드라마로 방영된 데 이어 지금은 해상왕 장보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해신〉이 방영되고 있다. 그 드라마를 보는지, 보면서 불만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내가 쓴 글도 다시 읽어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도 잘 보지 않아요. 나에게서 떠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 새끼가 링에서 권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조마조마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방송국에도 ‘나를 의식하지 마라. 그것을 모태로 해서 퓨전이든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다만 요즘 젊은이들이 사극에 관심이 없으니 잘 만들어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파란만장한 역사적 영웅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웅 신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해상왕’이라는 말 대신 ‘해신’이라고 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의 소설이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면, 서점가에서는 수필집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종교적인 생각과 가족에 얽힌 진솔한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가족, 조금은 다루기에 조심스러운 소재이지 않을까.

“‘별들의 고향’은 나의 업보”

“가톨릭에 귀의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찌 보면 죽음이란 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재수없는 것이라 여겨 피하려 합니다. 나는 죽음을 기억하고 생각할수록 삶도 더욱 빛난다는 생각입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성 프란체스코가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 생각해 냈습니다. 여인으로서 어머니는 죽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는 불변이라는 것이지요. 또 가족은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절대공간과 같은 것입니다. 그 속에서의 생활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하며 가족의 사랑을 말하면서 가족의 비극은 간과하기도 합니다.”

그에게서 들어야 할 이야기 가운데 〈별들의 고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작품은 내가 26세 때 쓴 것인데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사람들은 〈별들의 고향〉을 말합니다. 나는 그 작품이 작가로서 나의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내 팔자를 운명 지웠다고 생각해요. 조선일보에서 부탁이 들어왔을 때, 나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감각적 표현과 함께 <부활> 의 카추사나 <여자의 일생> 의 테스처럼 우리에게도 기억나게 하는 여자이름 하나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모

든 사람에게 추억과 같은 이야기를 써 보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경아’라는 이름이 유행했고 소설과 영화가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이러다가 내가 유행작가로 운명 지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하나였고, 괜찮다 대중과 함께하는 프리즘 같은 효과가 있는 작품을 쓰자는 생각이 다른 하나였습니다. 후자 쪽으로 나의 작가로서의 길이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경아’라는 이름이 유행했지만 그 이면에 깔린 문제의식은 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희생된 한 여인에 대한 휴머니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가 지나온 80년대와 90년대 작가로서의 길은 어떤 것이었을까.

“80년대 초에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우리의 빅 브러더 같은 존재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문학에서는 체제냐 반체제냐, 참여냐 순수냐와 같은 문제에 휘말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비체제라고 했습니다. 개인주의고 자유주의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요. 한때는 영화를 해볼 생각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6개월 정도 낭인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 후 나온 작품이 〈깊고 푸른 밤〉입니다. 그러다 87년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문학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내겐 벼락같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달의 뒷면을 보지는 못해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90년대 초에는 한동안 수덕사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현상의 이면에 담긴 것들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지요. 공자도 영혼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와 동시대인일 수 있다는 것, 예수를 통해서 시간 ·공간적 개념을 넘어 동시대인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현실의 이면에 담긴 인간적인 삶의 양태나 역사성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다는 말인 것 같다. 그런 생각에서 역사소설로 향하게 된 것은 아닐까.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입니다. 백제를 다룬 〈잃어버린 왕국〉이 85년에 나왔으니까요. 전에는 역사소설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나는 소재란 작가가 그때그때 생각하는 것을 토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써야지 라는 생각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내가 만든다기보다는 무언가 떠오르는 것을 받아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또 비워진 곳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런 어려움을 물었다.

“전에 광개토대왕을 취재할 때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광개토대왕이 도와 주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도산성에서 기와를 발견하고, (남쪽에서도 발견된) 우물 정(井) 자가 새겨진 것을 보고 기뻤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우리의 국기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지요. 〈상도〉를 쓰면서도 내가 역사에 몇 줄로만 남아있는 임상옥이라는 사람을 200년 후에 부활시켜 줬는데, 그가 나에게 도움을 주겠지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하하, 이처럼 나는 그들이 내리는 전언이나 메시지를 더듬이로 잡아내는 것과 같은 작업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지식도 축적됐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죽음조차도 관찰해야 하는 작가는 ‘저주받은 존재’”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그의 문제의식은 역사 속에서 현재를 본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시기의 문제의식들을 아우르는 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은, 아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작가란 저주받은 존재’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평생 빛에 의한 색의 변화를 담고자 했던 화가 모네는 죽어가는 부인의 변해가는 얼굴색을 보고 있었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란 저주받은 존재’라는 말은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정말 슬퍼해야만 인간적인 것인데, 작가는 그 죽음조차도 관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 말입니다. 본능적으로 관찰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그것이 작가의 본능이고 행복이지만 불행이기도 한 것이지요.”

글을 쓴다는 것이 그의 본능이고 생활의 전부라는 말이 실감난다. 글이란 언제나 사회를 향한 것이기에 사회 속 모든 것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작가들의 정치적 행보나 현실참여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의 갈등구조 속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정치에 대한 ‘노 코멘트’가 코멘트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지난 대선 때는 말려들지 않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시론을 쓰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쓰는 것이 변화보다는 갈등만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현실에 대한 관찰의 끈을 놓지는 않지만 관찰의 결과는 오직 작품 속에 담아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끝으로 역사소설 이후 그의 관찰계획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 연재하고 있는 소설들이 끝나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쓰기 위해 이스라엘에 갈까 합니다. 2,000여 년 전 목수였던 그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쓰고 싶습니다.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 만나 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요즘 들어 철학이 너무 재미있어요. 철학이란 인간이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철학의 두 맥으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말하는데 그 원류로부터 시작되는 여러 가지 관계를 공부하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도시적 감성이나 역사의 무대를 넘어 그는 이제 인류 전반에 미칠 감성과 사상을 담은 소설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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