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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기대감 높아
내수 견인차로는 역부족

지난해보다 기대감 높아
내수 견인차로는 역부족

올 추석은 지난해보다 열흘이나 이르다. 연휴 기간도 짧아 유통업계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을 계기로 거시 지표상 점차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는 내수경기를 실감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복절 연휴가 끝난 8월 16일 경기도 안성의 한 배밭. 이곳 1만5,000평 규모의 배밭에는 1,000여 주의 배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가지마다 봉지에 싸인 배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지만 농부가 딴 배는 어린 아이 주먹만한 크기밖에 자라지 못했다. 물이 제대로 오르려면 볕을 한참은 더 받아야 한다. 그러나 추석은 앞으로 한 달 남짓. 대목을 보려면 보름 안에는 수확을 시작해야 한다.

배밭을 찾은 롯데마트 청과물 구매담당 MD(Merchandiser)인 신경환 계장은 “올해 봄부터 이곳을 점찍어 두고 자주 내려와 주인과 얘기를 터놓았는데 정작 추석이 다가오자 머뭇거린다”며 볼멘소리다. 농부가 배값을 더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 과일 값이 제법 오를 것이란 소문이 있는 데다 그 중에서도 배값이 제일 많이 뛸 것이란 관측이 나돌면서 배 농가들이 출하 시기를 늦추며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2㎞쯤 떨어진 또 다른 배밭의 주인 김상덕(54)씨도 “장마로 배가 제대로 익을 틈도 없었는 데다 값이 오른다는 얘기가 들리니 대목 재미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남 거창군 남상면의 사과밭 주인 김진무(65)씨도 12일 “홍로는 열흘 안에 수확해도 될 것으로 보이지만 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만큼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생각”이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과수 농가들이 이렇게 나오니 유통업체 바이어와 벤더(수집상)들은 애가 탄다. 신 계장은 “추석 한 달 전쯤이면 산지 계약이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하는데도 농가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품종이 좋고 농사가 잘된 곳은 바이어들 간 경쟁이 치열해 현지 수집상들이 정보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고 푸념했다.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애초 올해 추석 경기가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고 준비작업을 해왔다. 청과담당 바이어 김병수 씨는 “올해 추석엔 소비회복이 예상된다. 롯데마트의 경우 추석 청과물 수요가 지난해보다 5~10% 정도 늘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석이 다른 때보다 이른 탓에 청과물의 수확량이 줄 것으로 예상되자 애를 먹고 있다.

바이어들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고 물량을 내놓지 않던 농가들이 추석 무렵에 한꺼번에 물량을 푸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지도 또 다른 걱정거리다. 서울 가락동 청과물도매시장에서 20년간 청과물 수집상을 하고 있는 한봉호(성원과일나라 대표)씨는 “농가의 가격 상승 기대심리로 출하량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정작 추석 때 값이 기대만큼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바이어들은 애써 확보해 놓은 물량을 추석 후엔 헐값에 내놓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우 갈비세트는 추석 선물세트 중에서도 고가 제품이라 경기에 민감하다. 롯데마트 정육담당 MD인 이성찬 과장은 “추석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고 지난 1년 새 점포가 4개나 신규 개점해 물량을 지난해 추석 때보다 20%로 이상 늘려 잡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우 갈비세트의 경우 물량도 부족하고 가격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장은 “지난해 추석에는 광우병 때문에 별 재미를 못 봤는데, 올해에는 수요 증가로 물량이 많이 달려 값이 10% 정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한우세트 제조업체들은 여느 추석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충북 청주시 봉명동에 위치한 공단 내 LG화학 공장에 인접한 육류 가공 ·포장업체인 (주)동화. 작업장에는 위생복장을 한 20여 명의 직원이 한우 갈비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한 편에선 숙련된 칼질로 냉동된 갈빗살에서 기름살을 떼고 근수와 모양을 맞추고 있고, 다른 편에선 진공포장된 갈비 덩어리를 케이스에 담아 세트를 완성한다. 이 회사 송동석 팀장은 “추석이 이른 만큼 7월 중순부터 작업에 착수했다”며 “현재 전체 납품량(약 3,500세트)의 80% 이상은 세트 작업을 마쳤고, 앞으로 하루 3시간 정도 연장근무를 지속하면 9월 첫 주에 맞춰 출고하는 데 차질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쇠고기의 대체재인 돼지고기의 경우 반사효과를 볼 가능성도 있다. 육류담당 바이어들은 돼지고기의 충분한 생육 물량을 확보한 만큼 삼겹살 판매 성수기인 8월과 추석 이후에도 꾸준히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굴비나 옥돔세트 등 수산물의 경우 지난해 추석보다 10% 정도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어획량이 줄어든 것이 변수다. 롯데마트 수산담당 이성찬 MD는 “여름이 일찍 시작된 데다 기온도 높아 올해는 국내 어획량이 그다지 좋지 않다”며 “물량을 맞추기도 빠듯한 형편이라 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산조기의 대체재인 중국산 조기도 품질이 월등히 개선되면서 꽤 비싼 값에 수입되고 있어 가격 진정효과를 보기 힘들 것으로 본다. 대형 할인마트나 재래시장에서는 이미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송화시장 상인 신제갑(송화수산)씨는 15일 “참조기는 지난해 이맘 때보다 값이 15% 이상 뛰었다”며 “특히 중국산 참조기가 국내산보다 더 올랐다”고 말했다.

청과 ·육류 ·수산물 등이 대표적인 추석용품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추석경기를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 변수도 많다. 유통업체들은 주요 품목의 물량이 달리고 연휴 기간이 짧은 것이 악재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의 한 바이어는 “명절 연휴가 길면 고향에 다녀와서 하루 이틀 정도 쇼핑할 여유가 있지만, 이번 추석에는 연휴가 짧아 귀경 다음날 출근하기도 바쁘다”며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9월 16일)에 집중적으로 구매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돼 이날 하루 동안 상당한 물량을 소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수산물유통센터 유통정보팀은 올해 추석 주요 품목들의 값이 지난해보다 5~10% 정도 오르는 등 수요확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먹을거리보다는 의류나 주류 등 공산품에 거는 기대감이 더 크다. 현대백화점 목동점 의류매장 판매사원 장정은 씨는 “여름 비수기가 끝나면 추석 전에 가을 옷을 한 벌쯤 장만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올해는 여름이 끝나자마자 추석이 있으므로 겸사겸사 옷을 장만하는 고객들이 늘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주류 부문에서는 반사효과를 노리고 있다. 까르푸 주류담당 박광봉 바이어는 “과일 ·갈비 ·굴비 세트 값이 오르면 가장 좋은 대용품이 주류 쪽 아니겠느냐”며 “갈수록 수요가 늘고 있는 와인은 한 번 기대해볼 만하다”고 예상했다.

홈쇼핑이나 온라인 업체들도 추석 경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CJ홈쇼핑의 경우 이미 7월에 제작된 8월호 카탈로그에 추석 상품기획전 코너를 넣어 배포했다. 인터넷 쇼핑몰인 CJ몰도 추석선물세트전을 열고 추석 준비가 빠듯한 소비자들이 매장에 가지 않고 인터넷 쇼핑을 하도록 준비 중이다.
추석이 경기를 좌우하는 효과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이번 추석 경기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전문가들이 많다.

올해 추석 경기가 하반기 이후 경기회복 여부를 가늠해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내수 경기가 바닥을 쳤고 하반기에 내수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추석이 본격적인 내수회복을 가져올지가 관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추석경기는 지난해보다는 기대해볼 만하다면서도 유가 추가 인상 등으로 부정적 소비심리가 커지는 것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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