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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억제할 만한 요인 별로 없어···"미·중국발 오일 쇼크 오나"

유가 억제할 만한 요인 별로 없어···"미·중국발 오일 쇼크 오나"

지난 3월 말 보고서 한 장이 석유시장을 뒤흔들었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주요 산유국의 (원유) 공급에 혼란이 생기면 유가는 배럴당 105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는 대담한 예측을 발표한 것이다. 보고서가 발표된 다음날 뉴욕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약 1.4달러 상승해 배럴당 55달러40센트까지 올랐다. 유가 상승이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잠시 주춤하지만 4월 4일 시간 외 거래에서 58.15달러로 처음 58달러대를 돌파했다. 이는 2004년 10월의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었던 10.72달러와 비교하면 약 6배, 2003년 5월의 저가 25달러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오른 수준이다. 현재 세계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구미의 국제 석유자본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아니다. 마켓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상장돼 있는 WTI가 세계 원유지표 가격이 돼 있다. WTI는 미국 남서부에서 생산된 저(低)유황 원유로, 채산성이 높은 양질의 원유다. 실제 WTI는 하루 50만 배럴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지만 NYMEX에서 취급되는 선물 거래량은 세계 원유 수요(하루 약 8300만 배럴)를 가볍게 넘는 2.8억 배럴에 달한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종(油種) 하나가 세계의 유가를 움직이는 것이다. 유가 급등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헤지펀드로 대표되는 투자 자금의 움직임이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유가 상승 국면에서는 원유 선물거래가 활발했으며, 실수요 자금보다 투기 자금이 두드러졌다.

유가 급등 진원지는 ‘시장’ 미국의 호경기나 중국의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원유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도 고유가의 원인이다. 1990년대에 세계 원유 수요는 매년 일일 기준 110만 배럴씩 늘어났지만 2003년에는 180만 배럴, 2004년에는 270만 배럴씩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5년에도 200만 배럴의 높은 증가를 예측하고 있다. 2004년 원유 수요 증가 내역을 보면 중국이 90만 배럴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증가량은 40만 배럴. 중국과 미국 2개국만으로 세계 원유 수요 증가의 절반을 차지했다. 1986년부터 2000년께까지 유가는 배럴당 10달러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의 엑손 모빌이나 영국·네덜란드의 로열 더치, 영국 BP 등 국제 석유자본은 한결같이 투자액을 줄였다. 게다가 IT기업에 대항해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그 결과 원유 개발이나 정제·판매 쪽으로 돌리는 투자 자금이 더욱 줄어드는 결과가 됐다. 예컨대 엑손 모빌이 2004년 원유 개발 등에 투자한 돈은 약 149억 달러. 이에 비해 배당금 증액,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책에 쓴 돈은 150억~160억 달러로, 개발 투자액보다 많았다.

메이저社, 생산투자 소홀 석유산업은 위쪽에 원유 개발·생산이 있고, 아래쪽에 정제·판매가 있는 하나의 밸류 체인(Value Chain)을 형성하고 있다. 구미의 메이저 석유회사나 산유국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유가 하락의 큰 충격을 경험한 뒤 필요한 투자를 억제했다. 그 결과 원유 개발·저장시설·정유소 등 모든 밸류 체인에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원유나 석유 제품의 수요 증가에 매우 취약한 구조로 변했다.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현재 유가 하락의 사슬에서 벗어났지만 원유 개발에 대한 투자에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엑손 모빌의 2005년 개발 투자액은 150억~160억 달러로, 2004년에 비해 약간 늘어난 정도다. 유가가 이처럼 급등하는 상태에서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투자에 신중한 것은 앞으로 있을지 모를 유가 급락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유 개발을 하고 싶어도 유망한 지역을 찾을 수 없는 사정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중동지역에서는 각국 정부가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참여를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러시아도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이곳 역시 정부가 외국 자본을 꺼린다. 아프리카에는 유망한 유전이 있긴 하지만 국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 때문에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시선은 멕시코만이나 동남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값싼 석유의 시대’는 끝난 것인가? 앞으로 원유 증산이 계속되고 미국·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줄면 배럴당 30달러 선에서 멈출 것”이란 견해와 “현재 시점에서는 원유 가격을 억제할 만한 조건은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산유국도, 메이저 석유회사들도 고유가로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에 개발 투자를 통해 원유를 증산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게 후자의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원유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면 앞으로 수년간 세계의 원유 수급에는 압박감이 계속될 것 같다. 혹시 산유국에서 테러나 정변이라도 일어난다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만한 오일 쇼크도 면키 어렵다. 미국·중국발 오일 쇼크는 결코 허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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