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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新 중동 특수 쿠웨이트 현장… 모래밭 파헤치면 달러가 ‘펑펑’

르포/新 중동 특수 쿠웨이트 현장… 모래밭 파헤치면 달러가 ‘펑펑’

원유 처리 후 남은 가스를 태우면서 생겨난 석유화학 플랜트의 불기둥, 현장에서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SK건설이 2003년 6월 착공에 들어간 ‘원유집하시설 화재복구 현장’. 군사 시설처럼 경계와 안전 관리가 삼엄하다. 국가 전략시설이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시티에서 이라크로 가는 유일한 도로인 ‘압달리 로드’.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90㎞ 정도 달리다 보면 거대한 석유화학 플랜트가 눈앞에 펼쳐진다. SK건설이 2003년 6월 착공한 ‘원유집하시설 화재복구 현장’이다. 2002년 1월 큰 화재가 발생해 망가진 시설을 우리 업체가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있는 곳이다. 기자는 5월 말 중동 건설붐을 선도하고 있는 이곳을 찾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와 풀뿐인 사막. 이곳에 우뚝 솟은 플랜트를 맞닥뜨리면 마치 오아시스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차에서 내리니 섭씨 45도를 넘는 후끈한 열기에 숨이 콱 막힌다. 공장 너머로 보이는 10여 개의 아름드리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아 주위 하늘을 뒤덮고 있다. “처리하고 남은 가스를 태워 없애는 중”이라는 게 현지 근로자의 설명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 했지만 견디기 힘든 열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었다. 개더링센터(Gathering-center)라는 이 시설은 수십 개의 유정에서 나오는 원유를 모아 물과 소금을 분리한 뒤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 압축 시설로 보내고 있었다. 원유를 캐내는 과정에서 시추 다음의 두 번째 작업에 해당한다. 추장현 현장소장은 “개더링센터는 수백 개의 파이프라인이 사막 아래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땅밑 공사가 중요하다”며 “지하 매장물에 대한 완전한 파악이 이뤄져야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군사 시설 같은 건설 현장 SK건설의 공사 현장은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OC)의 관리구역 안에 있다. KOC는 쿠웨이트 전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을 관리한다. 눈에 보이는 사막 곳곳에는 야적장과 플랜트 시설이 들어서 있고 군데군데 거대한 ‘석유 늪’이 조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1년 내내 석유 냄새가 진동해 코를 막지 않고는 거리를 나다니기가 힘들 정도였지만 한국에서 온 근로자들의 땀방울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생각에 내색할 수가 없었다. 열사의 지역에 건설 붐은 이렇게 불고 있었다. 특히 이란·쿠웨이트 등이 건설 물량을 대폭 늘리면서 ‘신중동 건설 붐’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쿠웨이트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건설업체의 실적은 단연 돋보인다. 최근 현대건설이 3억9000만 달러 규모의 ‘에탄 회수처리시설공사’를 수주한 데 이어 SK건설도 12억 달러(1조2000억원) 상당의 ‘원유집하시설 공사’를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SK건설 쿠웨이트 현장의 경우 선발대 30명이 이미 도착해 사전 준비작업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계약금액으로만 따진다면 국내 건설업체가 외국에서 수주한 공사 중 최대 규모라고 할 만큼 큰 공사여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SK 측은 설명했다. 선발진 대부분은 디자인·설계 관련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공사 현장을 직접 누비면서 시설설계를 위한 기본적인 디자인 작업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 회계 담당자로 선발대에 합류한 SK건설 김신 과장과 함께 미래의 공사 현장 중 한 곳을 찾았다. 쿠웨이트시티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1시간 정도 달려 석유화학 플랜트 같은 곳에 도착했다. 군사 시설을 방불케 할 만큼 경계와 안전 관리가 삼엄했다.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고 소총을 든 병사들이 검문·검색을 했다. 그때마다 취재진은 방문 허가서와 여권·비자를 보여줘야 했다. 쿠웨이트로선 국가 전략시설에 해당하는 만큼 철저한 안전관리가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넓게 펼쳐진 1층 높이의 건물에 들어서 좁다란 복도를 따라 통제실로 들어갔다. 대규모 시설에 비해 통제실은 다소 소박했다. 사무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모니터엔 이곳 시설 곳곳에 설치된 CCTV로 현장 직원들의 모든 작업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위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를 모아 가스 압축 시설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이곳 관계자가 설명했다. 실제로 원유집하시설에서 어떻게 석유를 모으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허가하지 않아 아쉬움만을 남긴 채 그냥 되돌아 왔다. 김 과장은 “이곳에 도착한 지 보름 정도 됐지만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며 “회계 책임자로 왔기 때문에 작업이나 현장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제반 여건을 준비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음식,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것인가요? 김치 하고 밑반찬이 한국에서와 거의 차이가 없네요.” 공사 현장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SK건설 공사현장 본부에서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쌀밥과 된장국이 준비돼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4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이 한국 음식이 정겹게 느껴졌다.

중동 전략도 달라져 회사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직원의 복지 생활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군인 정신’으로 일하던 과거와 달리 쿠웨이트처럼 기후는 물론이고 음식도 안 맞고 술 반입도 안 되는 곳에는 직원들이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진과 동행한 SK건설 유지호 상무는 “옛날처럼 ‘애국심’으로 무조건 일하라고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음식과 여가 등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이곳에서 일하려는 직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근로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월급도 한국에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이 받고 휴가도 정기적으로 보장되지만 보고 싶은 가족 때문에 모두 빨리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곳에 파견된 지 2년2개월이 됐다는 강봉효 과장은 “결혼한 지 1년 만에 여기 왔는데 아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며 “공사가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올해에는 귀국해 가족과 재회할 예정인데 생각만 해도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건설 업체의 중동진출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중동 건설 시장은 과거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수익을 보는 기업이 거의 없어 ‘건설업체의 무덤. 웃고 왔다 울고 간다’고 할 정도로 공사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으로 불려왔다. 공사 내용도 70∼80년대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주하는 공사들은 플랜트·석유생산시설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에 SK가 따낸 공사도 석유화학 플랜트 시설이다. 또 과거와 같은 ‘제 살 깎아먹기’식의 과다한 출혈 경쟁도 많이 사라졌다. 무조건 한다는 ‘막무가내’식 공사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할 만한 공사’에 국내 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얘기다. 현지에서 만난 SK건설 손관호 사장은 “앞으로 4∼5년 정도는 신중동 특수가 이어질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전략적 사고를 통해 회사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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