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중국 진출 러시 “글쎄”
국내 은행 중국 진출 러시 “글쎄”
중국서 우리끼리 과당경쟁 우려 선전시 시내 중심에 거대한 입간판이 하나 있다. ‘당의 기본노선은 100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당이 말하는 기본노선은 ‘개방’이다. 인구 1만 명 정도의 어촌이던 선전이 단 25년 만에 인구 1000만이 넘는 대규모 도시로 큰 것은 중국 정부의 개방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려주는 사례다. 실제로 개방의 기치 아래 이뤄진 중국 정부의 해외 기업 투자 유치 노력은 우리은행 선전지점 진출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달에 개설한 우리은행 선전지점은 선전시 조례에 의해 인민폐로 200만 위안의 현금을 지점 개설 장려금으로 받았다. 200만 위안은 원화로 약 2억5000만원 상당이다. 또 선전지점은 30%에 해당하는 사무실 임차료를 앞으로 3년간 선전시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중국 현지의 국내 은행 직원들에 따르면 한국직원 3~4명과 현지직원 9명이 시내 요지에 사무실을 임차해 영업을 할 경우 연간 100만~150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 볼 때 해외금융회사를 유치하는 것은 현지 고용을 늘리는 동시에 중국 내수에 도움이 되는 등 나쁘지 않은 셈이다. 중국 정부의 각별한 투자 유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진출하려는 금융회사에 대한 제약 요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해외 금융회사에 대해 1년에 점포 1개씩만 허가해 줬다. 지금 이 규정은 사라졌지만 국내 은행이 중국에 지점을 내려면 직전연도 기준으로 당기순이익이 적자여서는 안 된다. 또 인민폐 영업을 하려면 3년 동안 영업을 한 실적이 증빙되고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야 한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은 중국 광둥성 지역에 점포를 내려고 준비 중이지만 아직 국내 금융감독원의 허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 두 곳의 은행이 지난해 점포를 내지 못한 것은 전년도 본점의 당기순이익이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런 제약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금감원 내부 분위기는 국내 금융회사의 중국 진출을 환영하지만은 않는 분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러시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기에 국내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정된 시장에서 여러 개 은행이 동시에 문을 열 경우 과당경쟁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게 감독당국의 걱정이다. 이럴 경우 이미 나가있는 점포들의 초기 정착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홍콩에만 10개의 국내 은행 지점이 나가 있는 것을 두고 아무도 과열이라고 하지 않듯이 최근 중국에 국내 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것은 과열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제1의 교역대상국인 데다 2~3% 성장에 그치는 선진국에 비해 고속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 기업들에 비해 은행의 진출이 늦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는 국내 은행이 앞서 그렇지만 아직 국내 은행들이 중국에 진출해 경쟁력을 갖추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의 국내 은행 지점들에 따르면 세계 1~2위를 다투는 외국계 은행들도 중국기업들과 거래하는 것을 망설인다고 한다. 중국기업들의 재무제표가 불투명해서 은행의 신용리스크 관리 측면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중국은 2006년 말까지 은행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할 처지다. 이때 모든 것이 개방되면 중국에 진출한 해외은행들도 개인을 상대로 인민폐 영업을 할 수 있게 되고, 지리적으로 영업을 제한한 규제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올해까지 해외 금융회사의 중국 내 점포들은 인민폐 영업을 하려면 중국기업하고만 가능하고 개인은 불가능하다. 또 이들 점포는 불과 2004년에야 베이징 지역에서 인민폐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에 각 부분의 개방이 더 확대돼 기업의 투명성이나 재무 건전성 측면이 나아지더라도 단기간에 눈에 띄게 향상될 여지는 많지 않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 지점들은 아직까지 한국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지역 내에 다른 국내 은행이 진입하면 그만큼 우리끼리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대출의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국내 은행들은 제약을 가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보유 중인 막대한 외환보유액 중 일부인 150억 달러를 전격적으로 중국계 은행의 대출자금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 덕분에 중국계 은행의 현지 외화대출금리는 ‘3개월 리보(Libor)+1% 미만’으로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부실여신을 희석하기 위해 같은 중국계 기업보다는 높은 신용등급을 가진 외국계 기업을 주로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들의 영업영역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반면 국내 은행 점포들의 외화대출금리는 보통 ‘3개월 Libor+1% 이상’이다. 주중 한국금융기관 협의회에 따르면 이미 삼성·현대자동차·포스코·LG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모두 중국계 은행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서비스 측면에서 중국계 은행들에 비해 앞선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국내 은행들은 외환위기 때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더군다나 한국 내에서 이미 금융대전을 벌이고 있는 국내 업체들의 현지 점포는 중국계 은행에 비해 생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과 금융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내년 은행시장 전면 개방 시 중국계 기업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본격 영업에 나서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신용정보가 불확실한 중국계 기업과 개인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노하우가 급선무다. 또 우리 기업이 밀집된 지역 위주로 진출해서 경쟁하려는 태도도 지양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부대개발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쓰촨성 청두 및 동북진흥 중심도시 등 미개척 잠재 유망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진출 노력이 아직은 미흡한 편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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